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울면 어떡하나 걱정했습니다. 이병헌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연기 오마카세’를 맛보기 위해, 영화를 영화답게 만들어주는 극장이라는 곳에서 관객들을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승부’ 김형주 감독)
우여곡절 끝에 영화 ‘승부’가 세상에 나온다. ‘연기 오마카세’라는 표현처럼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완성도를 높였으나, ‘유아인의 마약’으로 ‘어두운 터널’안에 갇혔었던 영화 ‘승부’는 어려운 영화계에 활기라는 승부수를 띄울 수 있을까.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승부’ 언론배급시사회가 진행됐다. 이날 현장에는 이병헌, 고창석, 현봉식, 문정희, 조우진, 김형주 감독이 참석했다.
‘승부’는 바둑이 최고의 두뇌 스포츠로 추앙받던 90년대를 배경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바둑 레전드 조훈현(이병헌)이 제자와의 대결에서 패한 후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다시 한번 정상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승부’는 이병헌과 함께 영화를 이끌어 가는 또 다른 주인공 유아인의 ‘마약 스캔들’로 인해 개봉이 무기한으로 미뤄졌던 영화다. ‘승부’가 드디어 빛을 보는 것에 대해 “우여곡절 끝에 극장에서 세상에 내놓게 됐다. 그것만으로 기쁘고 감격스럽다”고 말한 김형주 감독은 “항상 기본적으로 잊지 않았던 것은, 저 또한 바둑을 하나도 모르기에, 바둑을 모르는 관객들 또한 이 영화를 보는데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저희 영화지만, 힐링이 됐다”고 말한 문정희는 “누군가에게 배우기도 하고 가르침을 주기도 하는 자리는 사람이 사는 데 늘 오는 것 같다. 따뜻한 영화를 많은 분들이 나누고 그래서 더 자극적이지 않는데 자극적이었다. 신선했기에 많은 분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바둑계를 대표하는 양대 산맥과도 같은 전설 조훈현과 이창호의 명승부를 영화로 풀어낸 ‘승부’에서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바둑계의 레전드 ‘조훈현 국수’ 그 자체가 된 이병헌의 압도적인 연기력이다. 조우진은 이병헌의 연기에 “거창한 표현일 수 있지만 존경하는 이병헌 형님의 화려한 타이틀 방어전을 목격한 느낌이 들었다. 명언이 많은 작품이지 않나 싶다. 수많은 명언을 훌륭하신 선배와 배우가 읊었을 때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을 목격했다”고 고백했다.
이병헌은 “저는 처음 시나리오도 읽고 승부의 여러 자료화면을 보면서 정말 이렇게까지 드라마틱한 일들이 실화로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두 레전드가 이러한 사연이 있고 이러한 과정을 보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촬영 가장 중요한 것들이 바둑판 앞에서 감정변화 없이 무표정하고 정적인 가운데 폭발하는 감정부터 절망 등의 여러 극단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연기를 할 때의 중점을 두었던 부분에 대해 고백했다.
“정적인 가운데서 표현하는 작은 움직임과 작은 눈빛의 떨림으로 안에서 크게 움직이는 감정을 표현하는 부분들이 어려웠다”고 거듭 말한 이병헌은 최고의 자리에 있다가 자신이 키운 제자에게 패한 후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정상에 올라가는 조훈현 구단을 연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밝히며 “영화에서는 한줄 대사로 초심을 찾았지만, 실제 그 마음은 상상하기 힘든 정도의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부분을 연기하고 감정을 읽어내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거 같다”고 전했다.
외모뿐 아니라 이번 작품을 위해 프로 바둑 기사들에게 레슨을 받으며 바둑돌을 두는 손가락 끝까지 완벽한 프로 바둑 기사의 몸짓을 구현해 냈다는 평을 받는 이병헌은 싱크로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바둑을 어떻게 두는지에 대한 것은 저에게는 급선무는 아니었다. 바둑을 두는 사람들의 눈빛과 행동과 손짓고 마음가짐과 크게 질 거 같다고 생각했을 때 느낌들, 이길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는 포인트에서 오는 버릇들을 많이 캐내고 발견하는 쪽으로 노력했다”며 “기본적으로 바둑을 놓고 거둬가고, 빽빽하게 있는 돌들 안에 거침없이 건들이지 않고 놔야하는 기술은 반복밖에는 방법이 따로 없었다. 집에다 바둑판을 가져다 놓고 계속 아들과 틈만 나면 바둑을 두지 않고 오목을 뒀는데 그래도 돌을 놓고 치우고 하는 것들에 익숙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고백했다.
