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대부 ‘이경규의 사위’ 수식어에 가려진 프로 14년 차 김영찬의 삶···“아무리 힘들어도 버티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이근승의 믹스트존]

‘이경규의 사위.’

김영찬(32·FC 안양)은 ‘예능 대부’ 이경규 씨의 딸인 배우 이예림 씨와 4년 연애 끝 2021년 결혼했다. 김영찬의 이름 앞에 ‘이경규의 사위’란 수식어가 붙는 건 이 때문이다.

김영찬은 올해로 프로 14년 차다. 김영찬은 2013년 전북 현대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해 대구 FC, 수원 FC, 부천 FC, 경남 FC 등 다양한 팀에 몸담았다.

FC 안양 수비수 김영찬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며 활짝 웃고 있다. 사진=이근승 기자
FC 안양 수비수 김영찬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며 활짝 웃고 있다. 사진=이근승 기자
김영찬.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김영찬.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김영찬은 2018년 안양과 첫 인연을 맺은 뒤 2024년 안양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김영찬에게 지난해는 특별했다.

김영찬은 2025년 3월 15일 대구iM뱅크파크에서 열린 2025시즌 K리그1 5라운드 대구와의 맞대결을 마친 뒤 눈물을 보였다. 김영찬이 8년 만에 K리그1 경기에 나선 날이었기 때문이다.

김영찬은 이날 안양의 중앙 수비수로 선발 출전해 팀의 무실점 승리(1-0)에 이바지했다.

김영찬.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김영찬.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김영찬은 지난 시즌 K리그1 24경기에서 뛰며 안양의 창단 첫 K리그1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데 힘을 보탰다.

김영찬은 그 어느 분야보다 경쟁이 치열한 프로축구 세계에서 버티고 버텨온 선수다.

‘MK스포츠’가 ‘이경규의 사위’가 아닌 프로 14년 차 시즌을 앞둔 프로축구 선수 김영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영찬. 사진=이근승 기자
김영찬. 사진=이근승 기자

Q. 동계 훈련은 잘 소화하고 있나.

태국에서 1차 전지훈련을 마치고 경상남도 남해로 이동해 2차 전지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이 루틴대로 하고 있어서 꽤 익숙하다. 몸 상태가 올 시즌 K리그1 개막전이면 최상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Q. 안양이 지난해 좋은 성과를 내면서 팬들의 기대가 더 커졌다.

당연한 거다. 우린 지난해 K리그1 잔류란 현실적인 목표를 잡았다. 올해는 그 이상을 해내야 한다. 우린 K리그1 파이널 A를 목표로 땀 흘리고 있다. 안양 모든 구성원이 팬들의 눈높이가 높아지셨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유병훈 감독님과 3년째 함께한다. 감독님은 만족을 모르시는 분이다. 매해 무언가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신다. 감독님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면 지난해보다 발전된 한 해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유병훈 감독은 어떤 지도자인가.

내가 많은 팀을 거쳤다. 지도자는 크게 두 유형인 것 같다. 전술적인 능력이 뛰어난 분들이 계시고, 선수 기강을 확실하게 잡아서 끈끈한 팀을 만들어 가는 분들이 계신다. 유병훈 감독님은 둘 다 갖춘 지도자다. 밸런스가 정말 좋은 것 같다. 감독님이 설명하는 전술을 들어보면, 아주 디테일하지만 어렵지 않다. 유병훈 감독께서 이해하기 쉽게 만들고, 설명해 주시는 까닭이다. 안양의 특징 중 하나는 고참 선수 비율이 꽤 높다는 거다. 유병훈 감독께선 고참 선수를 진심으로 존중해 주신다. 감독님은 안양 모든 구성원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시는 지도자다.

