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민상기(34·광주 FC)의 프로 17년 차 시즌이다. 프로에서 17년째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건 민상기가 얼마나 성실한 선수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민상기의 축구 인생에 굴곡이 없었던 건 아니다. 수원 삼성, 부산 아이파크, 포항 스틸러스 등을 거치며 부상과 부진 등이 겹친 때도 있었다. 비판에도 시달렸다. 하지만, 민상기는 차분하게 자기가 해야 할 것을 했다. 태도가 기분에 따라서 바뀌지 않았다. 경기력이 좋을 땐 자신을 더 채찍질하면서 해야 할 일에 더 몰두했다.
민상기는 그렇게 프로 17년 차가 됐다. ‘MK스포츠’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광주 후방을 책임질 민상기와 나눈 이야기다.
Q. 동계 훈련은 잘 소화하고 있나.
열심히 하고 있다. 새로운 감독님이 오시지 않았나. 모든 선수가 이정규 감독께서 추구하는 전술에 녹아들고자 노력 중이다. 머리도 몸도 힘들게 잘 단련하고 있다(웃음).
Q. 지난 시즌을 마치고 광주와의 동행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전혀. 광주만 괜찮다면, 동행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게 있다. 지난해가 내 축구 인생에서 축구를 가장 재밌게 한 1년이다. 미련이나 후회 없이 한 시즌을 보냈다. 광주라는 팀에 와서 좋은 기억을 쌓은 까닭이다. 광주에서 1년 더 할 수 있다는 건 내게 큰 기회다. 감사한 기회이기도 하다. 광주의 신뢰에 보답하고자 더 열심히 하려는 것 같다.
Q. 지난해 1년은 뭐가 달랐던 건가.
광주와 계약하기 전 고민이 아주 많았다. 팀을 정해야 하는 시점에서 아내와 아주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한편으론 ‘모든 걸 내려놔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점에 이정효 감독께서 연락을 주셨다. 나에겐 감사한 전화 한 통이었다. 끝을 생각한 시점에 손을 내밀어주신 것 아닌가. 시간이 아주 소중하더라. 축구를 대하는 마음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새로운 시작이라기보단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는 느낌이었다. 마무리 준비 단계랄까.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해서 후회 없이 보내려고 했다.
Q. 동계 훈련을 진행하면서 후배들에게 조언해 주는 게 있을까.
훈련장에서나 실전에서나 후배들에게 많은 걸 얘기하진 않는다. 내가 어릴 때를 돌아보면, 내 것을 해내기도 바쁘다. 정신이 없다. 선배가 옆에서 ‘이런 게 좋다’, ‘저런 게 좋다’고 하면 과부하가 온다. 말보단 운동장에서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한다. 여기서 성공이냐 실패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성공이든 실패든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후배들은 선배의 이런 모습을 통해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연스럽게 보고 배우는 거다. 그런데도 후배들에게 해주는 얘기를 꼽으라면,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다.
Q. 이유가 있을까.
실수는 도전으로부터 나온다. 실패해 봐야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인지하고 성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내 나이대 정도 되면 실패는 치명적일 수 있다. 하지만, 10~20대 젊은 선수는 다르다. 경험이 부족하지 않나. 젊은 선수에게 실수는 성장의 발판이다. 여러 도전을 통해서 경험을 축적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Q. 한 아이의 아빠가 되지 않았나. 아빠가 된 뒤로 달라진 것도 있을 듯한데.
삶의 무게가 다르다(웃음). 책임감이 커졌다. 결혼 전엔 나 혼자만 잘 먹고 잘살면 됐다. 간단히 얘기해 실패해서 너무 힘들면, 다 내려놓고 다른 길을 찾아도 괜찮았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니까 책임감이 훨씬 커지더라. 이젠 나만 생각할 수가 없다. 축구가 내 생계를 책임져주는 것이란 걸 더 크게 느낀다. 그러다 보니 축구를 대하는 자세도 많이 달라지는 듯하다. 아빠가 되니 진짜 크게 느끼는 것이 뭔지 아나.
Q. 뭔가.
이 세상 모든 아버지가 진짜 위대하다는 거다. 모든 아버지께 존경을 표하고 싶다.
Q. 시간이 10년 정도 흘렀을 때 아내와 아이가 축구선수 민상기를 어떤 선수로 기억해 줬으면 하나.
아내와 아이가 ‘우리 아빠는 자기 일에 항상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라고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아내의 남편이자 아이의 아빠로서 참 행복할 것 같다.
