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 넘치는 욕심을 부릴 만도 한데 욕심은 커녕 그 흔한 곁가지 하나 치지 않고 우직히 걷는다. 영화 ‘퍼펙트맨’으로 입봉한 용수 감독의 연출에는 지독한 고민의 흔적이 어려있다.
‘퍼페트맨’은 로펌 대표 장수(설경구 분)와 건달 영기(조진웅 분)가 사망보험금을 걸고 벌이는 인생 반전 코미디다. 용수 감독의 장편데뷔작인 이 영화는 시한부 선고받은 장수와 죽을 위기에 놓인 영기가 제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도무지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남자의 이야기가 억지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용수 감독이 ‘정도’를 지켰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말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은, 의외로 담백한 일들이 이어지고 관객들은 그 안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목도하게 된다.
“영화사, 제작사에서 일하며 이야기를 좀 더 끝까지, 책임감 있게 끌고 가고 싶다는 생각에 영화를 시작했다. ‘퍼펙트맨’은 예전에 몸이 아파서 누워있을 때부터 생각한 아이템이다. 영기와 장수 모두에 내 모습이 담겨 있는데, 관객들이 편안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기 바란다. 살다보면 웃음이 터지기도 눈물이 나오기도 하지 않나. 두 시간 동안 기분 좋게 술자리를 함께 한 느낌의 영화면 좋겠다. 우리 영화를 본 후 사람들이 바다에서 소주 한 잔 먹고 싶다는 생각이 났으면 한다.”
용수 감독이 MK스포츠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쇼박스
용수 감독은 입봉작부터 엄청난 지원군을 만났다. 연기라면 이견 없는 설경구와 조진웅이 시종 관객을 울고 웃기고, 여기에 허준호, 진선규가 가세해 극의 긴장감과 활력을 불어넣는다. 연기 장인들이 한 자리에 모인 촬영장이라 불편했을 법도 하지만 촬영장을 떠올리는 용수 감독의 얼굴에는 편안함이 감돌았다. 몇 번이고 되새겨도 기분 좋은 추억을 떠올리듯 말이다. “과연 설경구, 조진웅 선배라고 생각한다. 시나리오에 없던, 더 좋은 걸 만들어낸다. 그 덕에 시나리오를 조금씩 고치긴 해야 했는데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더 좋은 연기를 봤기 때문에 그걸 받치는 작업이 필요했다. 주변에서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면 힘들 수 있다고 우려했는데 ‘퍼펙트맨’ 선배들은 모두 유연하게 해주셨다. 오히려 내가 유연해져야 할 정도였다.”
‘퍼펙트맨’은 조직이 등장하고 남자들의 세계를 그린다는 점에서 느와르, 대부분 장면에서 유머코드가 포지한다는 점에서 코미디, 인물들의 굴곡진 인생사가 담기는 점에서 드라마 장르를 갖췄다. 그러나 장르라는 상업적 형식에서 벗어나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 안에 담긴 비유도 적지 않다. 가장 직접적으로 읽히는 대목은 빈부의 격차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부산은 예부터 일본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상 야쿠자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었고, 명과 암 또한 뚜렷했다. 화려한 도시와 판자촌은 바다를 사이에 낀 듯 나뉘었고 장수와 영기의 격차도 그 거리만큼이나 크다.
용수 감독이 MK스포츠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쇼박스
“부산이 고향이다. 수십 억 하는 빌딩과 달동네가 공존하는 게 부산이라는 지역의 특색 같더라. 영기가 힘들었던 과거를 이야기 할 때 그의 뒤로 보이는 건 마천루다. 물론 모든 해석의 여지를 열어뒀다. 어떤 고정된 감정을 느끼기보다 복합적인 무언가를 느끼기를 바란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정서가 다르게 느껴지는 포인트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용수 감독은 각본과 연출을 모두 맡았다. 각색 과정이 길었지만 캐릭터의 특성을 상상하며, 때때로 자신의 모습을 대입하며 입체적인 인물을 다듬어갔다. 그 결과 상황과 대사의 불일치에서 오는 영리한 재미가 극에 녹았고 뻔한 코미디로 남지 않을 수 있었다. 이에 대해 그는 “상황보다 사람”이라고 말한다.
“캐릭터의 성향을 놓고 각색을 거쳤다. 일반적인 건달이라면 욕을 할 만한 상황에서도 영기는 패션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지위고 뭐고 패션 지적하는 게 가장 기분 나쁜 캐릭터다. 그런 성향이 없었다면 영기의 옷차림도 우스워졌을 거다. 내가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상황보다 사람에 집중해서 나온 대사들이 ‘퍼펙트맨’에 그대로 적용된 것 같다.”
‘퍼펙트맨’은 그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첫 장편 연출작이자 자전적 이야기가 담겼기에 더욱 감회가 남다를 터다. 자전적 이야기를 창작물의 소재로 삼으면 과잉에 빠지는 실수를 범하기 쉬운데, 용수 감독은 그렇지 않다.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고 오바스럽지 않다. 스스로 정해놓은 룰이라도 있는 건지, 과잉에서 몇 발자국 물러나 영화를 객관적으로 응시한 그의 절제가 탄복스럽다.
용수 감독이 MK스포츠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쇼박스
“시나리오를 쓰며 직접 입으로 대사를 해보는데, 영기 대사를 읊으며 눈물이 난 적이 꽤 많다. 영기가 어머니 몸에 대해 묘사할 때 하는 대사는 내가 부모님의 몸을 보며 쓴 대사다. 물론 그런 부분에 너무 집중하면 자기연민이 생긴다. 스스로가 너무 연민에 빠지면 공감대 형성이 어려운데, 관객들이 장수와 영기에게서 각자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거다. 상업영화는 다수의 만족을 위해 욕심을 과감히 포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주제와 통하지 않는 건 많이 버렸고,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는 아니니 최대한 멀리서 보려고 노력했다.” 용수 감독의 창작 활동은 현재진행형이다. 써놓은 이야기는 물론 준비 중인 영화도 있다. 엄청난 메시지가 있는 영화는 아니라며 겸손히 말하지만 자신의 입봉작이 그랬듯 유쾌하고 담백한 이야기를 기대케 한다.
“두 시간 동안 잘 놀았다는 생각이 드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우연히 텔레비전을 틀었을 때 그냥 끝까지 볼 수 있는 그런 영화 말이다. 제 삶이 어두웠기 때문에 유쾌한 걸 해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메탈밴드 보컬을 했는데 그때는 ‘돈 벌어서 영국 가야지’라는 생각만 하다가 군대에 갔다.(웃음) 제대 하루 전 불의의 사고를 당해 오른쪽 몸이 마비되고, 소중한 친구를 잃는 일도 겪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은 늘 갖고 있다. ‘퍼펙트맨’을 만들며 극복한 기분이다. 지금 키우는 강아지가 21살인데 버티며 살아주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않나. 다만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거다.” /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