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는 익숙하지만, 항상 올 때마다 새로운 거 같다.”
지난 21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의 서프라이즈 스타디움에서 만난 캔자스시티 로열즈 포수 엄형찬(21)의 얼굴은 땀으로 가득했지만, 표정만큼은 밝았다.
이날 텍사스 레인저스와 ‘스프링 브레이크아웃’ 경기에 출전한 그는 올해 네 번째 마이너리그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2023년 루키에서 시작, 지난 2년은 싱글A 콜럼비아에 있었다. 3년간 마이너리그에서 167경기 출전, 타율 0.236 출루율 0.342 장타율 0.351, 포수로 805 1/3이닝 수비하며 필딩율 0.897, 도루 저지율 23% 기록했다.
그는 “항상 매년 한 단계씩 올라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며 2026시즌 더 높은 단계에서 경기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의사소통이 중요한 포수의 특성상, 아시아 출신 선수가 미국 무대에서 포수로 뛰는 경우는 흔치 않다. 과거 일본인 포수 조지마 겐지가 메이저리그에서 4시즌을 뛴 것이 전부다.
이 쉽지 않은 길에 도전하는 엄형찬은 “동양인이 포수를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이제 그런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저 한 명의 포수로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연차가 쌓이고 사람들도 팀의 일원으로 인정해 주다 보니 이제 ‘동양인 포수’ 이런 생각보다는 한 명의 포수로서, 한 명의 팀원으로서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까를 더 고민하는 거 같다”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한 명의 팀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그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 장벽을 허무는 것이었다.
“첫 해 구단에서 진행하는 영어 수업이 있어서 그것을 졸업했다. 이번 스프링캠프에서는 스페인어 수업을 졸업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둘 다 사용하고 있다. 경기 도중에는 물론이고 일상생활 중에도 지장이 없을 정도로는 하고 있다.”
그는 언어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힘든 선택을 했다. 입단 첫해부터 통역을 두지 않은 것. 보통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합류한 선수라도 첫 1~2해 정도는 통역을 붙여주는 것이 일반적. 그러나 그는 “내가 안 하겠다고 했다”며 맨몸으로 언어의 벽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너무 용감한 선택 아니었을까? 그는 웃으면서 “언어에 있어 큰 문제는 없었다”고 말했다. “나도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고, 통역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내가 몸소 느끼고 있어서 선수들과 얼마나 더 가까이 갈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물론 통역이 도와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포수다 보니 선수들과 더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치컴 등 최근 도입된 기술들은 이런 장벽을 더 낮춰주고 있다. 그는 “확실히 의사소통하거나 사인을 맞춰 가는 과정에서 시간을 단축하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며 피치컴이 도움이 된다고 얘기했다.
아직 마이너리그에 머물고 있지만, 스프링캠프를 하면서 여러 투수들의 공을 받아주고 있다. 그중에는 메이저리그 투수도 있다. “전날 마이너리그 연습 경기에서는 세스 루고의 공을 5이닝 동안 받았다. 최근 받았던 선수 중에는 가장 기억에 남는 투수였다”는 것이 그의 설명.
이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더 유명한 투수들의 공을 받을 일도 많아질 것이다. 한국인 최초의 포수 메이저리거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는 ‘최초의 한국인 포수 빅리거가 되는 건 엄청난 역사’라는 기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내가 이렇게 길을 트면, 여러 포수 후배가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에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응원에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계속 많은 응원을 해주시면 조만간 TV에서도 뵐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메시지를 팬들에게 남긴 뒤 경기장을 떠났다.
[서프라이즈(미국)= 김재호 MK스포츠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