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훈(38·포항 스틸러스)은 개인 블로그(필립광의 실행하는 삶)에 종종 글을 올린다. 신광훈은 자신의 마음속 고민을 아주 편안하게 글로 표현하곤 한다. 기자는 그의 글을 통해 말로 물어보기 힘든 이야기나 경험을 배우곤 한다.
11월 24일 신광훈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꽤 놀랐다. 그가 올린 글만 보면, 은퇴를 고민하는 듯했다.
신광훈의 글엔 오랜 고민이 묻어나 있었다.
신광훈은 올 시즌 K리그1 38경기 가운데 36경기에 나섰다. 그는 여전히 포항의 핵심이다. ‘신광훈이 2~3년은 거뜬하게 뛸 것’으로 생각해 왔다.
프로축구 선수라고 해서 축구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축구는 인생의 일부다. 신광훈은 ‘가장’이자 ‘아버지’로서의 고민도 깊어 보였다. 신광훈은 “가장이나 아빠를 해보는 게 처음”이라며 “잘하고 싶은 마음은 큰데 그게 쉽지 않다”고 웃어 보였다.
‘MK스포츠’가 지난달 27일 BG 빠툼 유나이티드(태국)와의 2025-26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투(ACL2) 조별리그 5차전을 마친 신광훈과 나눴던 이야기다.
Q. 올해 마지막 홈 경기를 승리(2-0)로 장식했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시간이 너무 빨라서 아쉽게 느껴진다. 남은 경기가 원정이지 않나. 홈에서 팬들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게 너무 아쉽다.
Q. 주전 선수들이 ACL2에 선발로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결과가 안 좋았으면, 순위가 뒤집힐 수 있었다. 승리하면 16강에 오를 수 있었다. 리그 경기가 남아있긴 하지만, 그 경기로 순위가 바뀌진 않는다. 빠툼전이 리그 최종전보다 중요도가 높았다. 22일 전북 현대전을 마치고 빠툼전 준비에 매진했다.
Q. ACL2를 경험하는 건 처음 아닌가. ACL2는 어떤가.
빠툼전이 ACL2 두 번째 경기였다(웃음). 솔직히 ACLE와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빠툼도 얼마 전까지 ACLE에 나섰던 팀이다. 우리도 지난 시즌엔 ACLE에 나섰다. ACL2에 참가하는 팀들의 전력이 조금 떨어질 순 있지만, 쉬운 상대는 없는 것 같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Q.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 건가.
‘이 정도 했으면 이기겠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하는 마음이 가장 위험하다. 그런 마음이 느슨한 분위기와 경기력으로 이어진다. 그런 경기력은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치게 만들곤 한다. 탬피니스 로버스(싱가포르)전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우린 그 경기를 통해서 많은 걸 배웠다. 빠툼전 시작 전 선수들에게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Q. 월요일(11월 24일)에 블로그에 올린 글을 봤다. 생각이 조금 많은 것 같던데.
하루하루 있었던 일을 블로그에 적곤 한다. 내가 고민이 많은 나이다. 인생 계획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고민이 이어지는 듯하다. 새로운 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이어진 고민이다. 혼자서 생각도 하고, 후배들과 이야기도 나눈다. 아직 답은 내리지 못했다. 좀 더 좋은 선택을 위한 고민의 시간이다.
Q. 신광훈이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거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이가 있긴 하지만, 여전히 축구를 잘하지 않나. 축구계 많은 구성원이 ‘신광훈은 최소 2~3년은 거뜬할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할 따름이다. 2~3년 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외부의 평가다. 밖에서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냉정하게 나 스스로 ‘자신 있다’고 하는 건 의미가 없다. 밖에서 보는 분들이 ‘신광훈 괜찮다’고 해주셔야 괜찮은 거다. 그런 평가가 나와야 내가 선수 생활을 연장할 수 있는 거다. 많은 분이 그렇다고 해주시니 감사하지만, 잘 모르겠다.
Q. 블로그에 쓴 글에서도 느꼈지만, 고민이 많아 보인다.
박태하 감독님을 만난 건 내게 행운이다. 우리 감독님은 편견이 없으시다. 감독님은 베테랑 선수를 평가할 때 나이를 보지 않는다. 오직 그라운드 위 경기력만으로 평가한다. 내가 지금껏 경기에 나선 건 경쟁에서 살아 남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경기에 나서기 위해 하루하루 치열하게 경쟁한다.
Q. 몸 상태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내 몸 상태는 괜찮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20대 시절과 비교해 활동량은 크게 줄었을 거다. 다만, 베테랑이 되면서 나만 할 수 있는 역할이 생겼다. 그 역할을 최대한 집중해서 하려고 한다. 그렇게 경기를 준비하고, 이미지 트레이닝도 한다. 앞서서도 말했지만, 밖에서 신광훈이란 선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아, 과거와 또 하나 달라진 게 있다. 회복하는 데 어린 선수보다 12시간 정도 더 필요한 것 같다(웃음).
Q. 블로그 글을 보니 가장으로서 무게감과 고민도 짙은 것 같더라.
축구가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내 인생엔 축구 외적인 것도 있다. 솔직히 다 잘하고 싶다. 그런데 가장이나 아빠를 처음 해본다. 서투른 부분이 많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보니까 더 고민하는 것 같다.
Q. 기성용이 “같이 그만하자”고 한다고 쓰지 않았나. 신광훈, 기성용이 포항에서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은 것 아닌가.
(기)성용이는 자꾸 나한테 “같이 그만하자”고 한다(웃음). 잘 모르겠다. 여러 가지로 이야기해 보고 고민해 봐야 한다.
Q. 블로그에도 올렸지만 둘이 스티커 사진도 찍고, 정말 좋아 보이는데.
나이 먹은 사람끼리 민폐가 아닌지 모르겠다(웃음). 나나 성용이나 마음만은 아직 20대다. 만나면 항상 티격태격하는데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재밌다. 포항에서 함께 생활하는 순간순간에 감사하다.
Q. 지금도 축구가 재밌나.
나는 지금도 축구가 아주 재밌다. 축구할 때 희열을 느낀다. 정말 즐겁다. 또 존경하는 박태하 감독님과 함께하니까 더 좋은 것 같다. 내 옆엔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동료들도 있다. ‘회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복지는 좋은 동료’란 말이 있더라. 우리 포항은 내게 최고의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 선수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아주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Q.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줄 수 있나.
단순한 패스 하나도 누구와 주고받느냐가 중요하다. 누구의 지도를 받고 누구와 함께 땀 흘리느냐가 나의 하루와 미래를 바꾼다.
Q. 팬들은 박태하 감독을 ‘포항의 아버지’란 뜻을 가진 ‘태버지’라고 부른다. 신광훈이 보는 박태하 감독은 어떤 지도자인가.
우리 감독님은 물같이 유연한 지도자다. 물은 컵에 담겼을 때, 그릇에 담겼을 때 모양이 다르다. 물은 컵과 그릇의 형태에 잘 적응한다. 감독님은 순간순간 유연성도 있으시다. 특히, 선수들을 대하는 능력이 정말 뛰어나시다. 축구에 대한 열정은 말할 것도 없다. 밤낮없이 연구하는 분이다. 우리 감독님은 선수들의 마음속에 ‘감독님을 위해서 뛰고 싶다’란 의지가 생겨나도록 만든다.
[포항=이근승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