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황석조 기자] 그라운드를 달리던 ‘적토마’ 이병규(41·9번)가 정든 유니폼을 벗었다. 매우 순조롭지도, 그렇다고 옥신각신하지도 않았던 그 과정. LG와 이병규, 그리고 프로야구 전반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베테랑 타자 이병규는 전날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갑작스러웠지만 또 한편으로 갑작스럽지 않았던 일련의 과정이었다. 즉각 깜짝 은퇴 기자회견을 연 이병규는 시종일관 아쉬운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스스로 결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안팎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라는 표정이 말하지 않아도 드러났다. 물론 직접 말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병규는 LG를 떠날 수 없었다며 유니폼을 벗었다. 이로써 길게는 몇 년, 짧게는 올 시즌 내내 LG의 지상과제였던 사안이 결말을 맺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우선 이병규 스스로는 명예로운 평생 LG맨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됐다. 기자회견서 직접 밝혔듯 그는 미련이 많았고 자신도 있었다. 기회를 기다리며 올 시즌 내내 자신을 둘러싼 논란이 무성했을 때도 나서지 않았다. LG에 대한 충성심을 몸소 입증한 것. 하지만 결과는 의지와는 반대였다. 서운함이 있었지만 애정으로 팀의 미래를 존중했다. 또한 그에게 보다 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베테랑을 향한 타 구단들의 수요가 이전 같지 않기 때문. LG 구단은 더 이상의 잡음 없이 팀 레전드의 마무리를 지킬 수 있게 됐다. 그간 팀 레전드들의 마무리를 소홀히 여겼다는 평가를 받았던 LG는 이병규의 거취에 꽤나 촉각을 곤두세웠다. 은퇴권유가 답안지였지만 쉽사리 결론내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았던 것. 시즌 내내 이병규 이야기는 LG에게 어려운 숙제와도 같았다.
구단과 양상문 감독의 사정도 나름 일리는 있었다. 지난해까지는 이병규의 역할을 크게 무시한 편이 아니었다. 또 올 시즌은 팀이 리빌딩을 천명하며 대대적인 체질개선에 나선 측면이 컸다. 성과가 없다면 모를까 중간 중간 위기 속에서도 팀 리빌딩은 성공적으로 결말을 맺게 됐다. 베테랑 한 명의 존재가 이 같은 흐름에 방해가 됐을 것이라 생각할 수는 없지만 체질개선이라는 것은 또 복잡하고 미묘한 측면이 있기도 했다.
이병규(사진)는 평생 LG맨이 되는 길을 택했다. 구단 역시 이번에는 팀 레전드를 허무하게 내보내는 결과를 만들지 않게 됐다. 사진(잠실)=김재현 기자
프로야구계 전반에는 레전드의 은퇴와 구단의 입장이라는 해묵었지만 여전히 해답 없는 난제를 다시 떠올려보게 만든 사례가 됐다. 선수플레이를 중시여기는 팬들이 있는가하면 구단성적을 중요시여기는 팬들도 있기에 복잡하다. 이병규는 전날 “그라운드에서 존경 받고 은퇴하는 선수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는 어쩌면 모두의 바람과도 같을 것.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LG와 이병규의 긴 줄다리기는 결말을 맺었다. 이병규가 서운함을 내보였지만 LG 측 역시 그의 마지막을 전날 기자회견으로 끝내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뉘앙스를 내비치기도 했다. 해피엔딩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베드엔딩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