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꺼지면 비극조차 빠르게 잊혀지는 연예계의 냉정한 생리 속에서, 배우 김고은이 보여준 ‘묵묵한 의리’가 잔잔하지만 묵직한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떠들썩한 추모 행사나 보여주기식 멘트 없이, 그저 친구를 만나러 가듯 건넨 “또 올게”라는 한마디는 그가 2년 전 뱉은 약속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증명했다.
18일 김고은은 자신의 SNS에 故 나철이 잠든 수목장지를 찾은 사진을 게재했다. 고인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 앞에는 그가 생전 좋아했을 법한 술 한 잔과 안주가 소박하게 놓여 있었다. 이는 제사상이라기보다, 오랜 친구와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일상의 연장선’처럼 보였다.
이번 방문이 유독 대중의 마음을 건드리는 이유는 김고은이 2년 전 고인을 떠나보내며 했던 다짐 때문이다. 당시 그는 “끝까지 함께 못 있어줘서 미안하다”는 자책과 함께 “남아 있는 보물 둘(유가족)은 내가 지켜줄게”라고 공개적으로 약속한 바 있다.
많은 이들이 슬픔에 잠겨 뱉은 감정적인 수사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그 말을, 김고은은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3주기를 앞두고 미리 찾아가 술잔을 올리고, 다음을 기약하며 “또 올게”라고 남긴 짧은 인사는 그가 고인과의 인연을 과거형으로 묻어두지 않고, 삶의 일부로 안고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과 드라마 ‘작은 아씨들’을 통해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동료 이상이었다. 김고은에게 나철은 연기적 영감을 주고받는 파트너이자, 마음을 터놓는 벗이었다.
대중에게 나철은 ‘빈센조’,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속 강렬한 조연으로 기억되지만, 김고은의 꾸준한 기억 소환 덕분에 그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했던 배우이자 친구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망각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시대, 김고은의 변함없는 발걸음은 진정한 애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사람을 잃은 뒤 남은 자가 지켜야 할 예의가 무엇인지를 소리 없이 웅변하고 있다.
[진주희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