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낸다.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고 홍명보 감독과 대한축구협회(KFA)를 향해 비판의 화살을 날린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 프로축구단 구단주 출신 대통령인 이재명 대통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임 명예 프로축구단 단장이자 심정적 붉은악마로서 예상 밖 결과에 당황을 넘어 황당함을 느낀다”고 썼다.
이어 “결국 인사가 만사임이 다시 한번 증명됐다. 능력보다 네 편 내 편을 더 중시해 무능한 사람을 지휘관으로 선발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공사 구별을 못하고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우는 엉터리 인사가 가능한 것은 인사권자에 대한 감시 견제 문책이 불가능하거나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조직은 민주적 구성과 통제, 권한과 책임의 일치가 중요하다. 민간 영역의 민주적 지도력 구성과 객관적 감시 견제 체제 확립은 이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라고 했다.
#. 축구계 기득권의 복지, 혈세 의존 프로축구단 양산에 앞장선 정치권
한국 축구는 정치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대통령도 자신의 SNS에 “월드컵 출전에도 많은 국민 혈세와 국가적 지원 역량이 투입되는 만큼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서 이번 사태의 정확한 상황, 원인 분석, 재발 방지와 개선을 위한 대책을 꼼꼼하게 챙겨 주시기 바란다”고 썼다.
정치는 한국 축구계에 혈세를 투입한다.
문제는 그 혈세를 ‘어떻게 쓰느냐’와 ‘어떻게 쓰이느냐’다.
‘어떻게 쓰느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혈세를 투입하느냐’이고, ‘어떻게 쓰이느냐’는 ‘투입된 혈세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로 연결된다. 이는 정치의 영역으로 볼 수 있다.
한국 축구 역사에서 정치가 제 역할을 한 적이 있나 싶다.
한국 축구의 근간은 한국 프로축구인 K리그다.
K리그는 정치권이 실어준 힘에 힘입어 프로스포츠임에도 지자체 혈세 없인 운영될 수 없는 리그가 됐다.
최상위 리그인 K리그1엔 12개, K리그2엔 17개 팀이 있다. K리그1엔 지자체 혈세 없이 운영될 수 없는 팀이 절반인 6개나 있다. K리그2에선 무려 13개 팀이 세금에 의존한다.
K리그2에 참가 중인 충북청주는 본래 기업구단 형태로 프로축구에 참여하려고 했으나 자금 안정성을 이유로 지자체 혈세를 반드시 지원받도록 했다. 그게 프로축구 참가 핵심 조건이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간이었다. 시도민구단 관계자들에게 공통된 질문을 던졌다.
하나는 ‘새 구단주(지자체장) 후보가 프로축구단을 위해 내건 공약이 무엇인가’였다.
선거철이면 대한민국은 스포츠를 아주 중시하는 국가라는 착각이 든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못지않은 ‘돔구장 건설’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한둘 아니었다. 축구계에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축구를 할 수 있는 돔구장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들이 있었다.
대한민국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못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우리 애 다치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 ‘우리 애 소외감이나 박탈감 느끼면 어찌할 것이냐’, ‘우리 애는 축구 잘 못하는데 못 어울리면 어쩌냐’는 등 학부모들의 민원이 요인이라고 한다. 그런 나라에서 수백 수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 돔구장을 만들어 주겠다는 공약이 난무했다.
그래도 프로축구 발전을 위한 좋은 공약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 지자체장 선거에 나오는 후보들의 SNS도 살펴봤다. 한결같았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일정 금액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비슷한 글을 여러 번 보니 후보들이 ‘내 돈으로 지원하겠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금을 프로스포츠에 인심 쓰듯 공약으로 내건 후보들은 프로스포츠에 자기 돈을 얼마나 써 봤을까 궁금증만 커졌다.
또 하나의 질문이 있었다.
노동자와 노동 환경을 중시하는 후보들이 감독, 선수 등 경기인 출신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 중인 프로축구단 종사자들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여러 관계자에게 ‘지자체장 후보들이 프로축구단 근로자들의 고충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다들 그냥 웃었다.
시도민구단에서 근무 중인 한 관계자는 “그럴 리가요”라며 “구단에서 꽤 오래 일했지만 구단주님을 직접 뵙고 이야기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선거철이라고 다르지 않다”고 했다. 이어 “구단주님이 바뀌신다면, 축구와 이 산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이 고위직으로 오는 황당한 인사만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 프로축구의 혈세 의존도,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나
2002 한·일 월드컵의 큰 성공을 계기로 탄생한 시도민구단들은 ‘시도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치권은 그런 시도민구단을 위해 매해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의 혈세를 투입한다.
프로스포츠에 참가 중인 시도민구단이라면, 자생력이 얼마만큼 향상되었는지를 증명할 객관적인 자료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지자체 예산 의존도를 점차 줄여나가면서 향후엔 프로축구단만으로 팀을 운영할 수 있다는 명확한 계획과 미래를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축구계에서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상태로 나아간다면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K리그1의 우승 상금은 5억 원이다. 2012년 책정된 금액이다.
K리그2의 우승 상금은 1억 원이다.
K리그의 중계권료는 유럽 프로축구 시장에서와 달리 크지 않다. 구단 운영에 도움이 되는 수준이 아니다.
프로축구는 프로야구와 달리 홈경기 수도 적다. K리그1은 매 시즌 리그 홈경기 수가 최대 20경기에 불과하다. 보통은 19경기다.
프로야구는 총 144경기를 치른다. 홈경기만 72경기다. 입장권, 상품 판매량 등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대한 대안은 프로축구가 탄생한 1983년부터 지금까지 뚜렷한 것이 없다.
