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하루 만에 한국 넷플릭스 1위, 글로벌 26개국 톱10에 진입하며 화제성 몰이에는 확실히 성공했다.
지난 18일 공개된 넷플릭스 8부작 오리지널 시리즈 ‘스캔들’ 이야기다. 정지우 감독이 연출을 맡고 손예진, 지창욱, 나나라는 화려한 캐스팅을 내세워 2003년 한국 영화계의 센세이션이었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23년 만에 리메이크했다.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타이틀과 함께 파격적인 노출과 사랑 내기를 예고하며 대중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했지만, 뚜껑을 연 ‘스캔들’은 욕망의 불꽃보다는 미지근한 온돌방에 가깝다.
19금의 함정 : 노출은 있으나 관능은 휘발됐다
이번 작품이 가장 큰 어그로를 끈 대목은 단연 ‘수위’다. 조선시대 가부장적 억압 속 남녀의 은밀한 애정 행각을 다룬 만큼 시청자들은 끈적하고 치명적인 에로티시즘을 기대했다. 하지만 극 전체가 자극적인 장면에 집중하기보다는 누가 먼저 마음을 흔드는지에 대한 심리전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실제 노출 수위가 아주 높다기보다는 5회와 7회 등 특정 회차에 노출 장면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글로벌 매체 리뷰에서 지창욱의 뒤태 노출이 언급될 만큼 파격적인 시도는 있었으나, 물리적인 살색의 향연이 곧 관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2003년 원작 영화가 보여주었던, 심장을 죄어오던 끈적한 농염함과 애틋함은 온데간데없이 휘발되었다. 남녀의 육체적 교감마저도 정지우 감독 특유의 차분하고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려 치정극 특유의 쫀쫀한 재미를 주지 못한다.
8부작의 늪 : 영화적 여백을 핑계 삼은 ‘OTT 호흡’의 실패
단편 영화 한 편 분량(124분)이었던 원작을 약 450분에 달하는 8부작으로 늘려놓은 것은 이 작품의 가장 뼈아픈 패착이다.
감독은 길어진 호흡을 활용해 조씨부인, 조원, 희연의 과거 서사와 심리적 균열을 깊이 있게 그려내려 시도했다. 서신을 읽는 보이스오버 형식이나 인물들의 침묵, 미세한 표정 변화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나 이는 몰아보기를 유도해야 하는 OTT 플랫폼의 특성을 철저히 망각한 낡은 연출이다. 서스펜스는 늘어지고, 인물들의 감정이 깊어지기보다는 공회전하는 대화만 길어진다. 전작인 넷플릭스 시리즈 ‘썸바디’에서도 지적받았던 늘어지는 템포의 문제가 고스란히 반복되며, 후반부로 갈수록 시청자에게 심각한 피로감을 안긴다. 느린 호흡 탓에 해외 매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엇갈린 공기 : 명배우들도 극복 못한 미스캐스팅
2003년 영화가 걸작으로 남은 이유는 이미숙, 배용준, 전도연이라는 완벽한 트라이앵글이 뿜어내는 화학작용 덕분이었다. 반면 이번 시리즈의 주연 3인방은 각자의 이름값이 무색하게 겉돈다.
24년 만에 사극에 복귀한 손예진(조씨부인 역)은 치열하게 연기하지만, 원작 이미숙이 뿜어내던 권태로우면서도 상대를 쥐고 흔드는 농염한 카리스마를 대체하기엔 다소 정형화된 비장미에 머문다. 지창욱(조원 역) 역시 쾌락을 좇다 무너지는 한량의 텅 빈 내면을 표현하기보다는, 현대 트렌디 드라마 속 능글맞은 로맨스 주인공의 옷을 벗지 못한 인상을 준다.
가장 큰 이질감은 나나(희연 역)에게서 온다. 첫 사극 도전인 그는 시크하고 도회적인 마스크 탓에 한복의 실루엣과 부조화를 이룬다. 정숙한 여인을 표현하려 어깨를 움츠리고 시선을 내리까는 작위적인 신체 연기는 몰입을 방해하며, 전도연이 보여줬던 티 없이 맑으면서도 처연한 아우라의 빈자리를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빛 좋은 개살구 : 그럼에도 남은 것은 ‘눈 호강’ 미장센
빈약한 서사와 겉도는 연기에도 불구하고 시청을 멈추기 힘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시각적 성취 덕분이다. 북촌한옥마을에서 영감을 받아 구현된 아름다운 한옥 세트장과 공간의 미학은 훌륭하다. 단원 김홍도나 신사임당의 그림 속에 들어온 듯한 소박하고도 생생한 색채 미장센, 유려한 한복의 질감은 글로벌 시청자들을 매혹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주연들의 빈틈을 기민하게 메우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 소옥 역의 한선화의 호연도 가뭄에 콩 나듯 극을 살리는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결론적으로 넷플릭스 ‘스캔들’은 잘 꾸며진 고급스러운 한옥 갤러리 안에서 벌어지는 지루한 인형극 같다. 화려하고 속도감 있는 사극, 혹은 원작의 강렬한 관능미를 기대한 시청자라면 리모콘의 재생 버튼 클릭을 다시 한번 재고해보는게 어떨까.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