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9일 서울특별시 강서구 KBS아레나(88체육관)에서 열린 ‘레슬네이션 2’ 현장은 그야말로 뜨거운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전 WWE 월드헤비웨이트 챔피언 돌프 지글러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프로레슬러 시호의 맞대결이 성사되면서 관객석은 폭발적인 열기로 휩싸였다. 2년 연속 3000석 매진이라는 기록은 한국 프로레슬링 역사상 전례가 없던 사건이었다.
이 믿기 힘든 흥행 신화의 중심에는 20대 초반부터 ‘한국의 빈스 맥마흔’을 꿈꾸며 프로레슬링 단체 PWS Korea(피더블유에스엔터)와 손을 잡은 코미디언, ‘급식왕’의 발가락쌤(본명 박병규)이 있다.
MK스포츠가 박병규를 만나 한국 프로레슬링의 새로운 중흥기를 끌어낸 뒷이야기와 앞으로의 비전을 들었다. 인터뷰는 PWS 코리아의 김남훈 해설위원이 도움을 줬다.
박병규와 PWS의 인연은 2024년 5월 시작됐다. 인터넷을 통해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타지리가 PWS 평택 스튜디오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 계기였다. 오랜 WWE 팬이었던 그였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 프로레슬링 무대나 선수들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했다.
하지만 평택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는 직감적으로 꿈을 이룰 계기가 찾아왔음을 느꼈다. 경기를 관람한 후 PWS 창립자인 시호 선수로부터 먼저 연락이 왔고, 며칠 뒤 이태원에서 이뤄진 첫 만남은 그야말로 ‘수어지교’와 같았다.
서로가 꿈을 실현해 줄 최적의 파트너임을 첫눈에 직감한 두 사람은 PWS의 시청 타깃을 어린이와 가족 중심으로 재정비하고, 한층 깊이 있는 각본과 세계관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어린이 시트콤 드라마인 ‘급식왕’은 본래 권선징악을 주제로 삼고 있었기에, 프로레슬링 특유의 대립 구조와 서사는 기존 팬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흡수됐다. 컴퓨터 그래픽(CG) 액션을 넘어 실제 프로레슬러들이 펼치는 화려한 리얼 액션이 더해지자, 어린이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어린이 팬들은 급식왕 출연진을 지켜주는 레슬러를 ‘정의의 편’, 괴롭히는 레슬러를 ‘악당’으로 받아들이며 PWS 선수들을 급식왕 세계관의 구성원으로 동일시했다. 아이들이 프로레슬링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판이 커졌고, 매치업과 경기력이 한 단계 진화하자 성인 레슬링 마니아층까지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여기에 유명 스트리머 케인이 동료 스트리머들과 골수 팬층을 아우르는 적극적인 홍보로 가교 구실을 해줬고, 존 시나와 이요 스카이 등 WWE 레전드급 스타들의 관심까지 더해지며 국내 프로레슬링 열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박병규는 이번 ‘레슬네이션 2’에서 선수 못지않은 고난도 기술인 ‘코스트 투 코스트 드롭킥’을 직접 선보여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평소 일상에서는 무거운 물건조차 들기 피하던 그였기에 동료들로부터 “선택적 골골거림”이라는 장난 어린 놀림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오랜 꿈의 기술이었다. 링에 오르자, 도파민과 관객들의 폭발적인 함성에 힘입어 한 몸을 기꺼이 던졌다. 기술을 사용한 후 극심한 통증이 뒤따랐지만, 그는 다음 대회에서도 기회가 온다면 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명장면을 만들어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기간 당시 쟁쟁한 영상들을 제치고 인기 급상승 동영상 1위를 싹쓸이했던 ‘급식왕’은 전성기 이후 조회수 감소라는 현실적 고민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PWS와의 단순 협업을 넘어 각본, 출연, 투자 및 수익을 함께 나누는 공고한 파트너십을 구축하면서 새로운 반전을 만들어냈다.
초창기 관객 30명 수준이었던 PWS는 협업 2년 만에 3000석을 매진시키는 단체로 급성장했다. 늘어난 수익은 단체의 더 큰 성장을 위해 지속해서 재투자되고 있다.
박병규는 PWS를 단순한 프로레슬링 쇼가 아닌 연예인, 스트리머, 가수 등과의 협업을 통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큐슈 프로레슬링 치쿠젠 대표의 “프로레슬링의 힘을 믿는다”는 말처럼, 그 역시 프로레슬링이 지닌 엔터테인먼트적 힘을 확신하고 있다.
향후 ‘레슬네이션 3’ 개최와 전국 및 해외 투어라는 대형 로드맵을 그려나갈 박병규는 거대한 자본을 갖춘 WWE와 비교했을 때 유일하게 겨뤄볼 수 있는 분야로 ‘각본’을 꼽았다. 각본은 거대 자본이 아닌 사람의 상상력과 밤을 새우는 집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개그맨 박명수 선배의 “개그는 현장에서 관객을 가장 웃긴 사람이 이기는 냉정한 세계”라는 조언을 가슴에 품고 산다는 박병규. MBN 공채 1기 개그맨 출신이기도 한 그는 매경미디어그룹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전하기도 했다.
냉정한 관객의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오늘도 노트북 앞에서 밤을 새우는 그의 집념이 한국 프로레슬링의 지평을 어디까지 넓혀놓을지 기대된다.
[강대호 MK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