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롯 돋보기] 가수 박상철이 시인이 되어 돌아온 이유

첫 시집 ‘허수아비’ 낸 신춘문예 당선 시인 박상철
미용실 하던 무명 시절과 팔도 유람이 만든 ‘반전 서사’

대한민국 축제장 어디에서나 태양이 이글거리듯 “무조건 무조건이야”를 외치며 온 동네의 흥을 돋우던 가수 박상철. 무대 위 최고의 ‘떼창 유발자’인 그가 최근 전혀 다른 낯선 이름으로 대중 앞에 섰다. 바로 첫 번째 시집 ‘허수아비’를 세상에 내놓은 ‘신춘문예 당선 시인’이라는 명함이다.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던 트로트 황제의 문학적 변신은 대중에게 신선한 반전을 선사한다.

하지만 그가 최근 공개된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은 고백과 시 구절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시집이 단순히 스타 가수의 일회성 취미가 아니라 오랜 시간 외로움을 견뎌온 한 인간의 묵직한 기록임을 알게 된다.

박상철. /사진=천정환 기자

“눌려도 밟혀도 된다”… 스타의 화려함 이면에 숨겨진 쌉싸름한 시선

“그냥 걷는다 / 그것이 인생이다” (‘인생이란’), “나는 두부가 된다 / 맛있는 두부가 된다 / 눌려도 밟혀도 된다” (‘콩’).

박상철의 시집에 담긴 시구들은 우리가 알던 유쾌한 박상철의 모습과는 결이 다르다.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는 스타덤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는 여전히 스스로를 ‘눌리고 밟히는 콩’에 비유한다.

특히 표제작인 ‘허수아비’에서 그는 “바람에 기울어진 몸이 / 몇몇 새를 쫓지 못하고 동거를 허락한다”며 찢기고 해어졌지만 이방인을 품는 삶을 노래했다. 트로트 장르의 주 소비층인 어르신들의 눈높이에 맞춰 삶의 희로애락과 시련을 담아내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시집 전반에는 삶을 관조하는 애틋하면서도 담백한 시선이 가득하다.

이러한 깊은 정서는 그의 거칠고 치열했던 삶의 궤적과 연결되어 있다. 강원도 삼척의 아주 깊은 두메산골에서 자라며 매일 마주했던 강물과 감나무, 흙내음은 그의 시에 고스란히 자연의 소재로 등장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했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에 낸 메들리 음반은 빛을 보지 못했고, 생계를 위해 미용 기술을 배워 미용실을 운영하며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 했다. 2000년이 되어서야 겨우 정식 데뷔를 했던 그 칠흑 같던 무명의 결핍이, 훗날 그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묵묵히 시를 쓰게 만든 가장 단단한 자양분이 된 셈이다.

박상철. /사진=연합뉴스

박상철은 최근 인터뷰에서 좋은 가사를 쓰는 비결로 나태주 시인의 시집 등을 찾아 읽은 ‘독서’를, 좋은 시를 쓰는 비결로는 ‘경험’을 꼽았다. 그는 “트로트 가수 생활을 하면서 전국 팔도 가보지 않은 곳이 없고, 덕분에 다른 사람보다 경험이 풍부했던 게 시를 쓰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화려한 조명이 꺼진 뒤, 다음 행선지를 향해 달리는 끝없는 이동의 시간 속에서 누구나 느낄 법한 쓸쓸함과 외로움. 박상철은 그 감정을 소모해 버리는 대신, 전국 팔도의 풍경을 렌즈 삼아 문학의 언어로 차곡차곡 축적했다. 그리고 수년의 도전 끝에 지난해 당당히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결실을 보았다.

현재 그는 제8대 대한가수협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K팝 아이돌의 참여를 독려하고 원로 가수를 지원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시를 놓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마음이 외롭고 쓸쓸할 때 시가 준 풍성한 위로를 이제는 자신의 팬들과 대중에게 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인생의 가을 길목에서 무대 위 박상철이 노래로 대중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면, 시집 속 박상철은 담백한 문장으로 지친 이들의 마음을 가만히 안아준다. “그냥 걷는 것이 인생”이라 말하는 이 친근한 시인의 투박한 위로에, 대중은 ‘무조건’ 스며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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