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만큼 극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가수는 드물다. 무대 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창력으로 대중을 열광시키는 국민 가수이지만, 원고지 앞에서는 소외된 것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는 시인이다.
그리고 이제는 가요계 선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인 대한가수협회장이라는 묵직한 타이틀까지 어깨에 짊어졌다.
인터뷰를 위해 기자와 만난 그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 보여주던 ‘무조건’의 직진남을 넘어 인생의 깊은 맛을 아는 단단한 사람의 향기를 풍겼다.
시인 ‘박출’, 원고지 위에 써 내려간 진솔한 자화상
가장 놀라운 변신은 역시 시인 등단이다. 2025년 오륙도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소식은 가요계 안팎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본명 대신 ‘박출’이라는 필명을 쓴 것에 대해 그는 “시인으로 새롭게 태어나자는 뜻”이라고 쑥스럽게 웃었다.
왜 시를 쓰게 되었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뜻밖에도 솔직했다.
“가사를 쓰다 보니까, 제가 말을 좀 잘하는 편은 못 되고 말로 실수를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말보다는 글로 표현을 좀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죠. 시를 쓰는 이유는 모르는 게 많아서 씁니다.”
그렇게 매일 아침 일기장을 쓰듯 뚜벅뚜벅 적어 내려간 글들은 한 권의 시집 ‘허수아비’로 탄생했고, 초판 완판에 이어 2쇄까지 찍는 호응을 얻었다. 정작 본인은 “다양하게 쓴 다른 다섯 작품 중 하나가 될 줄 알았다”며 표제작 ‘허수아비’의 당선이 의외였다고 털어놓았다.
“이게 어떻게 보면 제 얘기일 수도 있어요. 저의 어떤 처참하게 뭉개진 그 삶 속에서 새롭게 뭔가를 해나가는 과정들, 그 아픔들. 이런 제 이야기를 쓴 게 감성적인 부분에서 공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제8대 대한가수협회장, 트로트의 ‘성인가요’ 꼬리표를 떼다
시를 통해 세상을 보듬는 그의 따뜻한 시선은 제8대 대한가수협회장이라는 책임감으로 이어졌다. 남진, 송대관, 태진아 등 쟁쟁한 선배들의 뒤를 이어 1957년부터 이어져 온 역사 깊은 단체의 수장이 된 그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안 하겠다”며 현실적인 가수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그가 취임 후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성과는 바로 명칭 변경이다.
“그동안 트로트나 7080 음악을 보통 ‘성인가요’라고 불렀잖아요. 이번 총회 때 의결해서 그 말을 쓰지 않도록 권고했습니다. 이제 ‘대중가요’죠. 솔직히 젊은 학생들이 더 많이 좋아하는데 왜 우리가 성인가요입니까. 이 꼬리표를 떼어낸 게 올 한 해 제가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 같아요. 가수분들도 굉장히 기뻐하십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으로 중견 가수들의 설 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에 대해서도 “노래 잘하는 가수가 인정받는 건 맞지만, 오디션이 너무 오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선후배를 모두 아우르는 현명한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는 흔적이 역력했다.
현역 가수의 끝없는 질주, “늦었다고 생각할 때 무조건 시작하라”
세 개의 타이틀을 오가는 눈코 뜰 새 없는 일정 속에서도 가수의 본업은 굳건하다.
작년에는 ‘시작이 반’, ‘불정역’, ‘동백꽃’ 등 세 곡을 연달아 발표했다. 특히 제트스키 국가대표 선수 출신 절친한 지인과 오륙도를 돌며 영감을 받아 쓴 ‘동백꽃’이나, 시인 박출의 이름으로 직접 작사한 ‘시작이 반’은 그의 삶이 그대로 녹아든 결과물이다.
그는 ‘시작이 반’의 가사를 짚으며 도전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저도 20대 초반에 실패했고, 보통 끝났다고 생각하는 30대 늦깎이로 다시 올라왔잖아요. 미용일도 했었고요. 그런데 결국 ‘자옥아’ ‘무조건’, ‘황진이’ 같은 히트곡이 나왔죠. 늦었다고 생각할 때 시작하세요. 가다가 멈추면 아니 간 만 못해요. 노력하면 다 됩니다. 노력한 만큼 결과는 온다고 생각합니다.”
멈추지 않는 ‘무조건’의 시계
인터뷰 말미, 그는 “초심을 잃지 않은, 진정성 있었던 가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대중은 그를 그저 에너지가 넘치는 ‘무조건’의 사나이로만 기억할지 모른다. 하지만 가까이서 마주한 박상철은 텅 빈 들판에서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누군가를 위로하는, 자신이 쓴 시 속의 ‘허수아비’를 꼭 닮아 있었다.
상처를 딛고 피워낸 그의 인간적인 온기가, 앞으로 읊조릴 시와 노래에 어떻게 스며들지 그의 역동적인 인생 2막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
*해당 기사는 홍동희 기자의 트로트 인터뷰 유튜브 채널 ‘트로트 테레비’에서 영상 인터뷰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