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에게 질렸기에”...9년차 아이들(i-dle)이 보여준 본질과 확장 [홍동희 시선]

K팝 씬에서 ‘자체 제작 걸그룹’이라는 타이틀은 시장을 뒤흔드는 가장 독보적인 무기인 동시에 아티스트 스스로를 옥죄는 양날의 검이다.

큐브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아이들(i-dle)은 데뷔곡 ‘LATATA’부터 ‘TOMBOY’, ‘Nxde’에 이르기까지 리더이자 총괄 프로듀서 소연을 필두로 강렬한 콘셉트와 주체적인 서사를 구축해 왔다. 그러나 어느덧 데뷔 9년 차에 접어든 이들에게도 자체 프로듀싱이 주는 타성과 한계는 피해 갈 수 없는 고민이었다.

“스스로에게 질리기도 하고, 익숙한 우리 색깔에 갇히는 듯했다”는 멤버들의 솔직한 고백은 이들이 왜 이 시점에서 급격한 음악적 변주를 선택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사진=김영구 기자
사진=김영구 기자

2024년 말 전원 재계약을 성공시키고, 데뷔 7주년이었던 2025년 5월 기존 ‘(여자)아이들((G)I-DLE)’에서 ‘i-dle (아이들)’로 팀명을 공식 리브랜딩한 이들은, 개개인의 ‘나(I)’를 넘어 하나로 뭉친 ‘우리(We)’로서 새로운 막을 올렸다.

2019년 미니 2집 ‘I made’와 유기적인 수미상관을 이루는 9번째 미니 앨범 ‘We made’는, 이들이 자신들의 음악적 성벽을 허물고 처음 음악을 사랑했던 ‘0의 마음(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깊은 고뇌의 결과물이다.

사진=김영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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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 → 확신 → 사랑’으로 이어지는 3부작의 마침표

이번 앨범은 올해 초부터 이들이 정교하게 빌드업해 온 ‘본질 → 확신 → 사랑’이라는 3단계 유기적 서사를 비로소 완성해 낸다.

변화의 출발점은 지난 1월 발표된 디지털 싱글 ‘Mono (Feat. skaiwater)’였다. 기존의 자극적이고 과격한 사운드를 모두 걷어낸 미니멀 팝 장르로 “Play the whole world in Mono”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오롯이 본질에만 집중하겠다는 태도를 선언했다. 이어진 선공개곡 ‘Crow’는 묵직한 밴드 사운드와 메가크루 퍼포먼스를 전면에 내세우며, 까마귀를 불운이 아닌 ‘다시 날아오르는 의지’로 재해석해 흔들림 없는 자기 확신의 에너지를 뿜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베일을 벗은 타이틀곡 ‘Gimme Dat Love’는 이 본질과 확신의 토대 위에서,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감각인 ‘사랑’을 완성한다.

사진=김영구 기자
사진=김영구 기자

이 유기적인 변화의 중심에는 프로듀서 소연의 과감한 예술적 실험이 자리한다. 그녀는 이번 타이틀곡과 ‘Mono’의 작사·작곡 크레딧에 본명 대신 ‘아이스블루래빗(icebluerabbit)’이라는 이름을 올렸다. 전소연이라는 이름에 씌워진 강렬하고 고양이 같은 선입견을 지우고, 편견 없이 오롯이 음악 소리 자체로 평가받고 싶었다는 갈망에서 비롯된 선택이다.

자신의 정체성이자 ‘추구미’였던 핫걸의 반대인 ‘아이스(Ice)’, 싫어하는 색인 ‘블루(Blue)’, 강아지상인 본인과 대조되는 ‘래빗(Rabbit)’을 조합해 철저하게 자신을 부정하며 만들어낸 이 예술적 부캐릭터는, 이름값 없이도 ‘Mono’로 음악방송 3관왕과 글로벌 차트 상위권을 점령하며 소연의 창작적 저력을 온전히 입증했다.

타이틀곡 ‘Gimme Dat Love’는 매혹적인 휘파람 선율과 절제된 퍼커션이 돋보이는 라틴 팝 기반의 서머 러브송이다. 밝고 시원했던 Y2K 감성의 이전 여름 곡 ‘클락션(Klaxon)’과는 확실하게 선을 긋고, 한여름 밤의 뜨거운 열기와 피부로 전해지는 사랑의 감각을 직관적으로 풀어낸다.

사진=김영구 기자
사진=김영구 기자

음악적 구성에 대한 평가는 흥미롭게 갈린다. 한편에서는 지나치게 레이드백되고 보컬보다 내레이션과 읊조림이 주가 되어 코러스의 타격감이 밋밋하다거나 안티드롭(anti-drop) 구성이 아쉽다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편에서는 프리코러스에서 빌드업되는 극적인 스트링 편곡이 훌륭하며, 자극적인 소스 없이도 성숙한 관능미를 세련되게 담아냈다는 호평이 맞선다.

이 미니멀한 트랙의 매력은 무대 위 퍼포먼스를 만났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습기가 감도는 화장실과 서서히 녹아내리는 비누 등 사랑에 본능적으로 녹아드는 순간을 포착한 감각적 비주얼 연출을 바탕으로, “Come gimme that”이라는 직관적인 가사에 맞추어 유혹하듯 손짓하는 포인트 안무, 리드미컬하게 골반을 튕기는 관능적인 바운스가 여름의 이열치열 무드를 직관적으로 완성한다. 특히 멤버들의 단단한 호흡을 연상케 하는 기차 대형의 ‘트레인 댄스’ 퍼포먼스는 무대 전체를 압도하는 에너지를 전해준다.

‘Gimme Dat Love’ 뮤직비디오
‘Gimme Dat Love’ 뮤직비디오

‘우리’가 만들어낸 다채로운 스펙트럼

앨범은 타이틀곡에만 머무르지 않고, 멤버 전원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우리’의 서사로 확장된다. 멤버 우기가 직접 작사·작곡에 참여한 ‘Love Is Pain’은 이별 이후의 감정을 담아낸 미드 템포 R&B 발라드로, 깊어진 가창력과 섬세한 보컬 스펙트럼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소소한 일상 속의 행복을 노래하는 긍정적인 데일리 라이프 송 ‘Morning’ 또한 팝적인 매력으로 앨범의 밸런스를 균형 있게 채워준다.

현재 이들은 네 번째 월드투어 ‘Syncopation’을 이어가며 K-POP 걸그룹 최초 대만 타이베이돔 전석 매진, 홍콩 최대 규모 공연장인 카이탁 스타디움 양일간 8만 명 관객 동원이라는 압도적인 글로벌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컴백과 동시에 오는 7월 31일 미국 시카고의 역사적인 대형 페스티벌인 ‘롤라팔루자’ 무대와 북미 대형 아레나 투어를 예고한 이들의 비행은 여전히 한계가 없다.

사진=김영구 기자
사진=김영구 기자

“항상 더 잘해야 하고, 더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달려왔지만, 이제는 순간 자체를 즐기고 집중하겠다”는 소연의 선언은, 이번 미니 9집 ‘We made’가 단순한 흥행 성적을 넘어 왜 이들의 커리어에 있어 가장 성숙하고 아름다운 챕터인지를 명확하게 대변하고 있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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