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전 남친’ 혹은 ‘화사의 남자’로 불렸던 배우 박정민의 ‘멜로 눈빛’이 한층 더 진해졌다. 영화 ‘휴민트’를 통해 몸으로 표현하는 화려한 액션은 물론이고, 많은 이들이 기다렸던 ‘박정민표 멜로’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낸 박정민은 장르의 벽을 허무는 유연함으로 더욱 넓어진 연기 스펙트럼의 확장을 알렸다.
‘휴민트’는 비밀도, 진실도 차가운 얼음 바다에 수장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격돌하는 이야기다. ‘베를린’ ‘모가디슈’에 이어 ‘휴민트’로 해외 로케이션 3부작을 완성한 류승완 감독은 ‘밀수’의 주역인 조인성과 박정민을 전면에 내세우며 또 한번 세계관 확장에 나섰다.
무엇보다 ‘휴민트’에서 가장 돋보이는 지점은 처음으로 선보이는 박정민의 멜로 연기다. ‘액션 영화의 탈을 쓴 멜로 영화’라는 평가의 상당수는 그의 눈빛에서 기인한다. 그가 연기하는 북한 국가보위성 조장 박건은 냉정한 판단력을 가졌지만, 우연히 마주친 옛 연인 채선화(신세경 분) 앞에서 전에 없는 혼란 속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흔들리는 눈빛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관객을 스크린 속으로 더욱 빠져들게 만든다.
“멜로 영화의 표피를 둘러싼 영화라기 보다는, 한 인간이 감정적으로 무너지면서 생기는 선택과, 이를 타고 일어나는 비극을 그려낸 영화라고만 생각했다”라며 ‘휴민트’를 처음 접했을 때의 솔직한 생각을 전한 박정민은 이후 촬영이 진행되고 서사가 쌓이면서 영화의 진자 ‘톤앤매너’를 알게 됐다고 밝히면서 “멜로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박건의 감정 상태에 따라 영화가 전복되는 걸 보면서 중요한 역할을 저에게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컸다”며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휴민트’를 통해 ‘멜로 장인’이라는 평을 얻었다. 멜로 연기는 처음으로 알고 있는데, ‘처음’이라고 하기에 어색함이 없었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멜로 연기를 해야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제가 ‘멜로적’으로 가장 부담스러웠던 지점이 딱 한 곳 있었는데, 바로 식당 뒤에서 선화와 만나 대화하는 신이었다. 단 둘이서 이야기를 하는 거의 유일한 장면이었는데, 처음에는 이 신을 어떻게 해야할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저의 부족한 부분은 류승완 감독님께서 많이 도와주셨다. 인성이 형도 감사하게도 현장에 와서 지켜봐 주시고, 끝나고 나서는 저에게 오셔서 귓속말로 ‘좋아좋아’라고 칭찬해 주고 가셨다. 사실 제가 멜로 장면은 찍는 날은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날이었던 것 같다. 물론 신세경 때문은 아니다. (웃음) 그 장면을 찍었던 ‘하루’를 빼고는 ‘휴민트’를 하면서 ‘멜로 연기를 해야지’ 하고 접근기 보다는, ‘한 사람’을 구출하기 위한 마음으로 임했다. 몸의 대화를 하는 신도 많다 보니 액션도 감정적으로 하고자 했고, 여기에 박건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무너져 가는가를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주변의 도움으로 잘 완성된 것 같아 감사하다.
류승완 감독이 조인성에게 ‘촬영이 없더라도 촬영장에 나와서 두 사람(박정민, 신세경)이 멜로를 하는 걸 지켜보자’고 했다고 들었다.
아마 감독님도 ‘멜로 영화 감독’이 아니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웃음) ‘휴민트’는 단순하게 장르적으로 ‘멜로 영화’라고 정해진 작품은 아니다. 촬영하면서 감정적으로 진해진 부분도 있고, 박건과 채선화가 무슨 사이고 어떻게 된 것인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되,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느낌을 줘야 했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 제가 제일 대사 연습을 많이 한 신도 그 장면(두 사람의 첫 대화)이었다. 첫 대사를 어떻게 뱉을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감독님도 제가 고민하는 걸 잘 아시다 보니, 인성이 형에게 SOS를 하신 것 같다. 결과는 걱정과 달리 잘 나왔던 것 같다. 리허설 당시 첫 대사가 ‘잘 지냈소’였는데, 편하게 하니까 오히려 조금 더 가슴이 아픈 느낌이 들더라. 감정을 담지 않고 어렵사리 오랜만에 만나서 했던 이야기가 ‘잘 지냈어’라는 것에서 가슴을 때리는 부분이 있었고, 감독님께서도 ‘이 감정으로 가보자’해서 갔던 기억이 있다.
관객들 사이에서 ‘조인성과 신세경’이 아닌 ‘박정민과 신세’경의 멜로였다. 의외라는 반응도 있었고, 신선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저는 사실 조인성과 박정민이 함께 가는 영화일 줄 알았다, 하하. 두 사람 사이 ‘신세경’이라는 거대한 존재감이 뚝 떨어진 거 같은 느낌이었다. 채선화라는 인물이 ‘휴민트’의 판을 흔드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덕분에 박건으로서 선화라는 인물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함께 호흡을 맞춘 사람으로서, 세경씨에게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크다.
