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FC 이정효(50) 감독의 답은 명쾌했다.
“제도가 왜 중요한가. 제도는 중요한 게 아니다. 제도가 어떻든 구단의 목적, 의지가 명확하면 그 길로 나아가면 된다. 다음으로 중요한 건 감독의 목적과 의지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2026시즌부터 K리그(1·2)에 큰 변화를 준다.
K리그 모든 팀이 내년부터 외국인 선수를 무제한으로 보유할 수 있다. 단, K리그1의 경기당 출전 외국인 선수는 4명에서 5명으로 1명 늘었다. K리그2는 4명을 유지했다.
변화는 또 있다. K리그1에선 U-22(22세 이하) 선수의 출전 여부와 관계없이 경기 중 5명을 교체할 수 있게 했다. 연맹은 ‘출전 명단(총 20명)에 U-22 선수가 2명 이상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규정만 유지했다.
U-22 선수를 출전 명단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해서 교체 카드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U-22 선수가 명단에 한 명밖에 없으면, 엔트리만 19명으로 준다. U-22 선수가 한 명도 없으면, 엔트리는 18명으로 구성해야 한다.
이 감독은 K리그 최고의 스타로 꼽히는 지도자로 대한축구협회(KFA) 이사로도 재직 중이다. ‘MK스포츠’가 이 감독의 생각을 물었다.
Q. 내년부터 K리그1이 바뀐다. 모든 팀이 외국인 선수를 무제한으로 보유하고, 경기당 출전 수가 5명으로 1명 늘었다. U-22 제도는 K리그1에서 사실상 폐지됐다.
외국인 선수 제도와 U-22 제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긴 고민 끝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나에게 ‘제도가 왜 중요한가’란 물음을 던졌다. 제도가 중요한가. 나는 ‘제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제도가 어떻든 구단의 목적, 의지가 명확하면 아무 문제 없다. 다음으로 중요한 건 팀을 이끄는 감독의 목적과 의지다.
Q.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구단은 방향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선수 육성으로 나아갈 것이냐’, ‘당장 성과를 낼 것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그 목적에 따라서 팀을 운영하면 된다. U-22 제도가 있든 없든 육성에 초점을 맞춘 구단은 계속해서 젊은 선수 성장에 힘을 쏟으면 된다. 자금력이 있고, 올해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은 좋은 내·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면 된다. 구단의 목적이 정말 중요하다. 목적이 명확하다면, 그 목적에 맞는 감독을 선임하는 것도 구단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
Q. K리그에서 구단의 방향성과 시스템이 구축된 팀은 몇 없다. 선수단이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광주가 특이한 사례일 정도다. 냉정하게 K리그엔 눈앞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는 게 전부인 팀이 많다.
팀의 방향성과 목적이 중요한 이유다. K리그1 우승만이 목표가 아닐 수 있다. 자금력이 되는 구단은 K리그1을 넘어서 아시아 무대로 나아가야 한다. 우린 왜 아시아 정상을 꿈꾸지 않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투자가 막대하긴 하나, K리그1 팀도 아시아 무대에서 충분히 우승에 도전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본다. 아시아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 구단을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단, 모든 팀의 자금력이 풍족한 건 아니다. 재정이 어려운 구단은 선수 육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선수 육성에 초점을 맞추면, 구단 재정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선수 이적으로 높은 이적료를 받아서 더 유망한 선수를 영입해 키워나갈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육성과 성적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기회도 올 것이다. 그 방향성이 정말 명확해야 한다. 덧붙여 이젠 세상이 바뀌었다. 구단마다 다르겠지만, 감독의 일이 더 많아졌다.
Q. 무슨 뜻인가.
우리 K리그에선 감독도 돈을 벌어야 한다. K리그를 보면, 전체적으로 인프라가 아쉽다. 더 명확히 말하면, 인프라가 안 좋다. 팀 숫자가 계속해서 늘어난다. 선수의 경쟁력을 키우려면, 훈련 환경이 기본이다. 여기에 질 좋은 훈련이 더해져야 한다. 그래야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경기장을 찾아주시는 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드릴 수 있다. 재밌는 경기는 더 많은 팬을 경기장으로 불러들일 거다.
Q. K리그에선 계속해서 잔디가 문제 된다.
핵심이다. 질 좋은 훈련을 하려면, 좋은 훈련장이 필요하다. 마음껏 연습할 수 있는 잔디가 있어야 한다. 좋은 잔디가 있어야 좋은 훈련을 하고, 좋은 경기력을 보여드릴 수 있다. 많은 팬은 좋은 경기력으로부터 나온다. 세상에 어느 누가 재미없는 경기에 자기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나.
