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 골대 앞은 외롭고 고독하다. 하지만 그 고독을 30년 넘게 견뎌온 ‘철인’ 이창우(인천도시공사)가 마침내 누구도 밟지 못한 고지에 올랐다.
지난 5일 청주 SK호크스 아레나에서 열린 신한 SOL Bank 25-26 핸드볼 H리그 남자부 3라운드 상무 피닉스와의 경기. 이창우는 역사적인 남자부 역대 1호 통산 2,000세이브를 달성하며 핸드볼 역사를 새로 썼다.
기록 달성의 순간은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경기 초반 후배들의 강한 슛에 얼굴을 두 차례나 맞으며 골키퍼로서는 썩 유쾌하지 않은 세이브를 기록하기도 했던 이창우는 대선배의 얼굴을 강타해 미안함 가득한 얼굴로 다가오는 후배들을 오히려 다독이며 다시 골문 앞에 섰다.
인천이 7-4로 앞선 상황, 상대 차혜성의 중거리 슛을 막아내며 대망의 2,000번째 세이브를 완성한 이창우는 곧바로 떨어진 공을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비어 있던 상무 피닉스의 골대를 향해 롱 슛을 날렸다. 공은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고, 역사적인 2,000세이브 기록은 본인이 직접 터뜨린 ‘자축포’와 함께 완성됐다.
이창우에게 2,000세이브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는 이 기록을 “남자 골키퍼로서는 1호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서 열심히 해왔다는 증거 같다”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지난 8일 2,000세이브 달성 기념 시상식을 앞두고 만난 이창우는 뿌듯함과 만족감이 공존하는 순간이었지만, 화려한 감정보다는 긴 시간 쌓아 올린 결과라는 인식이 더 컸다.
풀타임으로만 뛰었다면 7~8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기록이지만, 출전 시간을 나눠 가져야 했기에 기록은 더디게 쌓였다. 결국 그는 리그 생활 약 15년 만에 이 고지를 넘어섰다. 숫자로만 보면 하나의 기록이지만, 그 안에는 15년 동안의 시간과 부상, 경쟁, 그리고 골키퍼라는 외로운 포지션을 버텨낸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깨가 좋다’는 선생님의 권유로 핸드볼을 시작한 이창우는 중학교 시절 “필드보다 덜 힘들어 보여 골키퍼를 선택했다“고 웃으며 말하지만, 이후의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는 골키퍼로 살아온 지난 시간에 대해 “재미가 너무 없다(웃음). 나도 팀에 도움이 되고 싶은데 뒤에서 응원만 해야 할 때가 많으니까, 후회를 많이 한다“고 털어놓더니 ”하지만 이제 2,000세이브라는 상징적인 기록을 달성하고 나니, 그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가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경희대학교를 거쳐 2006년 충남체육회에 입단하며 성인 무대에 데뷔했고, 웰컴크레디트 코로사, SK호크스, 그리고 인천도시공사까지 이어진 선수 생활 동안 그는 수차례 국가대표 유니폼도 입었다. 아테네 올림픽을 시작으로 광저우·인천·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런던 올림픽, 아시아선수권대회까지 한국 남자 핸드볼의 굵직한 국제 무대를 경험했다. 아시안게임 금·은·동메달을 모두 목에 걸었고, 실업 리그에서는 정규리그 MVP와 챔피언결정전 MVP, 방어상, 베스트7 등 개인 수상도 화려하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골키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록의 비결을 묻자 그는 겸손하게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부상 없이 계속 뛰어온 것”을 꼽더니 “앞에서 수비들이 잘 버텨주면 공의 속도와 난이도가 확 떨어진다. 꾸준히 뛸 수 있게 도와준 수비들 덕분”이라며 팀워크를 강조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고등학교 시절 은사인 장인익 감독이 부임한 뒤 이어진 혹독한 체력 훈련은 노장에게도 쉽지 않았다. 힘들 법도 하건만 그는 “훈련을 못 따라가면 은퇴해야 한다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그래서 이 악물고 따라가고 있다”며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후배들에게 뒤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현재 인천도시공사는 10연승을 질주하며 선두를 지키고 있다. 이창우는 지금의 인천 전력을 역대 가장 빠른 스피드를 가진 팀이라 정의했다. 과거 코로사 시절의 종합 전력도 높이 평가하면서도, 지금 인천은 빠른 전환과 패스워크, 세트 플레이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인다고 평가했다. 골을 먹어도 두세 개를 더 넣어주는 후배들의 폭발적인 득점력 덕분에 더 편안한 마음으로 골문을 지킨다고 미소 지었다.
은퇴에 대한 고민이 많아질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신중했다. 시즌이 끝나면 어깨 수술을 앞두고 있는데 회복 상황에 따라 더 뛰고 싶다는 의지도 내비치며 팀이 필요하다면, 그리고 뛸 수 있다면 계속 코트에 서겠다는 자세다.
그가 은퇴 전에 이루고 싶은 목표는 분명하다. “우승을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는 바람이다. 코로사 시절 이후 번번이 두산에 막혔던 기억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개인 기록에 대한 욕심은 내려놓았다고 말하지만, 팀과 함께 들어 올릴 우승 트로피에 대한 열망만큼은 여전하다. “핸드볼 인생 1순위 꿈”이라 할 정도로.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몸이 좋을 때 부상 조심하고, 실력만큼 인정받는 날이 오니 묵묵히 기량을 펼치라”고 당부하는 이창우. 2,000번의 선방을 넘어 이제는 ‘우승 골키퍼’로 마지막 마침표를 찍으려는 그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창우 프로필>
1983년 5월 12일
반송초등학교-창원중앙중학교-창원중앙고등학교-경희대학교-충남체육회-웰컴론 코로사-SK호크스-인천도시공사
- 경력사항
2018. 제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남자 핸드볼 국가대표
2014.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남자 핸드볼 국가대표
2012. 제30회 런던 올림픽 대한민국 남자 핸드볼 국가대표
2012. 제15회 아시아 남자핸드볼 선수권대회 대한민국 국가대표
2010. 제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남자 핸드볼 국가대표
2004. 제28회 아테네 올림픽 대한민국 남자 핸드볼 국가대표
- 수상내역
2020-21 SK핸드볼코리아리그 방어상
2018. 제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핸드볼 동메달
2016 SK핸드볼코리아리그 방어상, 베스트 7(골키퍼)
2015 SK핸드볼코리아리그 베스트 7(골키퍼)
2014.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핸드볼 은메달
2014 SK핸드볼코리아리그 정규리그 MVP, 챔피언 결정전 MVP, 베스트 7(골키퍼), 방어상
2013 SK핸드볼코리아리그 베스트 7(골키퍼)
2012. 제15회 아시아 남자핸드볼 선수권대회 우승
2010. 제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핸드볼 금메달
<사진 제공=한국핸드볼연맹>
[김용필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