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일(50) 감독은 계획형 인간이다. 제주 SK 감독 시절엔 보통 오후 10시에 취침해 오전 5시에 일어나 일과를 시작했다. 남 감독은 자신이 짜놓은 일정에 맞춰서 일과를 보냈다.
남 감독의 일과에서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축구다. 남 감독은 “축구가 여전히 아주 재밌다”고 한다. 남 감독의 아내는 “축구로 스트레스받으면 축구로 푸는 사람”이라며 남편에게 “그게 그리 좋으냐”라고 묻는다
남 감독의 별명은 ‘승격 전도사’다. 광주 FC, 성남 FC, 제주 등 맡아본 모든 팀의 승격을 일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승격시킨 모든 팀을 K리그1에 안정적으로 정착시켰다. 제주 시절인 2021시즌엔 K리그1 4위를 기록했다. 제주가 K리그1 승격을 일구자마자 낸 성적이다.
남 감독은 2024년 1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남 감독이 중국 슈퍼리그 허난 FC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
허난는 ‘감독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팀이다. 김학범, 장외룡 한국의 두 베테랑 지도자도 이곳에선 6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허난은 재정이 넉넉한 팀이 아니다. 허난은 상하이 하이강, 상하이 선화 등 슈퍼리그 최상위 구단처럼 수준급 외국인 선수 영입이 불가능하다. 허난은 매 시즌 슈퍼리그 잔류 경쟁에 사활을 거는 하위권 팀이다.
남 감독은 허난을 맡자마자 성과를 냈다.
남 감독이 이끌었던 허난은 2024시즌 슈퍼리그 8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연속성을 가지고 나아가는 건 쉽지 않았다. 남 감독은 2025년 4월 허난 지휘봉을 내려놔야 했다.
남 감독은 “감독 생활하면서 석 달 이상 쉬어본 적이 없다”며 “이번 기회에 잘 쉬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K리그1, 2를 꼼꼼하게 챙겨보고 있다. 특히 선수 개개인의 능력과 특성을 잘 살핀다. 선수를 잘 알아야 선수와 팀 모두 발전시킬 수 있는 까닭이다. 유럽 축구가 개막하는 9월쯤엔 현지를 돌면서 여러 리그를 챙겨볼 예정”이라고 전했다.
‘MK스포츠’가 남 감독과 나눈 이야기다.
Q. 요즘 슈퍼리그 관련 기사들을 보면 부정적인 게 많다. 잘 지냈던 건가.
요즘 한국 언론에 비추어지는 기사만 보면, 슈퍼리그는 아주 안 좋은 곳이다(웃음). 내가 올 시즌 중 허난에서 감독 생활을 그만두긴 했지만, 중국이란 곳이 그 정도로 나쁜 환경은 아니다. 나는 좋은 기억이 훨씬 더 많다. 슈퍼리그 구단, 선수, 중국 생활 등 긍정적인 요인이 상당히 많은 데 안 좋은 면이 너무 많이 비치다 보니까 안타까운 듯하다.
Q. 중국 생활에 상당히 만족했던 것 같다.
나도 처음엔 선입견이 있었다. 허난으로 향할 때 고민이 많았다. 허난에서 슈퍼리그를 직접 경험해보니 사실과 다른 게 너무 많더라. 슈퍼리그란 리그 자체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물론, 세상에 완벽한 곳은 없다고 본다. 아쉽거나 부족한 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다만, 서로를 이해하고 생활한다면, 한층 더 성장을 꾀할 수 있는 곳이다. 한국에서 많은 선수와 지도자가 중국을 경험하지 않나. 단순히 연봉만 많이 준다고 해서 가는 건 아니라고 본다.
Q. 슈퍼리그에서 ‘K리그와 가장 크게 달랐다’고 느낀 건 무엇이었나.
팬들이다. 특히나 우리 허난 팬들은 진짜 셌다.
