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만의 만만한 축구] 당신들이 툭 내뱉은 한마디

[매경닷컴 MK스포츠] 6일 대한민국-카타르전을 현장 취재했다. 한국이 우여곡절 끝에 3-2 승리한 경기의 주요 이슈는 홈 2경기 연속 2실점한 수비진, 손흥민의 결승포, 홍정호의 퇴장 등이었다.

귀갓길. 지인에게서 ‘온라인에는 짱X 리거(중국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 심판 판정 때문에 난리’라는 얘기를 들었다. 귀를 의심했다. 중국 리거에 대한 일부 팬들의 불만은 익히 들어 알았다. 그런데 심판 판정 문제라니. 판정은 이날 이슈와 거리가 있었다. 선수들이 (매번 그렇지만)경기 중 불만을 표출했을지언정 경기 후 판정에 대해 언급한 이는 거의 없었다. 손흥민 정도가 심판 판정에 대해 “솔직히 만족스럽지 않다”고 했을 뿐, 대다수 선수는 최종예선의 무게, 중압감 등을 거론하며 난전을 펼친 이유를 선수단 내부에서 찾으려 했다.

그 시각 온라인상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 듯했다. 치명적인 실수를 한 수비수와 잘못된 판정(?)을 내린 주심에 대한 비난이 끊이질 않았다. 수비 불안은 공동취재구역 여기저기에서 오르내린 공통 관심사였지만, 판정 논란은 아니었다. 책상에 앉아 볼륨을 키우고 영상을 다시 봤다. 중간중간 ‘위험한 한마디’를 무심결에 내뱉은 경기 해설위원들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 해설위원은 카타르의 파울로 보이는 장면에서 주심이 휘슬을 불지 않자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울분을 토했다. 카타르 선수들이 다리를 걸고, 뒤에서 밀어도 파울을 주지 않는다며 편파 판정을 의심했다. 음소거를 하지 않는 이상 이 발언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의 귀에 박혔을 것이다. 예상 반응: ‘심판이 우리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리는구나. 나쁜 심판!’



후반 1분, 핸드볼 파울로 의심되는 상황에 대해 A 해설위원은 “헤딩이 골대로 들어가는 상황이므로 이건 명백한 페널티킥”이라고 했다. 예상 반응: ‘긴가민가했는데, 명백한 페널티킥이라잖아. 페널티킥 줘야지, 답답한 심판!’

정말 그럴까. 국제축구연맹 규정집 제12조 ‘반칙과 불법행위’를 보면 핸드볼은 ‘자신의 손 또는 팔로 볼을 접촉하는 선수의 의도적인 행동’이다. 의도적인 행동이 포인트다. 쉽게 설명하면 볼을 향한 손의 움직임은 핸드볼이다. 반면 볼이 손을 향한 것은 핸드볼이 아니다. 해당 장면에서 카타르 수비수가 공이 날아오는 곳으로 의도를 갖고 손을 들었던가?

심판들은 핸드볼 파울 여부를 규정할 때 상대 선수와 볼 사이의 거리도 고려한다. 기성용과 상대 선수의 거리는 2~3m에 불과했다. 어디로 날아올지 모르는 헤더를 동물적인 반사 신경으로 막았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갑작스럽게 찾아온 위기에 당황하여 몸을 비트는 순간 공이 손에 와서 맞았다고 봐야 할까? 영상에 답이 있다.

경기 중이라 ‘다시보기’를 하지 못하는 주심은 순간적인 직관을 통해 핸드볼 파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해석하기에 따라 같은 상황에 대해 주심은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날 긴가민가한 다른 장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고로 규정을 완벽하게 숙지하지 못한 해설위원이 ‘주심은 틀렸다’고 단정하는 건 옳지 않다. ‘다르다’고 표현해야 한다. 경기장 위 판정은 심판이 하고, TV 시청자들은 그 판정을 판단한다. 해설위원은 심판도 시청자도 아니다.

말이 나온 김에 ‘현지화’ 발언도 짚고 넘어가자.

한국은 중국, 카타르와의 월드컵 최종에선 홈 2연전에서 2실점씩 했다. 포백 중 세 명(홍정호 장현수 김기희)이 중국 리그에서 뛴다. 침묵한 공격수들에게 비난이 따르듯, 실점하는 수비수들을 향한 이 같은 비난은 어떤 의미에서 자연스럽다.

그런데 해설위원이 두 팔 벗고 가뜩이나 성난 여론에 부채질할 필요가 있는지 대해서는 생각해 볼 일이다. A 해설위원은 방송 중 “중국 리그에서 뛰면 실력도 현지화된다”고 했다고 한다. 이 발언은 SNS를 타고 일파만파 퍼졌다. 아마도 해당 선수들도 잠들기 전 전해 들었으리라 짐작한다.

한국 수비진들이 페널티킥을 허용하는 장면. 사진(수원)=김영구 기자
가끔 축구계 종사자들은 사석에서 ‘○○은 중동 가더니 중동 선수처럼 뛰더라’, ‘○○은 중국 가더니 예전 모습이 안 나온다’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다. 그럴듯하지만, 이 말은 논문에 실리거나, 생방송을 탈 정도로 검증된 ‘팩트’는 아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도 그만인 사견이다. ‘현지화’도 사견으로 봐야 한다. 근거가 어디에도 없다. 떠도는 이야기, 누구한테 들은 이야기가 근거라면 근거다.

‘현지화’와 ‘대표팀 부진’을 연결 짓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해설위원의 말마따나 세 명의 중국 리거가 실력이 퇴보해 이것이 결국 대표팀에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0’이 아니라면, 그 반대 경우도 가능성이 ‘0’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미드필더의 백업, 수비수들의 경기 컨디션, 수비진 호흡, 감독의 수비 전술, 상대 공격진의 능력, 순간 집중력 결여 등 실점의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미드필더 구자철은 “실점은 수비수들만의 잘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포백을 순수 K리거로 채운 뒤에도 똑같은 결과를 맞는다고 가정할 때, 그때도 K리그를 깎아내리며 ‘K리그 현지화’를 지적할지 묻고 싶다. 국가대항전인 만큼 완전히 배제하기란 어렵겠지만, 시청자(팬)들의 판단을 흐릴 정도의 ‘국뽕’은 부디 자제해 달라. 당신의 한마디는 생각보다 파장이 크다.

윤진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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