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날두 울리고 ACL 우승했던 박용우 “돌아보면 어떻게 이겼나 싶어”···“십자인대 파열? 월드컵보다 중요했던 건강한 복귀”[이근승의 믹스트존]

박용우(33·울산 HD)는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할 가능성이 높았던 선수다. 한국 축구의 오랜 고민인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박용우만큼 제 기량을 발휘하는 선수를 찾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매우 어려운 자리다. 열 번을 잘해도 한 번의 실수로 엄청난 비난에 시달릴 수 있다. 하지만 박용우는 말한다.

“나는 그래도 이 포지션이 좋다. 큰 비판에 마음이 아플 때도 있지만 내가 선택한 축구고 포지션이다. 더 좋은 경기력을 보이고자 땀 흘리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울산 HD 박용우. 사진=이근승 기자
울산 HD 박용우. 사진=이근승 기자

박용우는 2023년 여름 울산을 떠나 아랍에미리트(UAE) 프로축구 1부 리그 명문 알 아인으로 향했다. 박용우의 첫 해외 도전이었다.

박용우는 알 아인에서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2023-24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이었다. ACL이 ACL 엘리트(ACLE)로 개편되기 전이었다.

당시 박용우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사디오 마네 등을 앞세운 알 나스르, 세계적인 스타가 즐비한 알 힐랄(이상 사우디아라비아)을 차례로 꺾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알 나스르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사진 오른쪽). 사진=AFPBBNews=News1
알 나스르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사진 오른쪽). 사진=AFPBBNews=News1
득점 후 기뻐하는 알 힐랄 선수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득점 후 기뻐하는 알 힐랄 선수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그때를 회상하는 박용우가 웃으며 말했다.

“진짜 힘들었다. 돌아보면 어떻게 이겼나 싶다.”

박용우는 알 아인에서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도 경험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출전의 꿈을 접어야 했던 부상이었다.

박용우는 ‘월드컵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고 했다. ‘건강하게 돌아와 다시 축구하는 것’이었다.

‘MK스포츠’가 울산 동구 울산 클럽하우스에서 박용우와 나눈 이야기다.

울산 HD 박용우. 사진=이근승 기자
울산 HD 박용우. 사진=이근승 기자

Q. 지난 8월 울산으로 돌아왔다.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현재 몸 상태는 어느 정도인가.

울산으로 복귀하기 전 큰 부상을 당해 수술을 받았다. 몸 상태는 울산에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좋아졌다. 특히 무릎 상태가 정말 좋아졌다. 생활도 잘하고 있다(웃음).

Q. 오랜만에 울산으로 돌아왔다. 적응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2023년 여름 울산을 떠나기 전까지 함께했던 선수들이 있다. 구단 관계자들도 익숙한 분이 많다.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적응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Q. 알 아인으로 떠나기 전과 비교했을 때 울산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엄청나게 좋아졌다. 이전에는 서부구장에서 훈련했다. 울산을 잠시 떠났다가 돌아오니 강동축구장이 생겼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설이 좋다. 직접 이용해 보니 정말 좋더라. 선수들이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해주신 구단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Q. 알 아인으로 떠나기 전과 울산으로 돌아온 지금의 박용우는 무엇이 달라졌나.

음. 큰 차이는 없다(웃음). 주변 사람들이나 동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게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알 아인 감독을 역임했던 에르난 크레스포(사진 왼쪽)과 박용우. 사진=AFPBBNews=News1
알 아인 감독을 역임했던 에르난 크레스포(사진 왼쪽)과 박용우. 사진=AFPBBNews=News1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공격수였던 에르난 크레스포. 사진=AFPBBNews=News1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공격수였던 에르난 크레스포. 사진=AFPBBNews=News1

Q. 알 아인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생활이 굉장히 여유로웠다. 날씨는 항상 더웠다. 특히 햇빛이 강했다. 내가 살았던 곳이 대도시는 아니었다. 조금 외진 곳이었지만 필요한 것은 대부분 있었고 즐길 거리도 많았다. 가장 좋았던 건 아내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운동이 끝나면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대부분 아내와 함께했다. 즐겁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Q. 알 아인에서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공격수 출신인 에르난 크레스포 감독의 지도를 받았다. 크레스포는 어떤 지도자로 기억하나.

처음 만났을 때 기대가 정말 컸다.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축구 게임을 할 때 자주 활용한 선수였다(웃음). 그런 분이 우리 팀 감독으로 오신다고 하니 설렜다.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컸다. 실제로 많이 배웠다. 전술적인 부분보다는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선수단을 관리하는 능력이 뛰어난 지도자였다. 특히 선수들의 의욕을 끌어올리는 연설이 인상적이었다.

