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가 이렇게 천진하고 대범할 수 있으리라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멜로 대가 허진호 감독이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로 그려낸 두 벗의 이면은 역사의 빈 공간을 흥미롭게 채운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이하 ‘천문’)은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과 장영실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배우 한석규가 세종, 최민식이 장영실을 맡았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 ‘외출’(2005), ‘행복’(2007), ‘덕혜옹주’(2016)로 인물의 감정선을 세심하게 포착한 허진호 감독의 신작이다.
세종은 관노 출신 영실의 남들과 다른 재능을 대번에 알아본다. 세종의 눈에 띈 덕에 영실은 종3품까지 오르고 두 인물은 같은 하늘을 보며 같은 꿈을 꾼다. 그렇게 20여 년의 세월을 벗으로 지내다가 세종 24년, 세종이 이천 행궁으로 행차하던 도중 안여가 부서지는 일이 발생하고 그 뒤 영실은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천문’이 태어났다. 허진호 감독은 세종과 계급을 뛰어넘은 우정을 쌓았던 영실이 왜 기록 저편으로 사라졌는지, 두 인물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빈틈을 상상력으로 채워 넣는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포스터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세종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줄 수 있는 이는 영실뿐이었다. 세종이 상상하면 영실은 그 상상에 현실을 덧대어 형태로 만들어냈다. 아랍에서 가져온 코끼리 그림을 우리의 것으로 다시 만들면 된다는 영실의 진심 어린 한 마디가 세종을 매료했다. 영리한 과학자이자 순수한 예술가로서 영실을 세종이 어찌 아끼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후 둘은 세상 둘째가라면 서러운 벗이 된다. 늘 천대 받던 영실도 자신의 진가를, 희로애락 알아봐준 세종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목숨도 바칠 우애를 갖는다.
‘천문’은 순차적 구성이 아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을 취한다. 세종과 영실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시기와 행복은 오간 데 없이 사라지고 피폐함만 남은 시절이 교차로 제시된다. 여기서 감정의 진폭이 생긴다. 이들은 서로의 불행이 곧 자신의 것이 되고 서로가 없이는 의미를 찾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빈자리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세종과 영실의 쓸쓸한 감정이 관객들로 하여금 천진난만한 웃음 소리를 내던 두 인물이 그리워지게 만든다.
단숨에 눈과 귀를 사로잡는 거대한 영화적 사건이나 감정을 동요케 하는 지점은 거의 없다. ‘천문’은 그런 영화가 아니다. 세종과 영실의 우애 그보다 깊은, 형언하지 못할 어떤 감정을 따라가는 영화다. 이 때문에 보는 이들마다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감독의 전작들을 떠올리면 ‘천문’ 속 감정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진 않는다. 기본적인 고증을 놓치지 않았다는 데에서 사극으로, 천진함과 대범함이 섞였다는 데에선 하나의 멜로처럼 다가온다. 신선하고 애정 가득한 재해석이다. 오는 26일 개봉.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