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감독에 의존하면서 버벅거리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 내국인 감독을 믿고 기용하면서도 잘나가는 일본 남자축구대표팀. 지난 3월부터 위르겐 클린스만(59·독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는 최근 사우디와의 평가전에서 1대0으로 이겨 3무 2패 끝에 첫 승리를 거뒀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반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직후 모리야스 하지메(55) 감독이 사령탑에 오른 일본팀은 최근 독일, 튀르키예 등 강호들과의 4차례 A매치에서 매 경기 4골 이상을 기록하며 4연승을 거두었다. 외국인 감독의 한국팀과 내국인 감독의 일본팀이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것이다.
문제는 남녀대표팀의 감독을 외국인에게만 의지하려는 대한축구협회(회장 정몽규) 임원들의 국내 감독 기피 풍조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오는 11월부터 시작하는 2026년 북중미 월드컵축구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좌절의 쓴맛을 봐야만 정신을 차릴 것인가.
아시아지역에서 유일하게 1986년 멕시코대회부터 2022년 카타르대회까지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올랐던 한국축구가 위기에 직면해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팀 컬러와 성적이 좌우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어떤 형태로든 해법이 나와야 하는 상황이다.
클린스만의 한국대표팀 감독 영입은 지난 1월 11일 축구협회가 이용수(64) 전력강화위원장 후임에 독일 출신으로 2018년 4월부터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맡아왔던 미하엘 뮐러(58)를 선임하면서 본격화됐다.
뮐러는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한국의 16강전 견인을 주도했던 파울루 벤투(55·포르투갈·작년 12월 임기 만료)의 후임 감독으로 호세 보르달라스(59·스페인) 전 스페인 프로축구팀 발렌시아 감독 등과 접촉했으나 3월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클린스만 전 독일대표팀 감독을 연봉 20억 원(추정)에 선임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과 1996년 UEFA 유로에서 독일의 우승을 이끌었던 클린스만은 감독으로도 활약해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독일의 3위 입상을 주도했다. 하지만 2018년 미국대표팀 감독을 마친 뒤 2020년까지 독일 헤르타 BSC 팀을 지도했으나 이후 약 3년간 감독직을 맡지 못해 선수로서는 명성을 얻었으나 감독으로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이런 평가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클린스만 감독 부임 이후 한국축구는 부진의 연속이었다. 감독 부임 약 한 달 뒤인 지난 3월 23일 울산에서 열린 콜롬비아와의 데뷔전에서 손흥민의 멀티골로 간신히 2대2 무승부를 이뤘고, 3월 28일 우루과이와 경기(서울 상암)에서는 1대 2로 져 첫 패배를 기록했다.
이어 6월 16일 부산에서 열린 페루와의 경기에서도 0대1로 일격을 당해 실망감을 안겼고, 나흘 뒤 대전에서 열린 약체 엘살바도르와의 경기에서도 1대1로 비겼다. 평가전에서 2무 2패를 기록한 가운데 지난 8일 영국 카디프에서 열린 웨일스와의 경기 역시 손흥민 김민재 등 정예 멤버들이 모두 나갔으나 0대0 무승부에 그쳐 축구팬들의 불만이 고조됐다.
다행히 13일 영국 뉴캐슬 제임스파크에서 열린 사우디와의 경기에서는 조규성의 결승골에 힘입어 1대0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6전 1승 3무 2패의 전적에 만족할 수 없는 상황.
클린스만의 ‘지각 첫 승’은 지난 2000년 이후 한국에서 활약한 외국인 감독 가운데 가장 늦은 것이다. 조 본프레레(77), 핌 베어백(1956~2019), 딕 아드보카트(76·이상 네덜란드), 율리 슈틸리케(69·독일) 벤투 등은 데뷔전에서, 움베르트 쿠엘루(73·포르투갈)는 세 번째 경기에서, 거스 히딩크(77 · 네덜란드)는 네 번째 경기에서 첫 승을 올렸는데 클린스만은 여섯 번째 경기에서 기록했다.
하지만 클린스만의 사우디전 승리에도 축구계의 반응은 시원치 않다. 세계랭킹에서 한국은 28위로 54위인 사우디를 상대로 18개 슈팅(유효슈팅 9개)을 날리고도 1득점에 그쳤기 때문이다.
축구계는 국내 상주 약속을 어기고 걸핏하면 해외 자택으로 날아가 재택근무 등 ‘외유’를 선호해온 클린스만의 불성실한 근무태도뿐 아니라 지도력에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번 영국에서의 가진 평가전 상대인 웨일스나 사우디의 전력이 한국에 비해 한 수 아래라는 평가에다가 경기 장소를 영국으로 잡은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국팀과 오는 10월 17일 수원에서 평가전을 치를 베트남은 세계랭킹 95위로 과연 국내에 초청할 가치가 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아울러 여자대표팀의 사령탑도 콜린 벨(62·영국) 감독이어서 남녀대표팀 감독이 모두 자국인인 일본과 대조를 보인다.
이 같은 축구대표팀의 비정상적인 운영에 대해 축구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들은 대한축구협회의 조정으로 정상화할 수 있지만 회장사인 현대그룹에서 파견된 비전문가가 축구 행정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5년 넘게 이끄는 일본 남자대표팀은 최근 국가대표팀 간 A매치에서 4연속 4득점 등 18골을 터뜨리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대전 상대도 튀르키예, 독일 등 강호로서 한국이 상대해온 약체팀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일본은 지난 12일 벨기에 헹크에서 열린 튀르키예와의 경기에서 4대2로 승리했다. 모리야스 감독은 이날 경기에서 지난 10일 독일과의 경기에 선발로 나섰던 11명의 선수 가운데 10명을 2진으로 바꿔 경기를 치렀는데도 2골 차 승리를 거두었다.
일본은 이틀 전 독일과의 경기에서도 4대1로 이겨 최근 A매치에서 4연승을 기록했다. 일본은 독일과의 경기에서 볼 점유율은 33% 대 67%로 밀렸지만, 슈팅 수에선 14 대 11로 앞섰다. 특히 유효슈팅 수에선 11 대 3으로 크게 앞섰다.
한국이 지난 8일 웨일스와의 A매치 때 볼 점유율에서 61% 대 39%로 앞서고도 슈팅 수(4 대 11)와 유효슈팅 수(1 대 4)에서 뒤졌던 것과 대비되는 경기력이었다. 일본은 2022 카타르월드컵 때도 24%의 볼 점유율로 독일을 잡았다.
일본은 자국 지도자가 사령탑을 맡아 아시아 최강의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대표팀은 한국이 15위로 가까스로 16강에 올랐던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9위의 성적을 낸 모리야스 감독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직후부터 지휘봉을 계속 잡고 있으며 2026년 북중미 월드컵까지 일본 대표팀을 이끌 계획이다.
일본 여자대표팀도 지난 8월 호주 뉴질랜드에서 열렸던 2023 여자월드컵에서 8강 진출의 돌풍을 일으켰던 이케다 후토시(53) 감독이 맡고 있어 한국과 대비된다.
이종세(대한언론인회 총괄부회장·전 동아일보 체육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