‘승부’는 80, 90년대 서울을 재현하기 위해 서울 시내에서 90년대 분위기를 풍기는 로케이션을 선정하는 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 영화 곳곳에 시대의 고증을 바탕으로 디테일한 소품과 각 인물의 의상에 심혈을 기울이며 조훈현과 이창호 구단의 승부를 완벽하게 만들어 냈다.
이에 대해 김형주 감독은 “고증은 미술 소품이나 공간 같은 경우는 쉽게 찾거나 촬영을 진행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공간 하나를 4~5개로 찢어서 그 시대를 담으려고 노력했다. 두 실존 인물을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 순간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큰 얼개는 고증을 따르되,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스승과 제자가 처음 만나는 타이밍을 다르게 하는가 하면, 조훈현 국수의 경우 영화에서 완강하게 몰아붙이는 식으로 훈육을 하지도 않았다. 어린 시절 창호의 경우 이창호 국수 본인이 장난꾸러기고 쾌활하다는 문구가 있어서, 거기에 기대 아이다운 면을 부각시키면서 성인 배우와 차별화를 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상 ‘메인 두 개국’을 차별화해서 갔다. 첫 대결의 경우 두 사람의 격렬한 감정 시퀀스라고 생각해서 느린 호흡의 감정 위주의 호흡, 편집도 느리게 했다면, 파이널 대국의 경우 두 사람 다 승부에 초연해진, 성장한 모습을 담고 싶어서 대국을 즐기는 것처럼 둬 달라고 부탁했다. 스포츠 중계를 하듯이 템포가 있는 음악과 바둑 캐스터의 해설을 차용해서 스피디하고 축구경기나 야구 경기를 보듯이 즐길 수 있도록 주안점을 두었다”며 “촬영과 편집에서도 밸런스를 많이 고민했다. 무게 추가 조훈현에게 있지만 두 사람의 성장담이라고 생각했다. 대국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뉠 때도 주연배우의 밸런스에 유의하면서 작업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배우와 감독, 제작진까지 웰메이드 라인업으로 작품성을 높인 ‘승부’는 이병헌 뿐 아니라, 고창석, 현봉식, 문정희, 김강훈, 그리고 특별 출연한 조우진까지 연기력에서 전혀 흠잡을 데 없는 라인업을 자랑했다. 무엇보다 이제는 ‘악마의 재능’으로 전락하고 만 유아인 역시 ‘석불’로 불리는 이창호 구단으로서 완벽한 연기를 펼쳐내며 이병헌과의 팽팬한 승부를 이어나갔다.
‘승부’에 있어서 가장 큰 장벽이 된 유아인에 대해 “마음 같아서는 따로 술 한잔하면서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한 김형주 감독은 “캐스팅 당시에는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다”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주연배우로서 무책임하고 실망스러운 사건이었다. 배우이기 전에 사회 구성원으로 잘못을 범했고, 그에 따른 처벌을 받고 있는 중이기에, 제가 더 드릴 수 있는 말은 없는 거 같다”고 말을 아꼈다.
긴 기다림 끝에 개봉하게 된 것에 대해 김형주 감독은 “지옥 같은 터널에 갇혀있는 느낌이었다.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막막했던 거 같다. 저 출구 쪽에 한줄기 개봉이라는 빛이 보여서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어서 감격스럽기도 하다”며 “저 못지않게 함께 했던 배우들과 스태프들도 개봉을 기다렸는데 같이 고생해 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가고,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요즘”이라고 감격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김형주 감독은 ‘유아인의 연기’를 불편한 시선으로 보는 것에 대해 “선택과 판단을 하는 건 대중의 몫이니 강요할 수 없지만, 영화를 있는 그대로 봐주셨으면 하는 어려운 부탁을 드리고 싶다. 본의 아니게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상처를 받게 됐다. 따뜻한 마음으로 연고를 발라주신다는 심정으로 바라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승부’는 3월 26일에 개봉된다.
[금빛나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