멜로를 표현하다보니, 캐릭터의 외적인 모습도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실제로 작품을 위해 감량을 했다고 들었다.
살 좀 빼고 외적인 모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힘들기는 했지만, 조명 감독님이나 촬영 감독님께서 신나 하시는 모습을 보니 기분은 좋았다. 배우도 와서 고생한 티가 나니, 함께 작업하는 분들도 더 신나서 하려고 하시는 것이 느껴져서, 촬영 있는 날이든 없는 날이든 라트비아 리가 거리를 뛰었다. 감량을 위해 크게 한 운동은 없다. 동생들도 데리고 나와서 뛰기도 했는데, 그 기억이 좋아서 리가에 또 가려고 한다.
조인성, 신세경, 박해준 등 ‘휴민트’에서 같이 연기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과의 호흡이 좋았던 것 같다.
한 명 한 명 이야기하면 밤을 새워야 할 정도 너무 좋았다. 먼저 인성이 형은 기둥 같은, 없으면 안 되는 존재였다. 정말 많이 의지를 했고, 연기적으로도 입에 담기 힘들정도로 많이 배웠다. 세경 씨도 워낙에 베테랑이고, 이미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힘과 매력이 어머어마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카메라 앞에서 ‘큐’라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집중하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로 였다. 해준이 형은 워낙 작품을 많이 했으니 잘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정말 대단한 캐릭터를 들고 와 주셨다. 황치성 처음 촬영장에 등장했을 때, 그를 이기기 위해서는 절대 대충해서 안 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는 아직도 촬영할 때 생각하면 향수병같은 느낌을 받고는 한다. 역 향수병인 거 같다. 우리끼리 쉬는 날, 그리고 촬영이 끝나고 눈 오는 추운 라트비아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영화 이야기하고, 놀고는 했었는데, 내 인생에 다시 이런 현장이 나올까 싶을 정도로 좋았다. 아무래도 모두가 집에 가지 못하는 현장에서 의지할 곳은 서로밖에 없으니, 서로를 챙기고자 하는 앙상블이 더 나오지 않았나 싶다. 지금이 지나면 다시 안 올 거 같은 느낌도 있었기에, 있기에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슬플 정도로 합이 좋았다.
이번 ‘휴민트’ 현장에서 특히 배운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너무 많은 걸 배웠다. 현장에서 태도도 그렇고, 관계에 있어서 태도도 그렇고, 연기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배역을 맡았을 때 배우의 태도, 연기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나의 모자람도 배웠고, 제가 할 수 있는 것도 알게 된 것 같다.
저는 살면서 노리는 것들을 단 한 번도 얻은 적이 없다. 누군가가 저에게 ‘목적이 없는 삶을 산다’고 하기도 했는데, 그 말처럼 크게 노리는 것은 없고, 또 언젠가 아무 생각 없이 하면, 언젠가는 또 누가 알아주시지 않을까 싶다. 제가 배우로 데뷔하고 15년 동안 계속 연기할 수 있는 것, 여기서 이렇게 인터뷰 할 수 있는 건 지나온 모든 시간들이 쌓여서인 거 같다. 노리지 않은 어떤 것들이 저에게 선물을 주기고 하고, 1인분 정도만 하자고 했던 것이 스포트라이트로 돌아올 때도 있다. ‘휴민트’에서 박건을 연기한 것이 무언가를 노리고 한 것이 아닌 만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같다.
2025년, 연기 안식년을 선언했는데, 그 선언이 무색할 정도로 열일 중이다.
찍어둔 작품들이 다 공개됐고, 작년에 쉬어서 이제 나올 작품이 없기에 한창 못 보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에 쉰 업보가 올해 돌아올 예정이다. (웃음) 좋은 작품이 있으면 안 할 이유는 없다. 깊이 공감하고, 절절하다거나, 재밌다 싶은 작품 제안이 온다면 당연히 할 거다. 멜로라고 해서 안 해는 전혀 아니었고.
2020년 설립한 출판사 ‘무제’의 대표이기도 하다. 출판사는 잘 운영되고 있는가.
출판은 열심히 할 예정이다. 무제 출판사는 현재 순항 중이다. 감사하게도 한 책이 잘 팔리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안정적으로 하고 있다. 출판업 시장도 작고 어렵다. 잘 되고 있다고 하는 것도 어쩌면 경거망동이다. 박정민이라는 인간이 출판계에 가서 일을 하게 됐는데, 자기 이익만 취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 좋은 책이 있으면 소개해 드리고, 조금이나마 저변을 넓힐 기회를 만들고 싶다. 전에는 계약된 작가님이 많지 않아서 조금 정체 모를 색이이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 더 문학 작품에 집중도가 있는 출판사로 가는 중인 것 같다. 직원이 3명이나 생겼다, 하하. 제가 혼자 세운 사훈이 있다. ‘우리는 작가를 사랑해야 한다, 작가님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저희를 괴롭히는 작가는 없지만, 괴롭히든 말든 우리의 재산은 작가다. ‘작가님의 말을 거스르지 말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쩌면 매니지먼트의 마음 같기도 하다. 물론 이해와 행동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열심히 회사의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 (웃음)
[금빛나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