Q. 알 아인에서 ACL 우승을 경험했다. 서아시아 지역의 경쟁은 얼마나 치열한가.

내가 우승했을 당시에는 지금과 대회 방식이 조금 달랐다. 네 팀씩 조를 이뤄 조별리그를 치렀다. 조별리그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마지막 경기를 제외하고 모두 이겼다. 그게 동아시아 지역에서 ACL에 참가했을 때와 가장 큰 차이였다. 동아시아 지역은 조별리그부터 힘들다. 조별리그를 통과하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렵다’고 느껴질 정도다.

Q. 서아시아는 토너먼트부터 전쟁이 시작되는 건가.

토너먼트부터는 수준이 달라진다. 진짜 강한 팀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수준이었다. 우승했던 시즌을 돌아보면 우리가 그 팀들을 다 이긴 것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이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웃음).

알 나스르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사진=AFPBBNews=News1
알 나스르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사진=AFPBBNews=News1
알 힐랄은 사우디아라비아 프로페셔널리그뿐 아니라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최다우승을 자랑하는 팀이다. 사진=AFPBBNews=News1
알 힐랄은 사우디아라비아 프로페셔널리그뿐 아니라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최다우승을 자랑하는 팀이다. 사진=AFPBBNews=News1

Q. 당시 알 나스르와 알 힐랄을 모두 꺾었다. 알 나스르에는 호날두와 마네가 있었다. 알 힐랄은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 후벵 네베스 등이 중원을 책임졌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맞붙어 승리한 기억은 어떤가.

알 나스르전, 알 힐랄전 모두 기억에 남는다. 경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그리고 이기고 싶었다. 특정 선수 한 명이 기억에 남는 게 아니라 모두 기억난다. 세계적인 선수인 호날두를 처음 상대했던 건 내 인생에서 특별한 순간으로도 남아 있다. 또 잊지 못하는 게 있다.

Q. 무엇인가.

특히 인상 깊었던 게 알 힐랄 원정이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압박감을 느꼈다.

Q. 알 힐랄 원정을 경험한 축구인이나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원정 팀의 지옥’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실제로는 어땠나.

알 힐랄의 관중석을 유심히 보면 극장처럼 만들어져 있다. 경기 전날 공식 훈련을 하지 않나. 그때 선수들의 목소리가 경기장에 엄청나게 울렸다. 선수들과 관계자들만 있는 경기장에서도 ‘소리가 엄청나게 울린다’고 느낄 정도였는데, 알 힐랄 팬들로 가득 찬 경기장은 어떻겠나. 진짜 대단했다. 바로 옆 사람과 대화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때 받았던 압박감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Q. 알 나스르와 알 힐랄의 공격을 막아야 하는 포지션이었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직접 상대하면서 느낀 그들의 경기력은 어느 정도였나.

알 나스르와 알 힐랄 모두 정말 위협적이었다. 공격 하나하나가 날카로웠다. 모든 공격이 묵직하게 다가왔다고 할까. 수비하는 입장이다 보니 정말 힘들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기억에 남는 선수도 있다.

세르비아 국가대표 미드필더인 밀린코비치사비치. 그는 이탈리아 세리에 A 최고의 미드필더이기도 했다. 사진=AFPBBNews=News1
세르비아 국가대표 미드필더인 밀린코비치사비치. 그는 이탈리아 세리에 A 최고의 미드필더이기도 했다. 사진=AFPBBNews=News1

Q. 누구인가.

한 명을 꼽기가 매우 어렵지만 밀린코비치사비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축구를 정말 잘한다. ‘축구를 잘한다’는 게 혼자서 여러 선수를 제치는 등 화려한 기술을 갖췄다는 의미가 아니다. 팀이 필요로 하는 플레이를 정확하게 해낸다. 키도 크고 헤더 능력도 뛰어났다. 당시 알 아인 동료들도 밀린코비치사비치의 기량을 극찬했다.

Q. 알 나스르와 알 힐랄을 차례로 꺾었다. 언제 ‘우승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나.

알 힐랄을 이겼을 때다. 솔직히 알 나스르를 처음 만났을 때는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불리한 경기라고 느꼈다. 그래서 결과에 대한 부담보다는 ‘즐기면서 경기하자’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알 나스르를 이기고 올라가니 다음 상대가 알 힐랄이었다. 당시 알 힐랄은 공식전 34연승을 기록 중이었다. 자국 리그든 ACL이든 계속 이긴 것이다. 경기력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Q. 그런 알 힐랄을 어떻게 이긴 건가.