Q. 민상기는 수원 시절부터 성실한 선수로 정평이 나 있다. 묵묵히 자기 일을 성실히 해나갈 힘은 어디서 나오나.
나는 축구가 잘될 때 더 경계한다. 나 자신을 더 낮춘다. 경험상 일이 잘 풀릴 때가 제일 위험하다. 돌아보면, 선수 생활 내내 그랬던 것 같다. 축구가 잘될 때일수록 나를 낮춰야 좋은 흐름을 오래 이어갈 수 있었다.
Q. 반대로 일이 잘 안 풀릴 땐 어떻게 하나.
그땐 내가 나를 잘 챙긴다. 실수한 날엔 다음 경기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나를 최대한 위로한다. 내가 나에게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잘할 수 있어’라고 해준다. 나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선수를 봐 오기도 했다. 선수가 봐도 깜짝 놀랄 실력을 갖춘 선수도 있었고, 평범한 선수도 있었다. 그런 것과 관계없이 오래도록 프로에서 활약하는 선수에겐 공통점이 있더라. 꾸준함이다.
Q. 꾸준함?
어떤 선수든 365일 내내 컨디션이 좋을 순 없다. 어떤 경기에선 몸 상태가 안 좋을 수도 있다. 사람이기에 실수가 잦은 날도 있을 거다. 그런데 꾸준한 선수는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경기력의 폭이 심하지 않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도 기본은 한다. 경기력이 일정한 거다. 그 꾸준함을 유지하는 선수가 롱런한다는 걸 어릴 때부터 많이 봐 왔다. 성실하고 꾸준한 선수는 축구계에서 존중받으며 은퇴하는 걸 여러 번 봤다. 그런 게 내게 큰 영향을 미친 듯하다. 그래서 한 경기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당장 잘 된다고 기뻐하고, 안 된다고 슬퍼하기보단 내가 해야 할 걸 변함없이 하는 거다. 그러면 선수 인생이란 긴 마라톤이 끝났을 때 박수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축구 인생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Q. 성실함도 타고나는 걸까.
글쎄. 나는 어릴 때부터 겸손과 성실을 중요시하긴 했다. 항상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했다. 그걸 습관으로 만들었다. 어릴 때 그런 습관을 들여놔야 나이가 들어서도 변함없이 해야 할 일에 몰두할 수 있다. 오늘 내 기분에 따라서 오르락내리락하면 안 되지 않나.
Q. 민상기에게 프로 의식을 일깨워준 선배 1명을 꼽는다면.
곽희주 선배다. 곽희주 선배를 보면서 ‘프로’가 무엇인지 배웠다.
Q. 이정효 감독이 지난 시즌을 마치고 수원으로 향했다. 현재 광주에 몸담고 있긴 하지만, 민상기의 축구 인생에서 수원은 아주 특별한 팀 아닌가. 이정효 감독이 수원으로 향한다는 얘길 들었을 때 어땠나.
응원하는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다. 내가 올해로 프로 17년 차다. 이정효 감독님을 만나서 프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한 해를 보냈다. 특히, 축구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를 다시 한 번 배울 수 있었다. ‘프로축구 선수’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느끼게 해준 이정효 감독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이정효 감독께서 향한 팀이 수원 아닌가. 경기장에서 맞붙는다면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마음속으로 항상 응원하는 팀이다. 내가 좋아하는 팀으로 가셔서 응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물론,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우리 인생은 만남과 이별의 반복 아닌가. 이정효 감독님이 수원에서 뜻하신 바를 쭉쭉 이뤄 나가셨으면 좋겠다.
Q. 이정효 감독의 과정은 대체 무엇이 다른 건가.
내가 가장 크게 다르다고 느꼈던 건 축구를 대하는 태도다. 이정효 감독님을 필두로 코치진, 지원 스태프 등 광주 모든 구성원이 축구를 진심으로 대한다. 그 문화가 정착되면서, 광주가 빛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Q. 올해 가장 큰 바람은 무엇인가.
항상 그렇지만 개인 욕심은 없다. 팀이 늘 우선이다. 위기라고 보면, 위기인 시즌이다. 그런데 두려움은 없다. 광주에 오래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이 팀의 문화와 힘을 1년 동안 느꼈다. 솔직히 작년만 해도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나(웃음). 광주는 모두가 ‘이젠 끝’이라고 할 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냈다. 광주는 위기에 강한 팀이다. 우리가 또 한 번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려고 한다.
[남해=이근승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