Q. 강성이었구나.
강했다(웃음). 그래도 축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시설 등이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시스템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중국 선수들의 기량이나 잠재력도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감독으로 아주 좋은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Q. 허난은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는 팀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허난은 ‘감독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것 같더라. 김학범 제주 감독이 허난에선 5개월 만에 경질됐다. 중국에서 경험이 풍부한 장외룡 감독도 허난에선 6개월 만에 팀을 떠났다. 그런 허난에서 1년 4개월을 버텼다. 허난의 역사를 살펴보면, 1시즌 이상 감독직을 유지한 게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더라.
허난에선 감독직을 1년 이상 유지한 이를 찾기 어렵다. 슈퍼리그가 몇몇 팀을 제외하곤 많이 어려워졌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에 출전하는 팀들이야 큰 걱정이 없겠지만, 몇 년 사이 슈퍼리그에선 해체되는 팀도 있었다. 허난도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Q. 그런 팀에서 2024시즌 슈퍼리그 8위를 기록했다.
우리 팀에 유명한 선수는 없었지만, 끈끈한 팀을 만들었다. 주변에선 ‘강등을 피하기 어렵다’는 전망을 내놨었다. 한국인 감독으로 무언가 보여주고 싶었다. 구단에서도 최대한 많은 도움을 주려고 했다. 서로 소통하면서 목적을 이루고자 노력했다.
Q. 허난에서 나올 땐 어땠나.
세상에 아름답기만 한 이별은 없을 거다. 하지만, ‘웃으면서 헤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조금씩 양보했다. 구단에서 보상 등을 신경 써줬다. 내가 외국인 감독이었다 보니 ‘한국에서처럼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팬들이 너무 센 것 말고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나 싶다.
Q. K리그도 점점 거칠어지는 팬 문화로 걱정이다.
슈퍼리그에선 여전히 물병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익숙하다. K리그 팬들은 그래도 구단의 목소리를 들어보려고 하지 않나. 대화를 원하는 거다. 내가 느낀 슈퍼리그는 그게 아니었다. ‘팬들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거였다. 그 부분이 조금 아쉽더라. 팬들에게 내 생각을 얘기하고 싶은 적이 한두 번 아니었다.
Q. 허난 팬들은 어떤 부분에서 불만이 있었던 거였나.
예를 들면 나는 더 공격적인 축구를 하고자 측면 공격수를 수비 쪽으로 내려서 활용했다. 측면 공격수를 수비 쪽으로 내려서 활용하면, 공격 시 공격 숫자가 2명이 된다. 나는 수비 위치에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를 활용해서 더 공격적인 축구를 하려고 했다. 팬들은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팬들은 ‘공격수면 무조건 올려서 써야 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표시했다. 팬들에게 이런 부분을 설명할 기회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Q. 제주에서 나온 뒤 본래 슈퍼리그 쪽은 생각이 없지 않았나.
우연찮은 기회에 인연이 닿았다. 처음엔 ‘우한 싼전 쪽에서 관심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쪽 관계자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고민이 많았다. 왜냐하면 우한 쪽 상황이 그렇게 좋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건 등에서 서로의 생각도 달랐다. 그땐 다음을 기약했었다.
Q. 중국으로 바로 간 게 아니었구나.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던 중 허난에서 연락이 왔다. 내게 연락을 준 이가 수원 삼성에서 뛰었던 중국 축구의 전설 리 웨이펑이었다. 그 친구가 허난 부단장이었다. 리 웨이펑이 “우린 네가 필요하다. 최대한 지원을 약속하겠다”고 했다. 리 웨이펑의 의지가 대단히 크고 진심이란 걸 느꼈다. 리 웨이펑의 약속이 허난을 택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Q. 약속이 잘 지켜진 거 같진 않던데.
리 웨이펑 위에 구단 단장과 대표이사가 있었다. 리 웨이펑과 그들의 생각이 많이 달랐다. 특히나 대표이사가 소극적이었다. 리 웨이펑이 중간에서 많이 미안해했다. 힘들어하기도 했다. 어쩌겠나. 사람 일이 뜻대로 되는 게 아닌걸. 힘든 상황에서도 누군가의 탓을 하진 않으려고 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한 것 같다.
