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자의 작품·연출관은 창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모두 마찬가지죠. 알아두면 이해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연출자의 작품 세계. 자, 지금부터 ‘디렉토리’가 힌트를 드릴게요. 단 두 편의 영화로 할리우드를 매혹한 영국 출신 샘 멘데스 감독. 데뷔작부터 차기작에 이르기까지 붕괴된 현실에 놓인 인물들을 통해 관계성을 되짚는 그의 솜씨는 장르의 벽을 단숨에 뛰어넘는다.
불안한 시대상과 맞닿은 미국 가정의 모습은 샘 멘데스가 보기에 위태롭기 그지없다. 단란한 줄로만 알았던 가족은 산산조각 나버리고 서로에 대한 배반과 죄의식으로 점철된다. 줄곧 인간의 죄의식과 도덕성에 대해 물음을 던져온 샘 멘데스다.
샘 멘데스 감독 사진=ⓒAFPBBNews=News1
◇ 블랙코미디와 갱스터 무비에 담긴 미국 가정의 붕괴 ‘아메리칸 뷰티’(1999)로 단숨에 미국 영화계를 사로잡은 샘 멘데스는 차기작으로 ‘로드 투 퍼디션’(2002)을 내놓았다. 전작은 블랙코미디, 차기작은 갱스터 무비다. 그가 ‘아메리칸 뷰티’로 데뷔했을 때 할리우드는 환호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기대와 믿음을 기분 좋게 배신하며 내놓은 작품이 갱스터 무비이니 당시 의아함은 필연적이었다.
샘 멘데스는 미국 중산층 가족의 위기를 그린 ‘아메리칸 뷰티’와 1930년대 미국 공황기를 배경으로 아일랜드계 갱단의 면면을 그린 ‘로드 투 퍼디션’을 통해 미국사회의 가정 붕괴를 적나라하게 조명한다. 개인의 욕심 혹은 딜레마가 한 집단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내용의 두 작품은 장르는 달라도 분명히 상통한다.
‘아메리칸 뷰티’는 좌절감으로 가득 찬 잡지사 직원으로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는 중년 남자가 딸의 친구에게 욕정을 느끼며 다시금 생을 느끼는 이야기다. 이 남자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미국사회에서 사지로 내몰린다. 아내와 하나뿐인 10대 딸은 남자를 패배자 취급하고, 직장에서는 해고 직전이다. 인생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남자에게 딸의 친구는 구원이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 ‘로드 투 퍼디션’ 포스터 사진=CJ엔터테인먼트, ‘로드 투 퍼디션’ 포스터
‘로드 투 퍼디션’은 대공황과 금주령 시기의 미국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아 마피아 보스의 양아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조직의 일원으로 중요한 임무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그는 집에서는 자상한 남편이자 든든한 아버지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말할 수 없다. 두 편의 영화는 그 자체로 방황인 시대상 속에서 도덕적으로 불안정한 인물들의 이면과 죄의식 따위를 기록한다. 특히나 ‘로드 투 퍼디션’은 장르 영화적 요소가 다분하나 기본적으로 부성애와 죄책감, 대물림을 이야기 한다. 테마를 전하기 위해 장르의 틀을 빌린 셈이다. 외부자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인의 이상과 아메리칸 드림은 통찰력으로 빛난다. 여기에 마치 섬처럼 따로 떼어진 인물들간 관계성의 드라마는 그 어떤 장르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다.
영화 ‘1917’ 포스터 사진=스마일이엔티
◇ 샘 멘데스가 그리는 1차 세계대전 ‘1917’ 샘 멘데스가 전쟁 영화로 돌아왔다. 2015년 ‘007 스펙터’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앰블린 파트너스와 손잡고 ‘1917’을 내놨다. 샘 멘데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는 앞서 언급한 두 작품에서 협업한 전력이 있다.
국내에서는 오는 2월 개봉 예정인 ‘1917’은 최근 개최된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해 2관왕을 달성했다.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두 영국군 보병이 장군의 지시에 따라 최전선에서 독일군의 함정에 빠진 아군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전하러 가는 과정을 이야기를 그린다.
샘 멘데스가 바라본 전쟁은 무상함이다. 전쟁터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내달리는 두 군인을 통해 우리의 과거를 지배했던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흉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에 집중한다.
‘1917’ 공개 직후 외신은 “놀랍고 대담한 영화”(The Guardian), “올해 최고의 영화, 진정한 경이로움”(Forbes) 등 지지를 보내고 있다. 무너진 현실에서 인간의 내면과 관계성에 몰두해온 샘 멘데스가 이번에는 어떤 메시지를 보낼지 기대가 모인다.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