1차전이 우리 홈이었다. 상대의 기록이나 경기력 등을 보면서 솔직히 두려움도 느꼈다. 앞서 말했지만 어떻게 이겼는지 모르겠다(웃음). 모든 것을 쏟아냈던 것 같다. 그 팀을 꺾고 나니 ‘우리가 우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 당시 알 아인은 알 힐랄을 준결승 1, 2차전 합계 5-4로 이겼다. 결승 상대는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일본)였다. J1리그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슈퍼스타들을 앞세운 알 나스르나 알 힐랄과 비교하면 객관적인 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었다. ‘결승이 앞선 경기들보다 수월할 것 같다’는 느낌은 없었나.

확실히 여유와 자신감은 있었다. 하지만 걱정도 있었다. 알 나스르와 알 힐랄을 꺾었지만 우승한 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쏟아내서 알 나스르와 알 힐랄을 꺾었는데, 결승에서 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특히 요코하마 역시 결승에 오른 팀이었다. 요코하마에 지면 그동안의 노력과 결과가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동료들에게 ‘우리 진짜 우승해야 한다. 꼭 우승하자’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ACL 우승컵이 간절했다.

Q. 알 아인은 결승 1차전에서 1-2로 패했지만,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5-1로 대승하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프로에 데뷔한 이후 아시아 챔피언에 오른 건 처음이었다. 간절히 바랐던 만큼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박용우. 사진=이근승 기자
박용우. 사진=이근승 기자

Q. 서아시아 강팀들과 직접 부딪혀 승리했고, 우승까지 경험했다. K리그1 구단들도 아시아 정상에 오르려면 결국 서아시아 강팀들을 넘어야 한다. K리그 구단들이 아시아에서 경쟁력을 높이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나.

어렵고 조심스러운 질문이다. 답하기 전에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히고 싶다. 서아시아 강팀들은 선수 개개인의 기량이 정말 뛰어나다. 다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팀들이 조직력에서는 더 낫다고 느꼈다. 물론 지금은 서아시아 팀들의 조직력도 발전했을 수 있다. 내가 뛰었을 당시에는 선수 개인의 기량에서 차이가 나더라도 팀으로는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고 느꼈다. 알 아인이 우승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 선수들의 개인 기량은 알 나스르나 알 힐랄 선수들보다 떨어졌을 수 있다. 하지만 팀으로 싸워서 우승했다. 냉정하게 한국 구단들이 서아시아 팀들의 자금력을 따라가기는 어렵다. 쉽게 말해서 당장 호날두를 데려올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좋은 팀은 만들 수 있다. 팀으로 잘 준비한다면 우승에 도전할 수 있다고 본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요코하마와의 결승 1차전이 생각난다.

Q.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나.

우리가 요코하마 원정에서 1-2로 졌다. 요코하마에는 호날두나 마네와 같은 슈퍼스타가 없었다. 그런데 그날 요코하마를 상대하는 것이 알 나스르나 알 힐랄전보다 더 힘들었다. 요코하마는 11명의 선수가 하나처럼 움직였다. 선수들이 조직적으로 정말 잘 움직였다. 팀으로 상대를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동아시아와 서아시아 축구를 모두 경험하면서 느낀 것도 있다.

Q. 무엇인가.

동아시아 팀들은 서아시아 원정에서 조금 위축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자기 플레이를 충분히 펼칠 수 있는 팀들인데, 경기장 분위기에 눌리는 경우가 있다. 정신적으로 잘 준비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자신 있게 부딪힌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광주 FC가 아시아에서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팀으로 잘 준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박용우의 알 아인 시절(사진 맨 오른쪽). 사진=AFPBBNews=News1
박용우의 알 아인 시절(사진 맨 오른쪽). 사진=AFPBBNews=News1

Q. 직접 경험한 UAE 프로축구 1부 리그의 수준은 어땠나.

팀으로 싸우는 구단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선수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나다. 해외에서 몸값이 높은 선수들을 데려오기 때문이다. 리그 수준이 내가 처음 갔을 때보다 훨씬 높아졌다. UAE는 어린 외국인 선수들을 데려와 국적을 부여하는 정책도 활용하고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리그가 크게 발전 중이다. 지금은 경쟁이 정말 치열한 리그가 됐다.

