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대에서도 자신의 진가를 더 증명한 이정후(24, 키움). 이제 더 높이 비상할 일만 남았다.
일본의 중심타자 요시다 마사타카(보스턴)가 최근 자신의 SNS에 ‘조만간 봅시다’라는 글과 함께 이정후와 방망이를 교환하고 있는 사진을 게재했다. 이정후는 그 글에 ‘좋은 시즌 보내세요. 또 만나요’라는 글을 써서 다시 자신의 SNS에 올렸다.
한일(韓日) 양국을 대표하는 두 타자의 훈훈한 우정이 빛난 장면이었는데, 이들이 나눈 덕담은 단순히 말로만 그치지 않을 공산이 매우 크다. 이들의 공통점은 각각 양국의 최고의 교타자로 꼽히는 동시에 스캇 보라스를 에이전트로 두고 있는 이들이란 점이다.
대회를 앞두고 지난 오프시즌에 포스팅시스템으로 보스턴 레드삭스와 5년간 9000만 달러라는 역대급 규모로 계약한 요시다와 이정후의 활약 여부를 조명하는 기사들이 많았다. 이정후가 요시다를 뛰어넘거나 못지않은 활약을 한다면 5살이 더 어리고 그에 못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정후가 메이저리그 대형 계약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논조의 기사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예측은 실제가 될 전망이다. 한국은 2승 2패로 아쉽게 B조 3위로 대회를 마무리했지만 이정후는 4경에서 타율 0.429(14타수 6안타), 5타점, 4득점을 기록하며 자신의 몫을 다했다. 수비에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고, 최종 중국전에선 도루까지 해내며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였다.
외신에서도 대회 이전부터 이정후의 활약을 기대하는 기사들이 많았고, 대회 중에도 이정후의 단독 인터뷰가 MLB.com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일본 언론도 마찬가지다. 거의 한국 관련 모든 기사에 이정후의 이름이 포함될 정도로 활약 여부를 조명했다. 이젠 대회 활약이 더해지면서 이정후의 인지도는 외신들이 한국 야구를 거론할 때 반드시 포함될 정도다.
대회 최종전 중국전 이후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일본 언론을 통해 직접적인 러브콜 의사를 묻는 질문이 나왔다.
한 일본 매체 기자는 “이번에 일본에서 플레이해봤고 아버지도 일본 NPB에서 뛰었던 경험이 있다. 언젠가는 일본 야구계에서 뛰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정후는 “지금 일단은 한국에서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올 시즌 끝나고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아직은 미국에 가서 도전하고 싶은 바람”이라며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의지를 전했다. 이정후의 말대로 KBO리그의 2023 시즌이 지금 진행중인 시범경기가 끝나면 곧 시작된다. 이정후의 올 시즌이 더 기대되는 이유가 있다.
이번 대회 개인적인 수확과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는 질문에 이정후는 이렇게 답했다.
“빠른 공들과 많이 변화하는 공을 치기 위해 겨울 동안 준비했다. 그것들을 시합할 무대가 된 것 같았는데, 다른 팀과 경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고 일본하고 했을 때 일본 투수 공을 그래도 헛스윙 없이 잘 대처했다는 것이 수확인것 같다.”
무엇보다 이정후는 짧은 오프시즌 기간 타격 자세의 탑 포지션(타격 시작 단계에서 방망이를 잡은 위치)을 기존 보다 훨씬 낮춰 얼굴 높이로 오게하게 하고 스탠스를 일부 수정하는 등 빠른 볼에 적응하기 위한 타격폼을 더 간결하게 바꾸는 변화를 가져갔다. 그리고 이를 곧바로 적용해내며 WBC에서도 국제용 타자라는 걸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이렇듯 이정후는 아직 더 성장할 기대치가 남아있는 타자다. 기자회견에서 이정후는 “많은 팬분들과 국민들께서 기대를 많이하셨는데 결과 이렇게 돼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라며 “나를 비롯해서 많은 어린 선수들이 참가했지만 우리 기량은 세계의 많은선수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발전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음 WBC에서는 좋은 모습 보이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겠다”고 했다.
또 이정후는 이번 대회를 돌이켜 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타석은 다르빗슈 상대 안타도 기억남지만 첫 타석에 우측 파울 타구 날렸을 때 인 것 같다”고 구체적인 장면 하나를 콕 꼬집었다.
1회 첫 타석에서 다르빗슈의 컷패스트볼(140km)의 스트라이크존 앞에서의 급격한 변화를 놓치지 않고 커트해 파울을 만든 장면이다. 이정후는 2-0으로 앞선 3회 두 번째 타석에서도 다르빗슈의 153km 포심패스트볼을 받아쳐 좌전안타를 만들어냈다. 이정후에겐 가슴이 후련한 성공의 장면보다 의도한 대로 만든 타석의 과정 하나가 더 기억에 남았던 듯 했다.
그런 이정후의 모습은 요시다는 물론이고, 메이저리그에서 이미 95승을 올린 베테랑 다르빗슈의 눈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인상적이었다 보다.
다르빗슈는 14일 이정후가 자신의 SNS에 WBC 소감을 올린 글에 직접 댓글을 달아 “함께 뛰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정후 역시 “코멘트 고맙다. 당신과 함께 메이저리그에서 뛰기 위해 계속 더 열심히 뛰겠다”고 화답했다.
이정후는 소속 구단 키움의 허락하에 올 시즌 종료 후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미국 메이저리그로 진출할 수 있다. 요시다와 다르빗슈, 그리고 이정후의 ‘만남에 대한 약속’은 머지 않아 곧 이뤄질 전망이다. 당장 올 시즌부터 시작해 이정후의 앞날은 훨훨 날아갈 일만 남은 듯 보인다.
[도쿄(일본)=김원익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