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 코트 위에 ‘마라도나’를 연상케 하는 선수가 나타났다. 수비수 사이를 저돌적으로 파고들며 넘어지는 순간에도 공을 놓치지 않는 집중력, 작은 키를 비웃듯 꽂아 넣는 강력한 중거리 슛. 충남도청의 신인 육태경(센터백/레프트백)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16일 두산전을 앞두고 만난 육태경은 장난기 어린 소년 같은 얼굴과는 달리 코트 위에서는 누구보다 매서운 ‘탱크’로 변신한다. 이날 7골을 넣은 육태경은 69골로 득점 랭킹 2위까지 올라섰는데 그중 중거리 슛이 22골에 달한다. 170cm 초반의 단신 선수에게는 ‘사기 캐릭터’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사실 육태경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선수 생명이 끊길 위기에 처해 있었다. 2024 신인 드래프트에서 어느 팀의 지명도 받지 못한 것. 그는 “떨어질 거란 생각을 안 했기에 충격이 컸다. 집 밖에도 안 나가고 핸드볼은 쳐다보기도 싫었다”고 당시의 아픔을 털어놨다.
그를 구한 것은 충남도청 이석 감독이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육태경의 재능을 눈여겨봤던 이 감독은 마침 팀에 티오(TO)가 생기자 주저 없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육태경은 “감독님의 연락이 오기 전까지 세 달간 정말 힘들었지만, 그 시련이 오히려 ‘보여줘야겠다’는 오기와 집념을 만들었다”며 “지금은 더 악착같이 뛰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육태경의 장기는 수비가 밀집된 상황에서도 공을 뺏기지 않는 드리블과 폭발적인 스피드다. 그는 “키가 작으니 나만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연습 때 발 빠르게 움직이는 훈련과 하체 운동에 매진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의외의 중거리 슛 능력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비결로 꼽았다. “자신 있게 던져야 결과도 좋고, 내가 신이 나야 경기가 잘 풀린다”는 그는 “실수할 때면 벤치에서 감독님과 형들이 침착하라고 다독여주는 덕분에 페이스를 유지한다”고 덧붙였다.
육태경은 복수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핸드볼을 시작해, 연령별 대표 등 어린 시절에는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동료들의 키가 크면서 입지가 좁아졌고, 자연스럽게 성인 국가대표에 대한 기대도 멀어졌다. 그렇다고 국가대표라는 꿈까지 내려놓은 은 아니었다.
지난 1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운동해 온 김태관이 국제 무대를 누비는 모습을 지켜보며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다른 나라 선수들과 경쟁하고, 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을 직접 이루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국내 최고 무대인 H리그에서 그는 작은 키가 더 이상 약점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 고, 이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겠다는 꿈 역시 다시 선명해지고 있다.
절친인 김태관과 함께 충남도청의 공격을 이끄는 육태경의 올 시즌 목표는 명확하다. 팀을 4위권까지 끌어올리는 것, 그리고 생애 한 번뿐인 신인상을 거머쥐는 것이다. 그는 “내가 들어와서 팀이 바뀌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육태경과 김태관 등 충남도청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에 최근 팬이 부쩍 늘었다. 그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처음 받아보는 팬들의 관심이기에 여전히 쑥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경기 후 사진 찍어달라는 팬들을 보면 아직도 얼떨떨하다.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신다”며 웃어 보인 그는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 제 개인 팬도, H리그 팬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관중이 꽉 찬 경기장에서 신나게 뛰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좌절의 끝에서 다시 잡은 핸드볼 공, 육태경은 이제 충남도청의 ‘승리 아이콘’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의 저돌적인 돌파가 멈추지 않는 한, 충남도청이 일으키는 모래바람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육태경 프로필>
2002. 04. 24.
센터백/레프트백
대전복수초등학교-대전글꽃중학교-대전대성고등학교-강원대학교-충남도청
2014 주니어 국가대표
2022 FISU 대학 핸드볼 월드컵
<사진 제공=한국핸드볼연맹>
[김용필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