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31년 역사의 ‘기상캐스터’ 직군을 역사 속으로 영구히 삭제했다. 故 오요안나 아나운서의 비극적인 선택과 직장 내 괴롭힘 논란이 불거진 지 1년여 만에, MBC는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무관한 동료까지 모두 내보내는 ‘제로 베이스’ 전략으로 침묵을 선택했다.
지난 8일, 기상캐스터 금채림은 자신의 SNS를 통해 “지난 금요일(6일)이 마지막이었다”며 5년 만의 하차 소식을 전했다. 이는 개인의 퇴사가 아닌, MBC 프리랜서 기상캐스터 전원(금채림, 이현승, 김가영, 최아리)의 계약 종료를 의미하는 신호탄이었다.
이번 전원 계약 해지는 표면적으로는 ‘제도 개편’이지만, 그 이면에는 故 오요안나 사건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다.
지난해 고인의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원고지 17장 분량의 유서와 카카오톡 대화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선배들(이현승, 김가영, 최아리)과 퇴사자 A씨가 포함된 단톡방에서는 고인을 향해 “냄새난다”, “연진이는 방송이라도 잘했지” 등 드라마 ‘더 글로리’를 연상케 하는 인격 모독성 발언이 난무했다.
그러나 MBC의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특별관리감독 조사 결과 A씨만 계약 해지됐을 뿐, 나머지 3인에 대해서는 “괴롭힘 증거 부족”이라며 징계를 유보했다. 그리고 결국 MBC가 택한 최종 결론은 징계나 사과가 아닌, ‘기상캐스터 제도 폐지’였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들을 개별적으로 솎아내는 부담을 지느니, 문제의 소지가 된 ‘판’ 자체를 엎어버린 셈이다.
MBC는 기존 캐스터들과 재계약 없이 ‘기상기후 전문가’라는 경력직을 신규 채용했다. 이는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괴롭힘 논란으로 얼룩진 ‘기상캐스터실’의 흔적 지우기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과 무관한 금채림까지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맞았다. “사랑하던 직업이 사라진다”는 금채림의 마지막 말은, 조직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개인의 생존권이 어떻게 지워지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대목이다.
유족들은 “진짜 악마는 뒤에서 괴롭힌 이들”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MBC의 행정적 조치로 인해 가해 의혹 당사자들은 ‘징계 해고’가 아닌 ‘계약 만료’라는 비교적 깔끔한(?) 성적표를 들고 방송사를 떠나게 됐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문화’를 고치는 대신, 그들이 머물던 ‘자리’를 없애버린 MBC. 31년 만에 사라진 기상캐스터 타이틀은 방송국의 혁신이 아닌, 비극을 행정적으로 덮어버린 ‘비정한 흔적 지우기’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유족 측은 여전히 가해자 A씨를 상대로 5억 10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방송국은 선을 그었지만, 남겨진 이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주희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