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의 선수 생활을 마감한 그는 은퇴식을 하러 28일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를 방문했다. 밤잠을 설칠 정도로 근심이 많았으나 해가 뜨니까 다 잊었다.
은퇴식을 앞두고는 팬 사인회도 가졌다. kt 팬 100명 및 LG 팬 100명이 짓궂은 날씨에도 이진영과 만나기 위해 줄을 길게 섰다. 하늘에서는 비가 쏟아졌다.
이진영은 “마지막 팬 사인회라 그런지 평소와 다르더라. 뭉클했다. 나를 보고 우는 팬도 있었다. 그래도 다시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그 약속을 마음속에 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또 하나의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1999년 프로에 입문한 이진영은 2018년까지 현역으로 뛰었다. 프로 통산 2160경기 타율 0.305 2125안타 169홈런 979타점 979득점을 기록했다.
SK 시절 왕조 건설에 이바지했으며 LG 시절 가을야구의 한을 풀어주기도 했다. kt 시절에는 ‘맏형’으로서 신생팀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왔다.
쉼 없이 열심히 달렸던 20년이다. 이진영은 현역 은퇴의 아쉬움은 없다고 했다. 이진영은 “20년간 열심히 했다. 많은 일을 한 것 같아 자부심을 느낀다. 이렇게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찾아올 줄 생각도 못했다. 많은 축하를 받으며 은퇴식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은퇴와 관련해 추측과 오해가 많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선택한 거다. 어려서부터 선배의 양보를 받아 뛸 수 있었다. 30대가 된 뒤 생각한 게 나도 선참이 되면 후배에게 양보해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정했다. 후회는 없다”라고 덧붙였다.
이진영은 지금껏 야구선수 성장시켜준 지도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모든 감독님께 고맙다. 그분들이 안 계셨다면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다. 다들 나를 예뻐해주셨다”라며 “특히 김성근 감독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정말 훈련양이 많았다. 이를 통해 많은 걸 깨달았다. 힘들었으나 내겐 뜻깊은 시간이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진영이 28일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에서 kt 팬 100명 및 LG 팬 100명을 대상으로 사인회를 가졌다. 사진(수원)=옥영화 기자
이진영은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에 기여하며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이다. 세월이 지나니 ‘2땅 선생’ 별명도 괜찮다. 이진영은 “그때는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지금은 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머리가 커서 생긴 별명까지. 그게 다 내게 관심을 가져주셨기 때문에 생긴 거 아닌가”라며 웃었다.
이진영은 KBO리그 및 한국야구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기를 바랄까. 이진영은 “시골 촌놈이 이름 석 자를 남기고 싶었다. 내세울 만한 성적은 2000경기 2000안타인데 꼭 이루고 싶은 기록이었다. 그래도 대표팀과 프로팀에서 찬스에 강했던 선수, 뭔가 해낼 수 있는 선수, 기가 좋은 선수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진영은 지도자 준비 중이다.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고 있다. 8월 4일 다시 일본으로 건너갈 예정이다.
이진영은 “다들 은퇴 후 좋은 지도자가 되려고 노력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코치님보다 선생님에 가까웠다. 지금은 풍토가 많이 바뀌었다. 나도 생각하는 게 많아졌다. 선수를 가르치는 코치보다 도와주는 코치가 되고 싶다”라고 힘줘 말했다. rok1954@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