Q. 남기일 감독의 축구 인생에서 처음 ‘외국인 감독’으로 살아봤다.
외국인 감독에 대한 처우는 확실히 좋았다. 생활 환경도 만족스러웠다. 구단에서 신경을 많이 써줬다. 문제는 소통이었다. 한국말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가족도 떨어져 있으니까 힘들더라. 일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늘 혼자였다. 구단에서 내 의사를 전달할 때 항상 통역을 거쳐야 했다. 외국인 선수들에겐 통역을 두 번 거쳤다. 과거 유명 프로그램이었던 가족오락관 알지 않느냐.
Q. 전설의 프로그램 아닌가.
가족오락관에 보면 귀를 막고 상대의 입 모양만 보고 어떤 걸 얘기하는지 맞히는 ‘고요 속의 외침’이란 게임이 있었다. 그걸 매일 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소통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나 경기 중엔 의사를 빠르게 전달해야 하지 않나. 슈퍼리그는 매 경기 관중도 가득 찬다. 의사소통이 정말 쉽지 않았다.
Q. 선수단 관리에 어려움이 있었을 듯하다.
축구계 소문 중에 ‘중국 선수들은 지도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게 있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을 뿐이지 중국 선수들이 잘 따라왔다. 지금보다 더 발전하려는 의지도 대단히 컸다. 물론, 한국 선수들과의 기량 차이는 존재한다. 축구 스타일도 다르다.
Q. 무엇이 다른가.
K리그와 슈퍼리그의 가장 큰 차이는 전술 활용이 아닐까 싶다. K리그는 짜임새가 있다. 11명의 선수가 하나처럼 움직이는 끈끈함이 있다. 슈퍼리그는 특출난 개인의 능력을 잘 활용한다. 외국인 선수의 능력을 극대화해서 승리를 가져오는 축구를 한다. 슈퍼리그엔 세계 정상급 무대를 경험한 외국인 지도자도 많다. 그러다 보니 선진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팀이 많았다. 유럽 빅리그에서나 볼 법한 전술, 전략들이 나오는 거다.
Q. 감독으로서 큰 경험이었을 듯하다.
아주 큰 경험이었지. 영상으로만 보던 유럽 축구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거다. 더 놀란 건 중국 선수들이 감독의 전술을 이해하고 이행하는 거였다. 거기서 ‘중국 선수들을 데리고도 충분히 좋은 축구를 펼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중국은 안 된다’고 한다. 글쎄. 목표에 알맞은 투자와 시간이 주어진다면, 중국도 충분히 할 수 있다.
Q. 슈퍼리그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 건가.
괜찮다. 가능성이 풍부하다. 다만, 슈퍼리그는 상·하위 팀 격차가 아주 크다. 상하이 하이강, 상하이 선화, 청두 룽청, 베이징 궈안, 산둥 타이산 등 투자가 이뤄지는 팀이 확실히 강하다. 이 팀들의 선수단을 보면 좋은 이가 많다. 외국인 선수는 한국 팬들도 ACLE를 보시면서 익숙하실 거다. 대단히 뛰어난 외국인 선수들이 뛴다. 중국 선수들의 기량도 상당히 좋다. 단, 이 선수들을 어떻게 가다듬고 성장시키느냐가 중국 축구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을까 싶다.
Q. 허난 지휘봉을 잡자마자 성적을 냈다. 비결이 무엇이었나.
허난 지휘봉을 잡자마자 집중한 건 선수들을 이해시키는 거였다. 팀의 방향성에 맞는 전술을 세세히 설명하면서 이해시켰다. 힘은 약하지만, 후방에서부터 만들어가는 축구를 시도했다. 이런 축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가르쳤다. 중국 선수들이 상당히 좋아했다. 많은 선수가 “이런 축구를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며 잘 따라와 줬다.
Q. 팀 분위기가 초반부터 좋았던 건가.
아니다. 처음부터 어려움에 직면했다. 우선, 내가 지휘봉을 잡은 시점이 동계 훈련 중이었다. 내가 2024년 1월 10일쯤 허난에 합류했다. 슈퍼리그 개막까지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리그 개막 전 제대로 된 연습 경기를 못 치렀다. 두 차례 연습경기가 있었는데 2부 리그 팀을 좋지 않은 환경의 구장에서 상대했다. 3명의 외국인 선수는 개막 직전인 2월 중순에서야 팀에 합류했다. 그러다 보니 시즌 초반엔 성적이 안 나왔다.
