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잠실) 황석조 기자] 이날의 한 방을 위해서였을까. 가장 절실했지만 가장 부진하기도 했던 베테랑 야수 이범호(35)가 중요한 순간, 그 어떤 순간보다 짜릿했을 그랜드슬램을 날리며 팀 우승을 자축했다.
KIA 선수 중 가장 우승이 간절했던 이범호. 그는 시즌 내내 “정말 우승이 간절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 누구보다 우승의 순간을 기다린다고도 했다. 지난 2006년 한화 소속으로 기록한 아쉬운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기억을 이제 대체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11년이 흘렀다. 이범호는 KIA의 주장을 역임한 베테랑 중 베테랑이 됐다. 커리어는 나날이 뜨거웠다. 팬들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 하지만 한 가지가 부족했다. 바로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KIA 이범호(사진)가 결정적 그랜드슬램으로 그간 부진을 털어냈다. 사진(잠실)=김재현 기자
그런 이범호에게 기회가 왔다. 2017시즌 KIA는 대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시즌 초반부터 선두에 오른 뒤 거침없었다. 이범호는 지난 시즌보다 개인성적은 부족했지만 베테랑으로서 소금 같은 활약을 아낌없이 펼쳤다. 만루의 사나이라는 별명답게 찬스에 강했다. 선수단 리더 역할도 피하지 않았다. KIA와 이범호는 동반 질주했다.
이범호는 언제 이런 기회가 다시 올지 모른다.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선수생활, 꼭 우승을 차지하고 싶다고 간절히 소망했다. 한국시리즈에 임하는 각오도 그 누구보다 절실했다.
그러나 부담감으로 이어졌을까. 4차전이 펼쳐지는 동안 이범호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안정된 수비를 하다가도 실책을 범하기도 했으며 방망이는 잠잠했다.
김기태 감독은 이범호의 부진에도 “경험이 많은 선수다. 페넌트레이스와 달리 포스트시즌은 한 번만 해주면 된다”며 믿음을 거두지 않았다. 배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에게 한 방이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
이범호는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필요한 순간, 방망이로 진가를 발휘했다. 베테랑이어서가 아니라 타자로서 야수로서 제 역할을 선보인 것.
이범호는 5차전 1-0 주자 만루상황에 타석에 섰다. 시즌 내내 수차례 만루 홈런을 날린 기억이 있던 그에게 익숙한 상황. 다만 포스트시즌서 만루의 사나이는 그간 없었는데 이날 이뤄졌다. 상대투수 니퍼트로부터 날린 호쾌한 한 방. 맞는 순간 이범호는 홈런임을 직감하고 환호했다. 그 누구보다 통쾌한 마음으로 그라운드를 돌았다.
KIA도 웃고 이범호도 웃었다. 만루의 사나이는 그렇게 가을야구 가장 정점의 순간, 만루포로 존재감을 증명했고 자신의 가치를 드높였다. 그리고 그렇게나 바라던 한국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스스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