FC 안양 유병훈 감독. 사진=김영훈 기자
FC 안양 유병훈 감독. 사진=김영훈 기자

Q. 안양 30대 이상 베테랑 선수끼리 하는 얘기가 있나.

유병훈 감독께서 존중해 주시는 것 이상으로 팀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 베테랑의 역할은 그라운드 안에만 있는 게 아니다. 경기장에 나갔을 때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 건 당연하고, 그라운드 밖에서도 항상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린 후배들이 보고 배울 뿐 아니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선배가 되려고 한다.

Q. 김영찬의 축구 인생에서 안양은 특별한 팀이다. 안양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게 2018년이다. 그때 안양이 K리그1에서 파이널 A를 목표로 하는 걸 상상해 봤었나.

우리 치료실에 계시는 선생님 중에 그때도 함께했던 선생님이 계신다. 치료받으면서 종종 하는 얘기가 있다. 2018년엔 선수들이 컨테이너에서 생활했다. 컨테이너 하나에 선수들이 다 들어갔다. 그게 숙소였다. 환경이 정말 열악했던 거다. 지금은 어떤가. 월드컵에 나섰던 국가대표 출신 형들과 함께한다. 국가대표 출신이 오는 팀이 된 거다. 우린 지난해 K리그1에서 경쟁력을 보여줬다. 우리 팬들의 열정은 K리그1에서도 최고 수준이란 걸 증명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안양을 위해 힘써주시는 구단주님, 단장님, 감독님 등의 공이 아닌가 싶다.

김영찬(사진 왼쪽).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김영찬(사진 왼쪽).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지난해 K리그1 5라운드 대구 원정을 마치고 눈물을 보였다. 8년 만에 K리그1 경기에 나선 것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었다.

K리그2에 오래 있었다. 중간중간 기회가 있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K리그1은 미련이란 생각도 했다. 마음을 비우고 ‘내가 있는 곳에서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었다. K리그2도 아무나 뛸 수 있는 무대는 아니지 않나. K리그2도 삶을 축구에 바친 선수들이 뛰는 무대다. 하루하루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안양에 와서 K리그1 승격을 일궜고, K리그1 잔류란 성과도 냈다. 좋은 감독님, 코치진, 동료들을 만나서 일군 성과다. 대구 원정을 돌아보면, 감정이 올라왔던 것 같다. 나도 사람인지라 K리그1에 대한 욕심이 왜 없었겠나. 늘 꿈이었고, 간절했다. 그 감정이 확 올라와서 눈물이 나온 듯하다. 솔직히 말하면, 제일 큰 감정은 이거였다.

Q. 어떤 감정이었나.

전북에 있을 때부터 아내와 연애했다. 이후 K리그2로 내려갔다. K리그1 소속 팀과 협상하다가 잘 안됐을 때 애써 괜찮은 척을 했다. 아내에게 늘 고맙고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 아내에게 한국 최상위 무대인 K리그1에서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대구전을 뛰고 아내 생각이 가장 많이 났다. 벅찼다. 아내도 울고 있었더라. 돌이켜보면,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신 유병훈 감독께 정말 감사하다. 유병훈 감독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K리그1에서 다시 뛰는 건 쉽지 않았을 거다. 내가 안양이란 팀, 유병훈 감독님을 위해 모든 걸 쏟아내야 하는 이유다.

Q. 지난 시즌 마치고 아내는 어떤 얘길 해줬나.

집에서 축구 얘기는 잘 안 한다. 그리고... 아내가 축구 잘 모른다(웃음).

‘예능 대부’로 불리는 방송인 이경규. 사진=김영구 기자
‘예능 대부’로 불리는 방송인 이경규. 사진=김영구 기자

Q. 장인어른이 ‘예능 대부’ 이경규 씨 아닌가. 이경규 씨는 축구광으로 유명하다. 사위를 응원하고자 안양 홈 경기도 찾곤 하지 않나. 장인어른이 해 준 얘긴 없었나.

장인어른이 정말 좋아하신다(웃음). 장인어른은 내가 K리그2에서 뛸 때도 많은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셨다. 늘 감사한 마음이다. 지난해엔 K리그1에서 뛰니까 더 좋아해 주셨던 것 같다. 우리 장인어른은 안양 경기만 보지 않는다. 축구를 진짜 좋아하신다. 다른 팀 경기도 시간이 날 때마다 챙겨보신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도 보시고, 새벽에 일어나서 유럽 축구도 보신다.

