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의 어느 날, 가수 나상도와의 인터뷰가 진행된 서울의 어느 카페 안은 다소 어수선했다. 쿵쿵 울리는 둔탁한 음악 소리와 쉴 새 없이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인터뷰의 몰입을 방해할 법도 한 환경이었다.
“바깥이 너무 시끄러워서 녹음 오디오가 잘 들어갈지 모르겠네요.” 기자의 우려 섞인 한마디에 그는 특유의 반달 모양 눈웃음을 지으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아유, 괜찮습니다. 하하.” 그 짧은 찰나, 기자는 깨달았다. 안방극장을 누비는 그가 방송 카메라를 향해 짓는 이른바 ‘자본주의 미소’가 아니라, 삶의 모진 풍파를 온몸으로 맞고도 결코 꺾이지 않은 자만이 지을 수 있는 단단한 여유라는 것을 말이다.
대중은 늘 웃는 얼굴의 그를 가리켜 ‘미소천사’라 부른다. 하지만 그 미소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웃지 못할 짠한 일화와 마주하게 된다.
어릴 적 호랑이 노래 선생님에게 종아리를 맞으면서도, 너무 겁에 질린 나머지 당황하여 씩 웃음을 지었다가 “맞는데 왜 웃냐”며 매를 더 벌었다는 이야기. 그것은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낯설고 두려운 세상 앞에서 그가 무의식적으로 꺼내 든 생존 본능이자 슬픈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른다.
2011년 트로트 가수 데뷔 이후 10여녀 간의 기나긴 무명 생활. 피시방 아르바이트, 건설 현장 막노동, 물류센터 상하차를 전전하며 뼈가 시리도록 차가운 현실을 버텨야 했던 청춘에게, 어쩌면 그 바보 같을 만큼 긍정적인 ‘미소’는 스스로를 지키는 유일한 방패이자 매일 아침 다시 운동화 끈을 묶게 만드는 동력이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 미소 이면에 숨겨진 ‘투박한 진심’이다. 여타 트로트 가수들의 남성 팬 비율이 보통 5~8%의 한 자릿수에 머무는 반면, 나상도의 팬덤은 남성 비율이 무려 30%에 육박한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정직하게 땀 흘리는 ‘상남자’의 궤적이, 화려함에 쉽게 동화되지 않는 무뚝뚝한 남성들의 가슴마저 울린 것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100여 곡의 가이드 보컬을 악착같이 녹음했던 시간들. 살벌한 미스트롯2 합숙 시절, 남들이 고단함에 지쳐 잠든 아침 시간에 홀로 식당에 나와 밥을 먹으며 하루를 준비하던 우직함. 무엇보다 무명 시절 크루즈 행사장에서 에스컬레이터 뒤로 넘어지는 최고령 할머니 팬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내던져 옷이 갈기갈기 찢어졌던 일화는 ‘인간 나상도’의 됨됨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화려한 치장이나 얄팍한 상술 없이, 묵묵히 제 갈 길을 걸어가는 사내의 듬직한 뒷모습은 성별과 세대를 초월한 깊은 신뢰를 뿜어낸다.
대기만성형 스타들이 벼락같은 성공 직후 흔히 범하는 오류가 있다. 과거의 설움을 보상받으려는 듯 무리하게 덩치를 키우는 것이다. 수만 명을 수용하는 대형 체육관 입성이나 화려한 매진 타이틀에 집착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나상도의 나침반은 전혀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화 말미, 최종 음악적 지향점을 묻는 질문에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소극장 단독 콘서트”라고 답했다. “과거 이승철 선배님이나 김광석 선배님이 화려한 게스트 없이 오직 자신의 목소리와 밴드만으로 관객과 눈을 맞추며 소극장의 낭만을 만들어가셨던 것처럼, 저도 수익을 떠나 그 좁은 공간에서 3시간을 온전히 책임져보고 싶습니다.” 이 발언은 결코 듣기 좋게 포장된 겸손이 아니었다. 관객의 숨소리 하나, 눈빛 하나까지 온전히 교감하고 싶다는 예인(藝人)으로서의 짙은 갈망이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나상도는 척박한 땅에 버려진 기회들을 하나하나 주워 담아 10년 동안 자신만의 단단한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이제 그 튼튼한 뿌리를 자양분 삼아 트로트는 물론 안방극장과 뮤지컬 무대까지 오가며 그 누구보다 다채롭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카페를 나서며 기자의 뇌리에 남은 것은 화려한 연예인의 겉모습이 아니라, 우직하게 흙먼지를 털고 일어난 한 청춘의 위대한 인간 승리였다. 다가올 2027년, 좁은 소극장 무대 위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관객들과 온전히 숨 쉬고 있을 ‘진짜 광대’ 나상도의 찬란한 낭만이 벌써부터 가슴 벅차게 기다려진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