Q. 앞서서도 언급했지만, 유명한 외국인 감독들과 지략 대결을 펼쳤다. K리그에선 외국인 감독을 찾아보기 어렵다. 올해도 K리그1, 2 26개 구단 가운데 외국인 감독은 전북 현대를 이끄는 거스 포옛이 유일하다. 슈퍼리그에서 외국인 명장들을 상대하면서 얻은 건 무엇인가.
한둘이 아니다. 정말 많은 걸 느꼈다. ‘명장’으로 불리는 감독일수록 자기 색깔이 아주 확실하다. 1경기만 봐도 저 사람이 무슨 축구를 하려는지 안다. 선수비 후역습으로 승점을 쌓은 감독이 있었고, 상대 골대 쪽에 최대한 많은 숫자를 배치해서 승점 3점을 챙기는 기술적인 축구를 구사한 감독도 있었다. 어떤 팀은 유럽 빅리그에서나 볼 법한 전방 압박으로 기회를 만들어내려고 했다.
Q. 남기일 감독이 꿈꾸는 축구를 한 팀이 있었나.
상하이 하이강이다. 상하이 하이강은 매 경기 상대 진영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오랜 시간 볼을 소유하면서 공격 기회를 만들어냈다. 그런 축구를 해보고 싶다. 볼이 항상 상대 진영에 있는 축구 말이다. 상하이 하이강을 보면서, 저런 축구를 하려면 어떻게 선수단을 꾸리고 어떤 전략으로 나서야 하는지 배웠던 것 같다. 쉬는 기간 중국에서 배웠던 걸 정리하고 있다. 잘 정리해서 언젠가 아주 공격적인 축구를 해보고 싶다.
Q. 제일 인상 깊은 감독은 누구였나.
스페인 출신으로 지난 시즌까지 저장 FC를 이끌었던 조르디 비냘스다.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에서 성장했고, 스페인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이다. 지도자로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 바르셀로나 B 등을 이끌기도 했더라. 볼을 어떻게 소유하고, 어떤 방식으로 전진시킬 건지 생각을 많이 하게 해 준 감독이다.
Q. 중국 축구 인기는 어느 정도라고 느꼈나.
어마어마하다.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뜨겁더라. 특히 부러웠던 게 있었다. 중국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엄청나더라. 그러다 보니 지역 프로축구팀에 관한 관심도 컸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 지역 팀이니까 응원하러 오는 사람도 많았다.
Q. 사비 알론소 레알 마드리드 감독의 축구를 이전부터 유심히 관찰하지 않았나.
허난에 가기 전 현지에서 알론소 감독의 축구를 봤었다. 인상적이었던 게 공격할 때와 수비할 때의 전술이 완전히 다르더라. 한 경기에서 다른 방식으로 팀을 운영한다는 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공격에 중점을 둬서 보긴 했지만, 수비할 땐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유심히 봤었다. 이를 내가 가지고 있는 전술과 조합해서 적용하곤 했다. 큰 도움이 됐다.
Q. 감독은 선수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두루 줘야 하지 않나. 직접적인 소통이 안 되다 보니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 같은데.
허난에 가서 먼저 한 것 중 하나가 ‘우리가 지켜야 할 규칙’을 만드는 거였다. 구단에서 요청한 건 ‘한국 문화에 맞는 규칙을 정해달라’는 거였다. 구단의 방침이 그렇다고 하니 선수들이 지켜야 할 것들을 정했었다. 이후 선수들의 건의 사항이 생기면 조금씩 수정하곤 했다. 시간이 갈수록 중국 문화에 맞춰지는 것 같았다(웃음).