Q. 축구 지식은 장인어른이 김영찬보다 많겠다.

비교가 안 된다. 장인어른이 훨씬 많이 아신다(웃음). 장인어른과 대화하면 축구인과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항상 축구 얘기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장인어른에게 자랑스러운 사위일 수 있도록 항상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프로답게 늘 성실하고 꾸준한 모습을 이어가야 한다.

김영찬의 전북 현대 시절(사진 왼쪽).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김영찬의 전북 현대 시절(사진 왼쪽).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프로 경험이 풍부하지 않나. 동계 훈련을 진행하면서 후배들에게 조언해 주는 것도 있을까.

세대가 확실히 달라진 걸 느낀다. 내가 20대 초반일 때만 해도 한국은 선·후배 체계가 확실했다. 후배가 자기 의견을 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나이와 관계없이 의견이 있으면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론 정말 좋은 문화인 것 같다. 요즘 어린 선수들은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착실히 해내기 때문에 내가 특별히 하는 말은 없는 것 같다. 딱 한 경우만 빼고.

Q. 어떤 경우?

내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은 때다. 나는 어릴 때 내 할 일은 착실하게 했지만, 자신감이 부족했다. 막내 시절엔 늘 기가 죽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면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제 기량을 100% 내보이기 어렵다. 그러면 더 의기소침해진다. 그런 후배들이 보이면, 먼저 다가가서 얘기한다. 그런 후배에게 “여긴 프로다. 프로에 왔다는 건 실력이 있다는 거다.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이 시간이 평생 후회로 남을 수도 있다”는 얘길 해준다.

Q. 김영찬의 축구 인생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포기하고 싶을 땐 없었나.

내 축구 인생에서 정말 감사한 것 중 하나가 ‘포기해야겠다’란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내 할 일을 했다. 2군에 있을 땐 ‘열심히 해서 기회를 잡아야지’란 생각으로 운동했다. 생각이 많아질 땐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몸을 더 힘들게 했다. 부정적인 생각은 사람을 늪으로 빠뜨리지 않나. 그걸 운동으로 이겨내려고 했다. 내가 축구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다. 컴퓨터 게임도 잘 못한다. 그냥 운동하다 보니까 안양이란 좋은 팀을 만나고, K리그1에서 다시 뛰는 기회도 얻은 것 같다.

김영찬의 부천 FC 시절(사진 가운데).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김영찬의 부천 FC 시절(사진 가운데).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축구계뿐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든 버티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버티는 힘은 어디서 얻나.

부모님이다. 내가 전북 소속이었을 때다. 부모님은 주말마다 경기장에 오셨다. 홈이든 원정이든 가리지 않고 경기장을 찾아주셨다. 내가 경기에 안 나와도 오셨다. 그게 부모님의 낙이었다. 부모님께서 내게 이야기를 안 하고 오신 적도 많다. 표를 직접 구매해서 경기를 보신 거다. 그런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프로의 세계에서 버텨야만 했다. 그리고 축구가 좋다. 요즘엔 더 좋다. 어느덧 베테랑 아닌가. 축구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까 하루하루가 더 소중하다.

Q. 부모님에게도 지난 시즌은 특별했겠다.

무슨 말을 주고받았던 건 아니다. 우리 가족이 좀 무뚝뚝하다(웃음). 서로 표현을 잘 못한다. 그런데 가족은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지 않나. 누구보다 기뻐하고 좋아하시는 걸 많이 느꼈다. 부모님에겐 늘 감사하다.

FC 안양 김영찬.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FC 안양 김영찬.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안양이 K리그1으로 올라오면서 FC 서울과의 경기가 큰 화제였다. 서울전은 어땠나.