Q. 2022년부터 광주를 이끌고 있다. 광주의 명확한 방향성은 무엇인가.
우린 선수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선수가 성장해야 팀이 발전한다. 팀이 성장하면, 더 많은 팬이 경기장을 찾고, 좋은 문화가 생길 거다. 실전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 선수를 여럿 육성하면, 구단 재정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를 재투자로 이어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면, 당장은 재정이 열악할지 모르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성장할 수 있다. 재투자의 범위 안엔 클럽하우스, 좋은 훈련장 등이 포함될 거다.
Q. 광주는 기업구단과 비교해 열악한 환경 속 매 시즌 나름의 성과를 내지 않나.
우린 매 시즌 고군분투(孤軍奮鬪)한다. 많은 분이 ‘감독과 선수들이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우리가 무언가 도와줄 게 없을까’ 고민하신다. 많은 팬이 우리가 어려울 때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주셨다. 조빈 씨처럼 잘 안 보이는 곳에서 선수단을 지원해 주시는 분도 여럿이다. 정말 감사한 분들이다. 우리가 그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좋은 축구뿐이다. 지금보다 좋은 경기력을 보이면, 우릴 사랑해 주시고 도와주시는 분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Q. 광주도 한 해 성적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지 않은가.
좀 안타까운 점은 있다. 솔직히 힘들다. 선수를 육성해서 이적료가 발생하면 인프라에 재투자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한 해 한 해 운영에만 신경 쓰다 보니 발전이 더디다. 어떻게든 한 해를 마무리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 새해가 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다. 광주가 계속 버텨야만 하는 팀이란 게 너무 아쉽다. 우리가 국가대표 선수를 여럿 배출했다. 여러 선수를 더 좋은 구단으로 보냈다. 우린 남은 게 없다.
물론, 광주에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하면 좋아진 점도 많다. 이 팀에 처음 왔을 땐 맨땅이었다. 훈련장이 없었다. 지금은 훈련장 두 면이 생겼다. 조빈 씨가 도와주셔서 웨이트 트레이닝장 시설이 아주 좋아졌다. 프런트의 노력으로 구단 홍보도 예전보다 많이 되고 있다. 그런데 광주월드컵경기장으로 홈구장을 이전한 뒤 다시 아쉬운 점이 생겼다.
Q. 11월 2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 SK전(2-0)이 끝나고 김경민이 잔디 상태 등 환경에 대한 아쉬움을 강하게 표현했었다.
잔디가 참 아쉽다. 우리가 광주월드컵경기장으로 홈구장을 옮기지 않았나. 훈련 땐 광주월드컵경기장을 못 쓴다. 경기 때만 광주월드컵경기장 잔디를 밟는다. 그런데 잔디가 안 좋다. 한 달에 많아야 2~3번 홈구장을 쓴다. 우리 홈경기 외에 잔디를 쓰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훈련을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한다면 이해한다. 그게 아니지 않나. 그런 부분이 참 아쉽다.
Q. 당장 대안이 있나.
모르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방법뿐이다. 힘들 때일수록 팬들을 생각한다. 우리 같은 구단은 앞서서도 말했지만, 감독인 나 역시 돈을 벌어야 한다. 선수를 성장시켜서 이적료 수익을 올려야 한다. 대한민국 모든 감독이 힘드시긴 할 거다. 하지만, 우리 축구 현실상 이 방법이 아니면, 좋은 미래를 마주하기 어렵다. 우리 지도자가 인식을 바꾸고 구단의 재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Q. 감독이 수익까지 생각하기엔 어려운 점이 있다. 당장 성적을 못 내면 잘리는 일이 흔하지 않은가.
구단이 자신들의 방향성에 맞는 지도자를 선임해야 하는 이유다. 구단을 계획대로 이끌어줄 수 있는 지도자를 신중하게 선임했으면 한다. 그렇게 신중을 거듭해 감독을 선임했으면, 조금 기다려줘야 한다. 구단이 신중하게 감독을 선임했기에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Q. 외국인 선수 제도 변화로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가 있다. ‘내국인 선수 몸값이 시장 규모에 비해서 너무 크게 뛰어올랐다’는 거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능력 있는 내국인 선수에게 많이 줄 수 있으면, 주면 된다. 많이 쓰는 팀은 그렇게 하고, 많이 쓸 수 없는 팀은 육성에 초점을 맞춰서 나아가면 된다. ‘무분별하게 선수 연봉이 많다’ 혹은 ‘선수 연봉이 적다’ 이야기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논의할 게 아니다. 선수의 연봉은 구단 재정 상황에 맞게끔 책정하면 된다. 내가 예전에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서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Q. 어떤?
몸값이 20억 원인 A란 선수가 있다고 치자. A를 영입한다고 해서 20억 원인 선수가 또 생기진 않는다. 하지만, 몸값이 20억 원인 감독은 20억 원짜리 선수를 무한대로 만들 수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먼저냐, 알이 먼저냐다. 나는 늘 ‘거위가 먼저’라고 본다. 좋은 선수를 육성하는 지도자가 정말 중요하다.