Q. 국외에서 지휘봉을 잡아 첫 시즌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2024시즌을 마쳤을 때 어떤 감정이었나.
벅찼다. 내가 ‘중국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처음 허난에 갔을 땐 내가 원하는 선수를 1명도 못 뽑았다. 감독 선임이 동계 훈련이 시작되고 나서야 마무리된 까닭이다. 여름 이적시장에서야 중국인 선수 2명을 보강할 수 있었다. 팀이 단단해지고 있는 시점이었다. 여름 이적시장 후 확실히 상승세를 탔다. 순위를 조금씩 끌어 올려서 8위로 한 해를 마칠 수 있었다. 힘겹게 일군 성과라서 더 값졌던 것 같다.
Q. 2025시즌에 대한 기대도 컸을 듯한데.
기대가 있었지. 하지만, 구단 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졌다. 구단은 최대한 도와주려고 했지만, 지원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우린 자유계약선수(FA)를 노려야 했다. 슈퍼리그에서 FA는 두 가지 유형이다. 소속팀에서 경기를 못 뛰어 방출됐거나 팀이 사라져서 FA가 된 선수였다.
Q.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감독들을 보면, 한국 선수 많이 영입하지 않나. 한국 선수 영입은 추진하지 않았나.
당연히 했지(웃음). 그런데 구단에선 동양인 말고 남아메리카나 유럽 등의 외국인 선수를 원했다.
Q. 누구 영입하려고 했었나.
처음 팀에 합류했을 때 골키퍼 고민이 컸다. 그때 (김)동준이 생각이 많이 났다. 하지만, 동준이는 영입할 수 없었다. 슈퍼리그 규정상 외국인 골키퍼는 뛸 수 없다. 구단에 영입 검토를 요청했던 선수는 문선민, 이명재였다. 당시 두 선수는 FA를 앞둔 시점이었다. 둘 다 국가대표 출신이지 않나. 국가대표 출신 선수를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Q. 2025시즌 초반 허난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지난 시즌 성과를 내지 않았나. 조금만 더 기다려줬으면 하는 생각은 없었나.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었다. 물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팀일수록 언제든지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염두하고 있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감독이 팬들의 눈높이에 맞는 축구를 구사하는 게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듯하다.
Q. 슈퍼리그 도전 전·후 남기일 감독은 어떻게 바뀌었나.
한국에 있을 땐 K리그2에 있는 팀을 K리그1으로 승격시키곤 했다. 광주, 성남, 제주에서 승격을 일궜다. K리그1에서도 경기를 치르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충분히 내보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거침없이 달려 나가던 중 정체기가 왔다. 제주에 있을 때였다. 코로나19 시기이기도 했다.
Q. 이유가 있었나.
제주에 있을 땐 이동의 제약이 많았다. 잠깐 머리를 식히려고 해도 육지로 나가는 게 어려웠다. 타 팀의 경기를 보러 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때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던 것 같다. 슈퍼리그를 경험하면서 시야가 확실히 넓어진 듯하다. 특히나 세계 축구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내가 가진 걸 접목하는 방법을 익힌 것 같다.
더 좋은 지도자가 되려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다시 한 번 느꼈다. 슈퍼리그에서 유럽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많은 지도자를 상대했다. K리그에선 경험하지 못한 전술을 접하면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슈퍼리그를 경험하면서 더 높아진 것 같다.
‘현대 축구는 아이디어 싸움’이다. ‘다가오는 경기에서 어떤 콘셉트로 임할 것이냐’가 승패를 가른다. 그런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한 시즌의 성패를 가르는 거다. 감독은 90분 동안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생각해서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더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Q. ‘U-23 대표팀 감독 후보군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마음은 있었지. 하지만, 중국 생활을 정리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U-23 대표팀 감독 지원서 제출 시기를 놓쳤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서로의 생각, 방향성이 맞는 구단을 맡아보고 싶다. 구단과 대화를 이어가면서 이전보다 좋은 축구를 해보고 싶다. 나는 많이 열려 있다(웃음). 지금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기다. 그 외 시간엔 운동하고, 책을 많이 읽는다. 시간 활용을 잘해서 기회가 왔을 때 좋은 축구를 보여드리고 싶다.
[판교=이근승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