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불길에 넣지 못한 대본 한 뭉치가, 82세 배우 임현식의 시간을 붙들었다.
19일 방송된 MBN ‘특종세상’에는 데뷔 후 1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해온 배우 임현식의 일상이 공개됐다. 이날 그는 과거 연기 인생을 돌아보며 “쓸데없는 소리 말고 대본에 있는 거나 잘하라는 말을 들으면 ‘잘해보겠습니다’ 하며 내 마음을 달랬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한가득 쌓인 대본을 정리하며 마당에 불을 피웠다. 그러나 막상 대본을 들여다보던 그는 쉽게 불 속에 넣지 못했다. 결국 대본을 다시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먹먹함을 더했다. 연기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종이 뭉치를 차마 놓지 못한 것이다.
그는 또 캠코더를 구입했다. “정리가 되면 없어질 것도 있으니 이것으로 남겨두려 한다”는 말에는 세월을 정리하려는 배우의 마음이 담겼다.
집으로 돌아오자 딸이 찾아왔다. 딸은 “작년에는 병원 갈 일도 많아서 일주일에 두어 번은 들렀다”며 수술 후 쇠약해진 아버지를 걱정했다. 주변을 정리하려는 아버지의 모습이 안타깝고 두렵다고 털어놨다.
임현식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떠올렸다. 그는 “어머니 돌아가시고 2년 뒤 아내가 떠났다”며 아내의 사망 원인이 폐암이었다고 밝혔다. “기둥이 두 개라면 하나가 빠진 느낌이었다”는 고백은 깊은 상실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가 만날 날이 앞으로 15년? 20년은 너무 길다. 그래도 15년은 살아야지. 건강하게 만나야 하니까”라고 말했다. 담담한 듯한 말 속에는 여전히 아내를 향한 그리움과 기다림이 배어 있었다. 대본을 태우지 못한 배우, 그리고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 임현식의 하루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김승혜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