그런데 한국 프로축구 경기인의 몸값은 놀라울 정도다.
K리그1은 선수단 평균 연봉이 3억 원을 넘고, K리그2는 1억 원이 넘는다. 지자체 혈세로 운영되는 구단에 연봉 20억을 받는 선수가 존재하고, 15억 원을 받는 선수가 있다.
시도민구단이 프로축구판에 뛰어들어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혈세 의존도가 큰 구단이 우승을 목표로 한다면, 옳은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시도민구단은 창단 목적인 시도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당장의 승리, 극단적인 수비 축구로 승점에 목을 매는 모습을 보일 게 아니라 시민의 여가 생활을 다채롭게 해줄 수 있는 재밌는 축구, 시민과의 깊은 관계 형성 등에 목적을 두는 것이 맞다.
지자체는 애초부터 교육, 육성, 명예 등이 목적인 아마추어 스포츠와 묶이는 게 정상적이다. 팬, 수익, 흥행 등은 프로와 기업이 추구해야 할 가치다.
시도민구단의 더 큰 문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근로자에 대한 대우와 관리가 크게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보통은 기본적인 체계조차 잡혀 있질 않다.
시도민구단에서 근무해 본 경험이 있는 A 씨는 “업무 능력 중 가장 중요한 걸 꼽으라면 눈치”라며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서 해야 할 것이 정해지는 일이 다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문성을 쌓기 어려운 게 가장 아쉽다. 어제와 오늘 내가 하는 일이 다르다. 여러 업무를 조금씩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해내야 한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도민구단의 발전을 위해 힘쓰는 이들이 큰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급여는 경기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예를 들어 지금 활용할 수 있는 예산 1억 원이 있다고 치자. 시도민구단은 이름 모를 외국인 선수 영입에 이 돈을 투입한다. 대부분 그런 외국인 선수는 적응에 실패해 한국을 떠난다. 이렇듯 선수 영입엔 수억 원을 부담 없이 지출한다.
그 돈이면 1명이 3~4명의 역할을 해야 하는 시도민구단 근로 환경 개선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름 모를 외국인 선수 1명 뽑을 돈이면, 시도민구단 발전을 위해 일할 인력 3~4명을 뽑을 수도 있다.
정치는 이런 축구판 환경을 만들어 오는 데 앞장섰다. 진짜 시도민을 위한 것인지 의구심만 커지는 시도민구단을 양산했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하고 이해되지 않는 일을 방관했다.
이는 축구계 기득권 양산으로 이어졌다.
경기인 출신을 위한 일자리와 대우가 과거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향상됐다.
정치권이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비판하기 시작한 이후 KFA 핵심 인사였던 몇몇 인물이 시도민구단 고위직으로 자릴 옮겼다. 최종 승인권자가 정치인인 지자체장이었으나 그들이 시도민구단의 높은 위치에 자리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 축구계 기득권을 양산한 정치
축구계에서 시도민구단에 관해 부정적인 얘길 하면 자주 듣는 얘기가 있다.
“시도민구단에 투입되는 예산은 어차피 써야 할 돈”이라는 것과 “체육계에 예산을 투입해 최대의 홍보 효과와 수익까지 낼 수 있는 사례가 시도민구단”이란 것이다.
한 시도민구단 창단에 앞장섰던 B 씨는 “틀린 얘긴 아니”라며 “시도민구단이 만들어지면 그 지자체의 포털 사이트 검색량이 크게 늘지 않느냐”고 짚었다. 이어 “지역 축제의 경우 기간이 짧고 한정되어 있다. 반면 축구는 1년 내내 이어진다. 지자체 홍보가 1년 내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관계자는 또 “체육계에 투입되는 예산은 투자의 개념이다. 수입이 얼마든 어쨌든 시도민구단을 운영하면 다양한 수치를 시민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 시도민구단이 한 해 올린 수익, 사회 공헌 활동, 관중 수 등이다. 수천 명의 시민과 한 장소에서 꾸준히 호흡할 수 있다는 점도 지자체장에겐 매력적”이라고 했다.
정치는 축구계에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국방의 의무에서까지 특혜를 준다.
국군체육부대 축구단은 프로축구에 참여한다. 국군체육부대에서 군 복무를 하는 선수는 군 복무 기간에도 직업과의 단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군 복무 기간에도 자기 일을 하면서 몸값을 높일 기회를 보장받는다.
정치는 대한민국이 개발도상국이던 1973년 생긴 병역 특례법을 공정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현재까지도 건드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정치는 월드컵에서 좋은 결과를 냈다는 이유 하나로 특별법을 제정해 국민의 의무인 병역을 면제해 주기도 했었다.
직업의 특수성을 ‘배려’한다고 하면, 이 문제를 공론화해 제도를 지금 시대에 맞게 손보는 것이 정상 아닌가.
정치는 수십 년 동안 축구계를 특별하게 만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축구계 기득권을 양산했고, 그들의 기득권을 굳건히 해줬다.
그런 정치가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국가대표팀과 KFA를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이럴 때만 축구계 개혁을 외친다.
그 모습이 당황스러움을 넘어 황당하기까지 하다. 정치는 쇼가 아니지 않나.
대한민국은 올해 프로축구판에만 1,500억 원 이상을 쓴다.
축구는 대한민국의 국기(國技)가 아니다.
축구는 벼슬도 아니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을 상식적으로만 해도 대한민국 축구판은 많은 게 정상화될 수 있다.
[이근승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