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원의 거액을 쏟아부은 신작들이 시청률 가뭄과 화제성 부족으로 처참하게 고개를 숙이는 2026년 하반기 방송가. 수렁에 빠진 JTBC를 구원한 것은 놀랍게도 창고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7년 전 구작 드라마였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23일 JTBC ‘드라마 보석함’ 코너를 통해 재방영된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이 전국 유료 플랫폼 가입 가구 기준 1.769%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이날 방영된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 중 당당히 전체 1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미 2019년에 본방송을 마친 구작이 주말 황금 시간대(토 밤 10시 40분, 일 밤 10시 30분)에 재편성되어 신작들을 꺾고 종편 일일 시청률 정상을 밟은 것은 가히 이례적인 대반전이다.
“지금 섭외하면 회당 수억 원”… 변우석·박지훈 뭉친 전설의 캐스팅
이 기묘하고도 통쾌한 시청률 역주행의 중심에는 현재 대한민국 연예계를 쥐락펴락하는 두 톱스타, 변우석과 박지훈이 있다.
방송을 접한 시청자들 사이에서 “지금 다시 보니 캐스팅이 미쳤다”, “선견지명이 대단하다”는 감탄이 쏟아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신드롬급 인기를 구가 중인 변우석과 ‘천만 배우’ 반열에 오른 박지훈, 여기에 탄탄한 주연급으로 성장한 김민재와 공승연까지. 지금 당장 이 네 사람을 한 앵글에 담으려면 천문학적인 캐스팅 비용과 1년 이상의 스케줄 조율이 필요할 정도로 몸값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대작 스케일의 제작비로도 쉽게 품을 수 없는 라인업을 7년 전 구작을 통해 안방극장에서 공짜로 즐기게 된 셈이다.
변우석의 ‘떡잎’ 증명… ‘로코 장인’의 시초가 된 치명적 한복 자태
특히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오가며 독보적인 대세로 군림 중인 변우석의 풋풋한 떡잎 시절을 복기하는 재미는 이번 재방영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다.
극 중 한량처럼 보이지만 남다른 지식과 혜안을 품은 한양 최고의 정보꾼 ‘도준’ 역을 맡았던 그는, 당시에도 흠잡을 데 없는 화려한 한복 자태를 뽐내며 지금의 ‘로코 장인’ 수식어를 예견케 하는 완벽한 비주얼을 자랑했다.
무엇보다 돋보인 것은 그의 입체적인 감정 연기였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깊은 상처를 능청스러운 미소 뒤에 숨긴 짙은 내면 연기는 물론, 신분을 뛰어넘는 직진 로맨스를 섬세하게 소화해 내며 대중에게 묘한 설렘을 안겼다.
당시 훤칠한 ‘모델 출신 신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던 그가 어떻게 단숨에 극의 흐름을 쥐락펴락하는 주연급 연기자로 도약할 수 있었는지, 그 무한한 잠재력의 폭발을 이 작품이 낱낱이 증명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변우석 신드롬’이 결코 하루아침에 운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천만 배우’ 박지훈의 변곡점, 그리고 묵직한 청춘의 성장기
여기에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평단과 대중을 모두 홀린 박지훈의 20대 초반 연기를 다시 보는 맛도 각별하다. 화려한 외모 이면에 ‘망나니’로 불렸던 과거의 상처를 품은 ‘고영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려낸 그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완벽한 성인 연기자로 도약하는 발판을 다졌다.
화려한 비주얼에 가려져 있던 극의 탄탄한 메시지도 재평가받고 있다. ‘알고있지만,’, ‘굿파트너’ 등을 연출하며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김가람 감독은 당시 “꽃파당 멤버들은 사회적 소수자로 각자의 결함이 있고, 로맨스는 시청자를 웃게 만드는 양념일 뿐 본질은 상처를 딛고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역설했다. 조건과 스펙만을 좇는 현대 사회에 “조건보다 마음이 먼저”라는 돌직구를 던진 7년 전의 묵직한 서사는 지금의 대중에게도 짙은 여운을 남긴다.
영리하고 씁쓸한 편성의 승리(?)
‘꽃파당’의 종편 1위 탈환은 최근 방송가가 당면한 ‘제작비 위기’ 속에서 탄생한 가장 영리한 틈새 전략의 승리이자, 씁쓸한 산업적 단면이기도 하다.
회당 수십억 원을 상회하는 텐트폴 드라마들이 난립하지만 뻔한 서사로 시청자의 외면을 받는 사이, 떡잎부터 남달랐던 대세 배우들이 포진한 ‘웰메이드 구작’이 오히려 안방극장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있다.
박지훈의 스크린 흥행 직후 웨이브 등 OTT 차트를 점령했던 역주행 신드롬이 이제 지상파와 종편의 TV 재편성 시청률로 직접 연결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막대한 자본 대신 영리한 선구안으로 시청률을 낚아챈 JTBC의 ‘드라마 보석함’. 7년 전 ‘꽃파당’이 2026년 방송가에 쏘아 올린 이 통쾌한 반란이 침체된 K-드라마 시장에 어떤 뼈아픈 경종을 울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