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중 별명이 ‘파키스탄’인 친구가 있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유난히 얼굴색이 까무잡잡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별명을 붙인 친구들은 이 별명에 대해 특별히 거부감이 없는 모습이었다. 당사자는 어땠을지 모르겠다(마음 상했다면 지금이라도 사과하고싶다). 아무튼 20세기말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의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 수준은 딱 그정도였다. ‘세계화’라는 단어가 나온지 몇 년 안된 시기였고 거리에 외국인만 보여도 놀라던 시대였다.
그리고 지금은 2023년이고, 우리는 초등학생들이 아닌 다 큰 성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도 무려 지난 시즌 K리그1 우승팀 소속이며 대표팀까지 차출된 선수들이다.
이 선수들은 소속팀 동료 소셜미디어에 댓글로 피부색이 까무잡잡한 동료를 놀리는 과정에서 선을 넘었다. 팀 동료 이규성이 ‘동남아시아 쿼터 든든하다’는 글을 남기자 정승현은 ‘기가 막히네’라는 말로 동조했고 박용우는 ‘사살락 폼 미쳤다’며 태국 출신 선수 사살락 하이프라콘의 이름을 언급한 것.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인종차별이었다. 뜬금없이 이름이 소환된 사살락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에 대한 항의의 뜻을 드러냈다.
이들의 소속팀 감독인 홍명보 감독도 “팀을 책임지는 감독으로서 물의에 대해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고, 프로축구연맹도 상벌위원회 개최를 예고했다.
이들중 박용우와 정승현은 국가대표팀에 소집됐다. 소속팀 감독이 고개를 숙였고 연맹은 징계 심사를 예고했다. 국가대표팀과 이를 관리하는 축구협회에서도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그리고 돌아온 조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경기 출전이었다.
정승현은 6월 A매치 두 경기에서 모두 선발 출전했고, 박용우는 페루전에서 교체 출전, 엘살바도르전에서 선발 출전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척’은 할 수 없으니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도 뭔가 말을 했다. 상황을 알고 있었다고 말한 그는 “소집 이후 보여준 태도를 긍정적으로 지켜봤고 훈련 기간에도 묵묵히 자기 역할을 소화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어린 선수는 더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주위 도움이 필요하고, 그를 통해 선수가 성장하도록 해야한다”는 말을 남겼다.
틀린말은 아니다. 아직 젊은 선수들이고, 이번 일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대표팀밖에서 일어난 일이니 징계를 내리기도 애매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경기에 내보내서는 안됐다.
당장 최악의 교육효과를 냈다. 이를 본 어린 축구선수들은 뭐라 생각했을까? 아마 선배들이 그랬듯 ‘아무렇지도 않게’ 인종차별적인 생각과 말들을 이어가도 문제없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최소한 ‘징계가 내려질 때까지는’ 대표팀 활동을 정지시켜야했다. 대표팀 캠프에서 내보내야했다. 징계 절차가 완료될 때까지는 필드에 내보내서는 안됐다. ‘그 선수가 성장하도록 돕는 일’은 그 다음 문제다. 인종차별은 ‘축구보다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세계 축구계는 현재 인종차별과 싸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같은 A매치 기간 카타르와 경기를 한 뉴질랜드는 상대 선수가 경기 도중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한 뒤 심판들이 이에 대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않자 후반전 경기를 거부했다. 뉴질랜드 축구협회장은 이를 ‘축구보다 더 큰 문제’라 칭하며 선수들의 결단을 지지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뉴질랜드보다 월드컵도 많이 나갔지만 이런 문제에 대한 대처에 있어서는 한참 멀었음을 보여줬다. 이러고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할 수 있을까? 이번 A매치를 보면 경기력에서도 이를 장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클린스만 감독에게 묻는다. 두 선수에 대한 출전 강행은 본인의 생각인가? 아니면 ‘높으신 분’의 지시인가?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지를 하고 있었나? 독일이나 미국 축구대표팀 감독이었어도 이렇게 넘어갔을까?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게 묻는다. 이 사태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는가? 대표팀 관리 책임자로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선수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경기에 나간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렇게 상황을 묵인할 것인가?
두 사람에게 동시에 묻는다. 당신들은 인종차별을 묵인했다. 이를 인종차별에 대한 지지 의사로 간주하려고 한다. 괜찮은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두 사람에게 그 자리는 너무 과분한 자리라는 뜻이다. 그 자리에서 조용히 내려오기를 권한다.
[피츠버그(미국) =김재호 MK스포츠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