서로 ‘의식하지 말자’고 하지만, 다들 의식하고 긴장하는 게 눈에 보이는 경기다. 축구가 힘이 들어가면 잘 안된다. 그런데 힘이 안 들어갈 수가 없는 경기랄까. 내가 사실 안양 LG 치타스 유스 출신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갑자기 ‘다른 팀으로 가야 한다’고 해서 안양을 떠났던 기억이 있다. 그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 어머니가 ‘나중에 설명해 줄게’라고만 하셨던 기억이 난다. 내가 어려서 이야길 해줘도 이해 못 할 나이였던 까닭이다.

Q. 초3 때 갑자기 다른 팀으로 가야 했던 이유는 언제 알았나.

안양에 입단하고 나서 알았다. 또 ‘수카바티: 극락축구단’이란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았었나. 그걸 보고 스토리를 정확하게 알게 됐지.

Q. 수비수 아닌가. 서울전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높다 보니까 경기에 나서면 부담스럽진 않나.

내 포지션이 중앙 수비수다. 실수하면 바로 실점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실수 없이 경기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하지만, 팬들을 위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부담이라고 생각한다. 축구는 마음이 편해야 잘 된다. 경기 중요성은 인지하되, 힘이 너무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같다.

Q. 올해 개인적으로 잡아둔 목표가 있나.

안양이 국가대표 선수가 오는 팀이 됐다. 올해는 더 많은 선수가 오고 싶어 하는 팀이 되도록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 좋은 선수가 늘어난다는 건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것도 의미한다. 그 치열함 속에서 팀과 함께 성장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부상 없이 한 해를 보내고 싶다. 유병훈 감독께서 기회를 주실 때마다 제 몫을 해내는 게 가장 큰 목표다.

김영찬. 사진=이근승 기자
김영찬. 사진=이근승 기자

Q. 치열한 프로의 세계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오고 있다. 그런 김영찬의 이름 앞엔 ‘이경규의 사위’란 수식어가 붙지 않나. 대중은 김영찬이란 선수보다 이경규란 이름에 더 주목하기도 한다. 김영찬도 프로축구 선수이고 사람인데 아쉬움은 없나.

처음엔 있었지(웃음). 잠깐 있었다. 나는 자기 객관화가 빠른 사람이다. 장인어른 덕분에 내 이름이 더 많이 알려진 건 사실 아닌가. 이경규의 사위가 축구선수라는 것만 알아주셔도 감사한 마음이다. ‘이경규의 사위’란 수식어는 아쉬움보단 큰 책임감이다. 나는 이경규의 사위에 걸맞은 프로선수일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해야 한다. 단순히 축구만 열심히 하는 선수가 아니라 그라운드 밖에서의 행동, 태도 등도 더 신경 쓰려고 한다.

Q. 이 사회엔 묵묵히 버티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김영찬처럼 매일 해야 할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이들에게 한마디한다면.

내가 그런 말을 해도 될까. 그냥 내 삶만 보면, 순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늘 굴곡이 있었다. 한 번도 붙박이 주전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늘 불안했고, 더 노력해야만 했다. 다만,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으면, 기회는 반드시 오더라. 그 기회가 왔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나는 그 기회가 왔을 때 잡아내지 못하면 끝이란 생각으로 하루를 보낸다. 앞서서도 말했지만, 포기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땐 더 운동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웃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걸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FC 안양 수비수 김영찬.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FC 안양 수비수 김영찬.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김영찬의 꿈은 뭔가.

축구 오래 해야지(웃음). 축구가 갈수록 좋아진다. 열심히 해서 오래도록 그라운드를 누비고 싶다.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한다. 어릴 땐 왜 더 재밌게 못 했을까. 축구가 재밌다 보니까 하루하루가 더 소중하고 감사하다. 경기를 뛰든 못 뛰든 함께 땀 흘리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게 내겐 축복이다.

[남해=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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