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와 시기만 조금씩 다를 뿐 누구나에게나 패닉의 순간이 온다. 저마다 패닉을 안고 사는 영화 ‘버티고’ 속 인물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감각을 되찾았다.
‘버티고’는 고층빌딩 사무실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서영(천우희 분)이 창밖 로프공 관우(정재공 분)와 마주하게 되는 아찔한 고공 감성 영화로 서로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과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을 그렸다. 영화 ‘삼거리극장’(2006), ‘뭘 또 그렇게까지’(2009), ‘러브픽션’(2011)을 연출한 전계수 감독의 신작이다.
서영은 고층빌딩에서 일하는 30대 계약직 디자이너다. 서영의 하루하루는 위태로우며 무력함이 전반에 깔려있다. 하나뿐인 가족으로 보이는 엄마와는 사이도 좋지 않고 비밀로 사내 연애 중인 진수(유태오 분)와의 관계도 불안하기만 하다. 서영은 말한다. “오늘 하루도 몹시 흔들렸지만 잘 견뎌냈다. 거리는 튼튼하니 이제 안심”이라고.
영화 ‘버티고’ 포스터 사진=트리플픽쳐스
주변의 모든 것은 서영의 현 상황을 대변한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마구잡이로 솟구친 고층빌딩이, 자의로 유일하게 붙잡고 있는 진수와의 관계가 서영에게는 그저 불안하기만 하다. 어지럼증과 이명을 앓고 있는 서영은 날카로운 혼돈의 시기를 지나는 중이다. 실제로 사람이 고층에 올라가면 그렇게나 민감하던 감각이 무뎌지듯 서영에게는 하루하루가 그렇다. 출근하자마자 컵에 물을 따라 빌딩이 흔들리는지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일상이란 녹록하지가 않다.
서영을 둘러싼 관계는 불완전하다. 이혼남인 진수에게는 남모를 사정이 있고, 아빠가 아닌 남자와 살고 있는 엄마는 필요한 게 있을 때만 전화를 거니 서영은 마음 터놓을 데 하나 없다. 그런 그에게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오래 전부터 봐온 사람인 듯 로프공 관우가 다가온다. 한없이 흔들리는 세상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던 서영에게 감각을 되찾아줄 사람이 찾아온 거다. 영화가 후반부로 향할 때까지 두 인물은 이렇다 할 대화도 나누지 않지만 왠지 이들은 서로를 퍽 잘 이해하는 모양새다. 그렇게 서영은 죽어가던 감각의 결을 몸과 마음으로 느낀다.
‘버티고’는 오롯이 서영의 혼돈과 무기력함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진수의 사정, 관우의 사정도 뚜렷한 한 축을 담당한다. 결국은 다들 자신만의 패닉을 버티고 있다는 이야기를 과하지 않게 담아낸 ‘버티고’다. 16일 개봉.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