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이었다. 유승민(43) 전 대한탁구협회장이 예상을 깨고 제42대 대한체육회 회장에 당선, 한국 체육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유승민의 회장 당선은 당선인 개인의 영광에 앞서 3연임을 노렸던 이기흥(70) 현 체육회장의 ‘과욕’을 선거인단이 심판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 같은 새바람이 구정 이후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한축구협회 회장 선거까지 이어질지 축구계도 긴장하고 있다. 정몽규(63) 회장의 4연임 시도를 축구인들이 막아낼지가 초미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1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치러진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유승민은 총투표수 1209표 중 417표를 획득, 379표를 얻은 이기흥 현 회장을 38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3위는 216표의 강태선(76) 서울시 체육회장, 4위는 120표의 강신욱(70) 단국대 명예교수, 5위는 59표의 오주영(40) 전 대한 세팍타크로 회장, 6위는 김용주(64) 전 강원도 체육회 사무처장이 기록했다.
유승민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금메달리스트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대한체육회 회장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기인 출신이 한국 체육 수장으로 처음 뽑힌 것은 1989년 2월 럭비선수 출신인 김종렬 회장이 경선을 통해 제30대회장에 당선됐다. 이어 2013년 유도선수 출신인 김정행(82) 전 용인대 총장이 38대 회장에 당선됐으며 2016년 생활체육협의회와의 통합 과정에서 물러났다.
유승민의 등장은 신선하다. 우선 43세의 젊은 나이가 매력적이다. 유승민은 34세였던 2016년, 8년 임기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발탁됐다. 2017년 대한탁구협회 이사를 거쳐 2019년에는 대 선배와의 경선을 거쳐 37세에 대한탁구협회 회장의 중책을 맡았다.
정현숙(73) 이에리사(70)가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구기 사상 처음으로 여자단체 우승 신화를 엮어냈다면 유승민은 중국의 ‘만리장성’을 넘어 사상 최초로 남자 단식 우승을 거머쥔 탁구 영웅이다.
이번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지난 7일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전국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에서 유승민(38.6%)이 1위로 발표됐을 때 만해도 “설마 유승민이 되겠느냐”는 회의론이 우세했다. 당시 2위는 강신욱(6.6%) 3, 4위는 4% 초반대의 강태선, 이기흥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14일의 선거가 체육회 선거인단의 투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민 여론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여전히 ‘이기흥 대세론’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8년간 대한체육회장 자격으로 전국을 누비며 각종 체육행사에 참석,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는 등 사실상의 사전 선거운동을 해온 이기흥 회장이 절대 유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이 같은 호재를 이기흥 회장이 놓칠 리 없다.
이 회장은 지난해 7월 회장 3연임 불가의 대한체육회 정관을 개정했으나 문체부의 반대로 무산되자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공정위(위원장 김병철)의 의결을 거쳐 대한체육회장 3연임 도전 승인을 끌어냈다.
그러나 15명의 스포츠공정 위원을 모두 이기흥 회장이 임명한 데다 김병철 위원장은 2년간이나 이 회장의 특별보좌관(유급)을 역임, ‘셀프 승인’이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이기흥 회장은 막무가내 3연임에 도전했다.
이 회장의 일방통행에 제동을 건 것은 시, 도 체육회가 추천한 1200여 명의 선거인단. 체육인 또는 체육 관련 종사자들로 구성된 이들은 예상을 깨고 이기흥 대신 유승민을 택한 것이다. 이번 선거가 유승민의 승리 이전에 체육인 모두의 승리로 평가되는 이유다.
이제 제55대 대한축구협회 회장 선거가 남아있다. 2013년부터 3연임을 해온 정몽규 회장이 4연임을 겨냥하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2년간 위르겐 클린스만(독일)과 홍명보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하는 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을 빚은 장본인이다.
또 승부조작 가담자 기습사면 시도와 천안 축구종합센터 건립 과정에서 보조금 허위 신청 등 의혹에 휩싸여 문체부로부터 특별감사를 받은 끝에 결국 ‘자격정지 이상’의 중징계 요구를 받았다.
축구협회는 이와 관련 문체부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지난 2일 기각당했다. 과연 ‘자격정지 이상’의 중징계를 눈앞에 두고 있는 정 회장이 대한축구협회 회장 선거에 나설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종세(대한언론인회 총괄부회장·전 동아일보 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