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여름, ‘다시 만난 세계’를 힘차게 부르며 발차기를 하던 아홉 소녀의 데뷔 무대를 현장에서 지켜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로부터 19년이 흐른 2026년, 가요계에 무려 ‘6세대 신인 걸그룹’을 표방하는 무서운 신인이 등장했다.
현역 5세대 아이돌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이 당돌한 신인의 정체는 바로 소녀시대의 효연, 유리, 수영이 결성한 유닛 ‘효리수‘다.
그동안 수많은 아이돌이 탄생과 소멸을 반복해왔지만, 효리수처럼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탄생해 이토록 유쾌한 파괴력을 보여주는 팀은 흔치 않다. 시작은 다소 황당했다. 효연의 개인 유튜브 채널 ‘가짜 김효연’이라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콘텐츠에서 태티서에 맞설 팀을 만들겠다는 농담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팀명은 대국민 투표를 가장한 단 3표짜리 오프라인 투표를 통해 효연이 메인보컬을 꿰차며 ‘효리수’로 확정됐고, 이들은 스스로를 6세대 걸그룹이라 우기며 뻔뻔하게 데뷔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이들의 행보는 그야말로 ‘B급 코미디’였다. 음악방송 CP를 찾아가 무대 세트로 헬기 3대와 스카이다이빙 촬영, 오프닝 30분 편성을 요구하는 황당무계한 설정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했다. 하지만 대중이 이들의 장난에 열광하기 시작한 이유는, 그 B급 농담 뒤에 숨겨진 ‘S급 실력’ 때문이었다.
지난 8월 31일 발매된 데뷔 싱글 타이틀곡 ‘Skibidi(스키비디)’와 수록곡 ‘Lowkey In Love(로우키 인 러브)’는 농담으로 치부하기엔 퀄리티가 너무나 훌륭했다. 장르를 넘나드는 하우스 베이스의 힙합곡 ‘Skibidi’는 발매 직후 멜론 등 주요 음원 차트 일간 94위로 진입해 이른바 ‘콘크리트 차트’라 불리는 톱 100 차트에서 31위까지 치고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뮤직비디오는 공개 이틀 만에 500만 뷰를 돌파했고, 일간 인기 뮤직비디오 한국 차트 1위에 올랐다.
무대 위에서 이들의 진가는 더욱 빛났다. ‘2026 카스쿨 페스티벌’ 선공개 무대에서는 20년 차의 여유로운 무대 매너와 탄탄한 라이브로 관객을 압도했고, 이어진 MBC ‘쇼! 음악중심’ 데뷔 무대에서는 요구했던 진짜 헬기 대신 ‘모형 헬기’를 띄워놓고 완벽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메인보컬과 센터 자리를 두고 투닥거리는 엔딩 포즈로 웃음을 주면서도, 춤과 라이브 어느 하나 흔들림 없는 완벽한 무대를 증명해 냈다. “웃기지만 결코 우습지 않은” 효리수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순간이었다.
팬들의 반응도 뜨겁다. 유리의 아이디어로 정해진 팬덤명 ‘무리수’들은, 과거 소녀시대 활동 당시 파트가 적었던 멤버들이 이제는 3옥타브를 넘나드는 보컬 실력을 뽐내는 모습에 환호하고 있다. 평론가들 역시 ‘Skibidi’가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 나만의 주파수를 찾아 나서는 현대인을 위한 해방 선언문이자 정서적 백신이라며 이들의 유쾌한 일탈에 높은 평가를 내렸다. 과거의 영광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세 사람의 현재 모습과 찐친 관계성으로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다.
효리수의 성과는 단순히 한 유닛의 성공에 그치지 않는다. 다가오는 2027년, 소녀시대는 데뷔 20주년이라는 거대한 분기점을 맞이한다. 멤버 티파니 영은 인터뷰를 통해 “효리수의 기세가 무섭다”며 “효리수 덕분에 많이 웃고 20주년의 원동력이 생기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웃자고 시작한 장난이 멤버들에게는 새로운 자극제가, 대중에게는 신선한 충격이 된 셈이다.
데뷔 19년 차에 자신들을 흠껏 망가뜨리며 새로운 ‘6세대’의 문을 여는 걸그룹은 본 적이 없다.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 마음껏 놀 때 나오는 시너지가 얼마나 무서운지, 효리수는 실력으로 증명해 냈다. 앞으로 뻗어나갈 효리수의 행보, 그리고 이들이 쏘아 올린 유쾌한 신호탄이 내년 소녀시대의 20주년 완전체 무대로 어떻게 이어질지, 기자의 가슴도 오랜만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