Q. 내년에 시도민구단이 3개 더 생긴다. 앞서서 인프라 얘기를 했다.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구단 수만 늘리는 게 맞는 건가. 냉정하게 K리그에선 기본 중의 기본인 잔디 관리도 제대로 안 되지 않나.
여기에 대한 답변은 KFA 이사로서 하고 싶다. 프로축구팀이 늘어나는 건 어린 선수들에게 아주 좋은 기회다. 많은 기회가 생기는 거다. 여기서 만족하면 안 된다. 우리 선배 축구인들이 어린 선수들이 좋은 환경에서 훈련하고, 질 좋은 훈련을 받도록 해줘야 한다. 요즘 축구계에서 ‘축구 인구가 없다’고 얘기한다. 글쎄.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Q. 이유가 무엇인가.
축구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면, 더 많은 이가 축구를 할 거다. 인프라가 좋으면, 어린 선수들이 꿈을 크게 갖고 더 열심히 노력할 거다. 질 좋은 훈련장에서 훈련을 거듭하면, 지금보다 기술 좋은 선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볼을 인조 잔디에서 차는 것과 천연 잔디에서 차는 건 천지 차이다. 안 좋은 환경에서 볼을 차면 부상 위험도가 너무 높다. 환경이 지금보다 좋아지면, 유소년 축구가 단단해지면서 한국 축구는 더 발전할 것이다. 나는 ‘왜 우린 어릴 땐 잘했는데 커서는 못할까’란 일부의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Q.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간단하다. 크면 클수록 더 좋은 환경에서 훈련해야 한다. 한국 최고의 프로선수들이 사용하는 훈련장은 달라야 한다. 훈련의 질도 마찬가지다. 훈련이 달라지면, 어릴 때 잘했던 선수들은 더 잘하게 된다. 우리가 명확하게 알아야 할 게 있다. ‘재능이 뛰어난 선수는 논두렁에서 축구해도 잘한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Q. 잘하는 선수는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느낌으로 그런 얘길 많이 하긴 한다.
다 옛날 말이다. 세상이 바뀌어도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좋은 잔디에서 좋은 훈련을 받아야 좋은 선수로 성장한다. 좋은 지도자, 선수 개인의 노력 등은 기본이다. 나는 일단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나서 선수 탓을 하든 지도자 탓을 하든 하자는 거다.
Q. 한 가지 일화가 있다. 2013년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포항 스틸러스가 리그와 코리아컵을 모두 우승했다. 그때 포항은 외국인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축구계에선 이후 ‘포항은 외국인 선수 없이 우승했다’는 걸 이유로 투자를 줄였다. 광주가 2024-25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에서 기업구단들보다 좋은 성적을 냈다. 환경이 늘 안 좋다고 하나, 계속해서 성과를 낸다. 일부 구단은 광주의 사례를 얘기하며 투자를 줄인다. 이런 부분에 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돈을 안 써서 잘하는 게 아니다. 돈을 쓰면, 더 잘할 수 있다. 투자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다. 나는 자신 있다. 나는 우리 선수들 칭찬을 많이 한다. 선수들에게 “너희는 정말 대단하다”고 한다. 하나 강조하고 싶은 건 ‘불공정하다’는 생각은 안 했으면 한다. 돈이 있든 없든 그 환경에 맞춰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투자가 막대하다고 우승하는 거 아니다. 축구는 그렇게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돈을 적게 쓰는 팀이라고 해서 우승하지 말란 법도 없다. 단, 우승에 대한 열망과 더 많은 팬을 바란다면, 더 큰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그게 팀이 바라는 방향으로 더 빨리 나아가는 방법이다.
Q. 수원 삼성이 1995년 창단했다. 이후 ‘오직 축구란 콘텐츠에 매력을 느껴서’ 생겨난 기업 구단은 서울 이랜드 하나다. 하나금융그룹이 대전 시티즌을 인수해 대전하나시티즌으로 재탄생했지만, 하나금융그룹은 오래전부터 축구계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하나은행이 대전의 시금고란 특수성도 존재한다. 기업이 K리그에 투자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래서 감독들도 돈을 벌어야 한다. 이젠 ‘투자해달라’고만 해선 안 된다. 누군가 투자를 했으면, 돌아가는 게 있어야 하지 않나. 언제까지 투자만 요청할 순 없다. 우리 광주도 ‘시민들 혈세로 운영되는 팀’이란 얘기를 많이 하신다. 세금에 계속해서 의존할 순 없다. 감독도 돈을 벌어서 팀 운영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돈을 더 벌면, 그 돈을 구단 운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대구=이근승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