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밤, 소박한 밥상 위에서 사람 사는 냄새를 뭉근하게 피워 올리던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이 잠시 숨을 고른다. 지난 21일 스페셜 특집 방송을 끝으로 7년간 이어온 맛의 여정에 쉼표를 찍은 것이다
이 갑작스러운 휴식의 배경에는 안타까운 소식이 자리하고 있다. 여든을 앞둔 79세의 허영만 화백이 약 한 달 전 낙상 사고로 중환자실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제작진은 프로그램의 상징 그 자체인 허 화백의 건강과 회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진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시즌1 종료’라는 결단을 내렸다.
‘백반기행’이 대중문화계에 남긴 발자취는 흔한 맛집 소개 프로그램 그 이상이다. 2019년 첫 방송 이래 무려 2,609일 동안 전국 1,329곳의 노포를 찾았고, 2,131개의 밥상을 마주했으며, 365명의 게스트가 이 여정에 동행했다.
유튜브를 필두로 한 최근의 미디어 생태계는 그야말로 ‘자극의 시대’다. 산더미처럼 음식을 쌓아두고 해치우는 푸드파이터형 먹방이나, 맵고 짠 자극으로 도파민을 쥐어짜 내는 숏폼 콘텐츠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백반기행’은 뚝심 있게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낡은 간판 아래 배어 있는 한 사람의 곰삭은 손맛, 그리고 동네 골목이 품은 묵직한 시간을 천천히 들여다봤다. 음식의 화려함보다 그 밥상을 차려낸 사람들의 주름진 인생을 묵묵히 기록해 온 이 프로그램의 방식은, 속도전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훌륭한 해독제였다.
이 모든 힐링의 중심에는 대체 불가능한 아이콘, 허영만 화백이 있었다. ‘식객’이라는 무거운 수식어에 걸맞게 그는 백발을 휘날리며 전국 팔도를 직접 발로 뛰었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맛을 포장하기보다 조용히 눈을 감고 국물 맛을 음미하는 모습, 그리고 식당 주인의 굴곡진 사연에 다정하게 귀를 기울이는 그의 태도는 ‘백반기행’이 가진 진정성의 뿌리였다. 최근 SNS를 통해 “즐거운 여정이었다”라고 남긴 덤덤한 소회에는, 지난 7년간 만화가이자 성실한 식도락가로서 그가 쏟아부은 무한한 애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의 발걸음은 곧장 선한 영향력으로 이어졌다. ‘백반기행’이 지나간 자리는 단순한 방송 출연을 넘어 죽어가던 골목 상권에 숨을 불어넣었다. 방송 이후 청년들의 핫플레이스로 부활한 ‘문래동 철강 골목’의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지난 21일 마지막 방송에서 “선생님 이름에 보탬이 될 수 있게 더 정직하게 장사하겠다”며 눈시울을 붉힌 전국 식당 사장님들의 영상 편지는, 79세의 식객이 대중과 소상공인들에게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이었는지를 증명한다.
제작진은 이번 종영을 완전한 마침표가 아닌 ‘시즌1의 쉼표’라고 못 박았다. 방송 말미 화면을 채운 “식객 허영만 선생님의 쾌유를 빕니다. 오래도록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자막은 제작진과 시청자 모두의 간절한 마음을 대변한다.
전국 방방곡곡의 좁은 골목에는 아직 허 화백의 방문을 기다리는 수많은 밥상과 사연들이 숨 쉬고 있다. 허영만 화백이 하루빨리 훌훌 털고 일어나,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다시 낡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7년의 따뜻했던 밥상머리 기록은 잠시 멈췄지만, 한층 더 건강해진 발걸음으로 시작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시즌2를 대중은 기꺼운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