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로의 향기가 난다.”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를 거치는 시기 한화 이글스 담당 기자와 야구 관계자를 통해 요나단 페라자(25)에 대해 이 같은 얘기를 들었을 때 기자는 코웃음을 쳤다. 오랜만에 ‘라떼 모드’가 제대로 발동했다. 그 선수가 KBO리그에서 뛸 시절 원바운드 수준으로 떨어지는 공을 무릎을 굽힌 채로 팔 스윙으로만 홈런을 친 이야기, 공수주를 다 갖춘 역대 최고 수준의 5툴 플레이어였다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 말을 꺼낸 상대에게 ‘오버 그만 좀 하라’고 단속하기에 바빴다. 아직 정식 데뷔도 안 한 외국인 타자를 KBO리그 역대 한 시즌 외국인 선수 최다 홈런(48홈런)을 경신했던 타자와 닮았다고? 운동 능력만으로는 역대 최고로 꼽아도 무방할 타자와? 그런 평가를 받는 전 삼성 외국인 타자 야마이코 나바로와 페라자를 비교하다니 말도 안된다는 식의 반응을 했다.
그런데 정규시즌 개막 이후 페라자의 활약을 보며, ‘어쩌면’이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 건 왜일까. ‘물건’이라는 평가가 자자했던 페라자는 실제로 보니 그 이상이었다. 마치 그 시절 나바로를 연상케 하는 엄청난 운동 능력과 폭발적인 타격을 본 순간 ‘찾았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페라자는 진짜 ‘괴물’이었다.
한화 이글스의 외국인 타자 페라자의 2024 시즌 초반 기세가 심상치 않다. 10경기서 타율 0.500(36타수 18안타)/12득점/5홈런 10타점/1도루/출루율 0.578/장타율 1.000/OPS 1.578의 엄청난 성적을 기록 중이다. 10개 구단 외국인 타자 가운데선 가장 돋보이는 출발이다.
동시에 페라자는 타율, 홈런(공동), 득점(공동), 출루율, 장타율, OPS 등 주요 핵심 타격 지표에서 모두 선두에 올라 리그에서도 가장 위협적인 타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부지표를 들여다보면 더욱 놀랍다. 페라자는 wRC+(파크팩터 반영 조정 득점 창출력)에서도 315.4로 독보적인 1위를 기록 중이다. 득점권 타율이 0.500에 달하며 8번의 병살타 상황에서도 한 차례도 더블플레이 타구를 만들지 않으면서 꼬박꼬박 팀 배팅을 해내며 제 몫을 했다.
페라자의 경기에서의 활약을 돌이켜보면 결정적인 순간 제대로 터지고 있다는 점이 특히 해결사로서의 기대감이 더 커지는 이유다. 한화의 연승행진이 중단된 지난 4일 대전 롯데전서도 페라자는 1-4로 뒤진 5회 말 1사 1,3루서 경기를 원점으로 돌리는 우월 스리런 홈런을 날렸다. 홈런 직후 방망이를 집어 던지며 포효하는 페라자를 보며 한화 팬들이 전율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페라자의 초반 활약이 반짝이 아닐 것이란 기대가 드는 이유는 그의 야구 능력이 KBO리그에서 만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기대에서다.
지난해 11월 한화는 페라자와 계약하면서 계약금 20만 달러, 연봉 60만 달러, 옵션 20만 달러를 지불하며 첫 해 외국인 선수 계약 상한액 100만 달러를 모두 채웠다. 페라자에 대해 수비력 등에 대해 일부 구단들의 우려가 있었지만 꾸준한 성장세로 지난해 트리플A 121경기서 23홈런 85타점 OPS 0.922를 기록하며 타격 성장세가 폭발한 조짐이 보였다는 점에서 한화는 과감한 베팅을 했다.
그리고 페라자는 밀어쳐서 홈런을 만들고, 당겨쳐서 총알 같은 타구를 만들어내는 등 175cm의 작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탄력과 운동 능력을 앞세워 24시즌 초반 KBO리그를 폭격 중이다.
과거 삼성에서 뛰었던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나바로는 워크에식이나 태도 면에선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 운동능력과 재능만큼은 압도적이었다. 당시 삼성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에서도 문제아인 나바로에게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지만 야구장에서 나바로의 5툴 플레이어로서의 능력에 대해선 의심하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실제 나바로는 첫 시즌이었던 2014년 125경기서 타율 0.308/31홈런/98타점/OPS 0.969기록한데 이어 2015년엔 140경기서 타율 0.287/48홈런/137타점 OPS 0.989를 기록하며 폭발했다. 48홈런을 KBO리그 역대 단일 시즌 최다 홈런 6위 기록인 동시에 여전히 외국인 타자 역대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다. 짧은 2시즌간의 활약임에도 불구하고 나바로가 삼성 역대 최고의 외국인 타자로 꼽히는 이유다.
그리고 베네수엘라 출신의 외국인 타자 페라자는 겨우 10경기만에 벌써 올해 최고의 외국인 타자로 거론되고 있다. 페라자는 제2의 나바로가 될 수 있을까.
김원익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