Q. 알 아인에서 프로 데뷔 후 처음 외국인 선수 생활을 했다. ‘외국인 선수’로 살아가면서 새롭게 느낀 것도 많았을 것 같은데.

장단점이 있었다. 외국인 선수는 ‘다른 선수들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팀이 지거나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가장 먼저 책임을 지는 것도 외국인 선수인 것 같다. 특히 UAE는 외국인 선수들이 팀을 이끌어 가는 구조에 가깝다. 한국이나 일본은 자국 선수들의 비중이 높은 편이지만, UAE는 외국인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만큼 부담감이 컸다. 반면 선수에 대한 대우나 생활 환경은 좋았다. 외국인 선수들이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좋은 대우를 해주는 부분은 만족스러웠다.

Q. 최근 동남아시아 구단들을 보면서도 느끼지만, 외국인 선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그 나라 축구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UAE에서 생활하면서 ‘UAE 축구도 함께 발전하고 있다’고 느꼈나.

어려운 문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UAE는 어린 외국인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더 개방적인 정책으로 바뀌면서 자국 선수들이 경기에 나설 기회가 많이 줄었다. 지금 내가 뛰었던 팀만 봐도 UAE 출신 선수는 골키퍼 한 명 정도다. 어린 외국인 선수들을 데려와 국적을 부여하다 보니 명목상 자국 선수이지만 사실상 해외에서 데려온 선수들이 중심이 되는 구조다. 물론 UAE 축구도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선수는 뛰어야 한다. 출전 기회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성장이 쉽지 않다고 본다.

박용우의 알 아인 시절. 사진=AFPBBNews=News1
박용우의 알 아인 시절. 사진=AFPBBNews=News1

Q. 알 아인에서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했다. 약 1년간 재활에 매진해야 하는 부상이었다. 부상 당시 심정은 어땠나.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십자인대 파열은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큰 부상을 당해 본 적도 없었고, 오랫동안 축구를 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막상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정말 내가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부상을 당한 게 맞나 싶었다.

Q.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정도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은데.

힘들었다. 하지만 ‘축구선수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아주 강했다. 그만큼 동기부여도 컸다. 운동을 열심히 했다. 재활에 온 힘을 쏟았다.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그 경험을 통해 배우고 느낀 것이 많다.

박용우. 사진=대한축구협회
박용우. 사진=대한축구협회

Q.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앞둔 시점이었다. 월드컵 출전이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 부분은 깔끔하게 받아들였다. 부상을 당하고 나서 ‘월드컵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월드컵에 출전한다면 선수로서 정말 좋은 일이다. 하지만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부상의 특성을 알고 있었다. 회복에 필요한 시간을 생각하면 월드컵 출전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월드컵 전 복귀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재활에 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리였다. 무리하고 싶지도 않았다.

Q. 이유가 있었을까.

‘너무 일찍 복귀하면 재부상 위험이 커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목표는 월드컵 출전이 아니라 축구선수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당연히 마음이 좋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상황을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재활에 집중하려고 했다.

Q. 박용우의 축구 인생에서 알 아인에서 보낸 시간은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시간이었다. 함께했던 사람들도 정말 좋았다. 알 아인에서 네다섯 명 정도의 감독을 만났다. 모든 지도자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알 아인으로 향하기 전까지 한국에서만 축구했고, 한국 지도자들의 지도를 받았다. 그런데 해외에 나가 보니 축구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팀을 운영하는 방식이 다양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이런 방식으로 팀을 이끌 수도 있구나’, ‘이런 축구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꼈다. 축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생활도 정말 좋았고, 무엇보다 행복하게 축구했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알프레트 슈뢰더르(54·네덜란드). 사진=AFPBBNews=News1
알프레트 슈뢰더르(54·네덜란드). 사진=AFPBBNews=News1

Q. 알 아인에서 만난 지도자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감독은 누구인가.

개인적으로는 처음 알 아인에 갔을 때 만났던 알프레트 슈뢰더르(54·네덜란드) 감독이다. 내게는 최고의 감독이었다. 정말 세밀하게 지도하는 분이었다. 좋은 지도자였고, 배울 점이 많았다. 당시 리그 성적도 좋았고, ACL 조별리그에서도 계속 승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구단 수뇌부와의 문제로 갑자기 팀을 떠나게 됐다. 정말 슬펐다. 그분에게 축구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세밀한 부분들을 배우고 있었다. 그런 분이 하루아침에 떠나셨다. 내 기억으로는 경기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선수들에게 별다른 이야기도 없었다.

