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곤 감독, 단출한 재료와 황당한 사건의 기막힌 조합 [김노을의 디렉토리]

매경닷컴 MK스포츠 김노을 기자

연출자의 작품·연출관은 창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모두 마찬가지죠. 알아두면 이해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연출자의 작품 세계. 자, 지금부터 ‘디렉토리’가 힌트를 드릴게요. 별 것 아닌 재료가 황당한 상황으로 번지고 이내 기발한 사건이 발생한다. 다양한 장르를 하나의 필름 안에 버무리는 솜씨가 상당한 손재곤 감독의 영화가 주는 인상이다.

외부와 연결되지 않는 일정한 공간, 기묘한 로맨스, 두 인물의 동상이몽 속 황당한 사건. 손 감독은 서로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소재들을 어떻게든 한 편의 영화에 채워 넣는다. 이미 설정 자체가 황당하지만 어떻게든 설득되는 게 매력이다.

손재곤 감독 사진=옥영화 기자
◇ 비상식이 유발하는 웃음, 달콤과 살벌을 오가는 장르 손 감독은 ‘너무 많이 본 사나이’(2000)로 독특한 상상력을 인정받았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한 청년이 우연히 살인 장면을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하게 되고 그 테이프를 비디오가게 반납함에 넣은 뒤 살인자에게 쫓기다 살해당한다. 자신의 살인 장면이 녹화된 테이프를 찾기 위해 가게의 모든 비디오테이프를 섭렵한 살인자는 결국 영화광으로 거듭나 히치콕 숭배자가 된다. 이 황당무개한 상상은 당시 코미디와 스릴러 장르의 혼합으로 구현됐다. 물론 독특한 아이디어만큼이나 모두가 호의로 영화를 바라보진 않았다.



모두의 동의를 얻지는 못했지만 손 감독은 자신의 색을 잃지 않았다. 입봉작 ‘달콤, 살벌한 연인’(2006)로 로맨스, 코미디, 스릴러, 범죄 장르에 끝없이 상대를 의심하는 심리와 황당한 사건의 연속을 대형 스크린에 펼쳤다.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본 남자와 여러 번 살인을 저지른 여자의 연애담은 예측되지 않는 비상식적 유머 코드로 웃음을 유발한다.

‘달콤, 살벌한 연인’은 여자의 범죄자적 면모나 진실을 파헤치는 남자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손 감독은 그런 설정을 애당초 생각조차 하지 않은 듯하다. 개봉 무렵 유행하던 ‘엽기’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르는 이 영화는 한 데 섞이지 않을 것만 같은 여러 장르의 혼재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서사를 이어간다. 꼬이고 꼬여가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압박은 스릴러적 긴장감을, 두 인물의 데이트는 로코물의 달달함을 번갈아가며 제시하고 범상치 않은 매력을 마구 발산한다.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 ‘이층의 악당’ 포스터 사진=CJ엔터테인먼트, 싸이더스FNH
그로부터 4년 후 손 감독은 한석규, 김혜수와 작업한 ‘이층의 악당’으로 돌아온다. 전작과 비슷한 특징을 지닌다. 로맨틱 코미디인 줄 알았는데 범죄 장르가 가미됐고 특정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모녀는 비어있는 2층을 세놓기로 결정하고 자신을 소설가라고 소개하는 한 남자가 이사를 온다. ‘달콤, 살벌한 연인’처럼 주요 인물 중 한 명의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데에서 오는 긴장감이 궁금증을 끌고 간다. 그러나 이내 인물의 목표가 밝혀지고 영화는 전혀 다른 전개를 펼친다. 한정된 공간인 데다가 특별히 큰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핸디캡을 안고 있으나 손 감독의 돋보이는 재기가 모든 결점을 상쇄한다.

영화 ‘해치지않아’ 포스터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해치지않아’ 이번에도 평범하지 않아 손 감독이 ‘이층의 악당’ 이후 9년 만에 발칙한 상상력으로 돌아왔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해치지않아’는 망하기 일보 직전의 동물원 동산파크에 야심차게 원장으로 부임하게 된 변호사 태수와 팔려간 동물 대신 동물로 근무하게 된 직원들의 기상천외한 미션을 그린 코미디다. 신생 투자배급사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의 첫 작품이다.

이번 신작은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원작자 HUN 작가의 동명 웹툰을 영화화했다. 인간들이 동물 탈을 쓰고 동물인 척 한다는 원작의 기발한 설정과 손 감독의 재기발랄한 연출력,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버무려졌다.

안재홍을 비롯해 강소라, 박영규, 김성오, 전여빈이 동산파크 5인방으로 뭉쳐 동물과 사람을 넘나드는 역대급 1인2역 활약도 기대를 모은다. 출연 배우들의 이름만 봐도 이 영화가 얼마나 다채로운 면면을 지향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원작 팬들의 우려까지 샀던 이 황당한 이야기의 영화화 메가폰을 잡은 손 감독의 용기가 20년 전처럼 여전히 빛난다. sunset@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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