Q. 슈뢰더르 감독이 떠난다는 소식은 어떻게 알게 된 건가.

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하지 않는다. 아내가 SNS를 보고 ‘슈뢰더르 감독이 경질됐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놀랐고, 슬펐다. 내게 정말 좋은 지도자였고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컸다. 지금도 슈뢰더르 감독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슈뢰더르 감독이 나를 자신의 팀으로 데려가고 싶어 하셨던 적도 있었지만 시기가 맞지 않아 성사되지 않았다. 재미있는 건 내가 슈뢰더르 감독과 함께한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이다. 프리시즌까지 포함해 3~4개월 정도 함께했다. 그런데도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분이다. 내게는 최고의 지도자로 남아 있다.

Q. 정말 짧은 시간 아닌가. 슈뢰더르 감독이 특별히 인상 깊었던 이유가 있나.

축구를 굉장히 세밀하게 가르쳐 주셨다.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새롭게 알게 됐다. 슈뢰더르 감독의 이력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아약스(네덜란드), 바르셀로나(스페인) 등에서도 지도자 생활을 하셨던 분이다. 그런 경험이 있는 분에게 직접 배우면서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

알프레트 슈뢰더르(54·네덜란드). 사진=AFPBBNews=News1
알프레트 슈뢰더르(54·네덜란드). 사진=AFPBBNews=News1

Q. 울산 복귀를 결정하기 전 해외에서 조금 더 생활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나.

솔직히 있었다(웃음). 해외에서 생활하며 배운 것이 정말 많았다. 영어를 배웠고, 축구적으로도 다양한 생각과 아이디어를 접했다. UAE에는 외국인 지도자가 많다. 그분들과 함께하면서 새로운 것을 계속 배우고 있었다. 그래서 해외에서 조금 더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다만 프로의 세계가 내가 원한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지 않나.

Q. 여러 선택지 가운데 울산 복귀를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가 필요할까. 울산이었기 때문에 선택한 것 같다. 내가 가장 많이 성장한 팀이고 가장 고마운 팀이다. 고향 같은 팀이기도 하다. 울산에서 프로에 데뷔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가장 오래 몸담았던 팀이다. 그만큼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다. 솔직히 다른 구단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선택하려고 하니 울산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용우.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박용우.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지금 박용우가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은 무엇인가.

다시 우승하고 싶다. 프로에 데뷔한 이후 우승을 여러 번 경험했지만 또 우승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우승만큼 큰 또 하나의 목표는 다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몸 관리를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축구하면서 우승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Q. 앞서 ‘월드컵보다 축구선수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했다’는 말이 인상 깊게 남는다. 지금도 축구가 재미있나.

재미있다. 정말 재미있다. 다른 스포츠도 좋아하지만 축구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축구를 빼놓고 내 삶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좋은 사람들과 축구한다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을 준다.

Q. 울산에는 재능 있는 어린 선수가 많다. 박용우는 국내외에서 많은 것을 이뤘고, 국가대표로도 뛰었다. 선배로서 후배들의 성장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을까.

울산에는 정말 좋은 재능을 가진 어린 선수가 많다. 당장은 경기에 나서지 못할 수도 있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선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묵묵히 자기 것을 준비하면서 기회를 기다렸으면 한다. 재능이 있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기회가 반드시 온다. 그렇게 믿고 해야 할 것에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하나 중요한 건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것이다. 그 기회를 잡는다면 울산에서 정말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 그런 선수들이 많아지는 것이 울산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박용우(사진 가운데). 사진=AFPBBNews=News1
박용우(사진 가운데). 사진=AFPBBNews=News1

Q. 수비형 미드필더는 눈에 띄거나 크게 주목받는 포지션이 아니다. 반면 한 번의 실수나 부진으로 엄청난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어려운 자리다. 정신적으로나 실력적으로 계속 성장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일단 비판을 많이 받아봐야 하는 것 같다(웃음). 나도 비판을 많이 받아봤다. 정말 쉽지 않은 상황도 있었고, 이겨내기 어려운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서 선택한 축구다. 계속 축구를 하고 싶다면 그런 어려움도 이겨내야 한다. 특히 우리 포지션은 경기장에서 하는 일이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어떤 위치로 움직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많은 분이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다. 그게 이 포지션의 매력이지 않나 싶다. 나나 (이)규성이 같은 경우도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거나 주목받는 것을 즐기는 성격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성격이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포지션에 잘 맞는 것 같다. 나는 내 포지션이 정말 좋다. 잘 맞는다.

Q. 축구에 대한 애정이 정말 큰 선수인 것 같다. 팬들은 그래서 더 박용우를 응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나 끝까지 응원해 주신 팬들께 감사드린다. 항상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 모든 경기에서 팬들이 만족하실 수 있는 경기력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울산도 많이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 올 시즌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울산=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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