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미약, 끝은 창대했던 남자의 마지막 인사 [MK인터뷰]

“프로야구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가 한국시리즈 우승 날이었다는 것은 평생 훈장일 것이다.”

kt 위즈의 창단 첫 통합우승을 이끈 ‘수원의 아들’ 유한준(41)이 14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키움 히어로즈, 그리고 끝을 장식한 kt 팬들 앞에서 그는 선수 인생의 마지막과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을 약속했다.

2000년 KBO 2차 드래프트 3라운드 전체 20순위로 현대에 지명된 유한준은 구단명이 현대에서 우리, 넥센 등 다양하게 바뀌었음에도 2015년까지 소나무처럼 굳건히 서 있었다. 이후 FA 신분이 되어 다시 수원으로 돌아갔다. 유한준은 새 보금자리 kt에서 창단 첫 통합우승을 함께하며 ‘수원의 아들’로서 제대로 효도했다.

kt 유한준(41)이 14일 은퇴 기자회견 중 인사를 건네고 있다. 사진(수원)=천정환 기자
비교적 늦게 꽃 피운 유한준이지만 그 끝은 창대했다. 프로 진출 후 10년(대학 4년 포함) 넘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그는 군 제대 후 2010년부터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증명했다. 2014년 처음 3할 타자가 됐고 은퇴 전까지 2020시즌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2할로 내려가지 않았다. 은퇴 시즌이었던 지난 2021시즌에는 104경기에 출전, 타율 0.310 87안타 5홈런을 기록했다. 2004년 입단하여 2021년까지 무려 18시즌을 소화한 유한준은 통산 1650경기 출전, 타율 0.302 2355루타 1606안타 151홈런 717득점 883타점 35도루를 KBO 역사에 남겼다.



다음은 유한준의 은퇴 기자회견 일문일답이다. Q. 은퇴 발표 후 시간이 꽤 흘렀다. 지금 감정은 어떤가.

6개월이 지났다.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은퇴식이 점점 다가오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Q. 이강철 감독은 보내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활짝 웃으며)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내겐 평생 은인이다.

Q. 다시 유니폼을 입고 은퇴 기자회견을 하니 새롭다.

은퇴한 다른 선수들을 보면 대부분 사복을 입더라. 나는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고 싶었다. 이런 시간이 내게 허락되어 너무 감격스럽다.

Q.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kt, 그리고 감독님의 배려로 여러 파트를 돌며 일을 배웠다. 처음에는 스카우트팀이었고 다음은 데이터팀, 지금은 전력분석팀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 너무 감사하게도 가는 팀마다 환대해줬다. 많은 걸 가르쳐줬다. 이 자리를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Q. 은퇴식이 열리는 날 상대가 (키움)히어로즈라는 것도 의미가 깊다 . 나를 키워준 팀이 아닌가. 구단과 상의할 때 은퇴식은 히어로즈전에서 하고 싶다고 했다. 구단에서 잘 받아들여 줬기 때문에 특별한 날 은퇴할 수 있게 됐다.

Q. kt와 히어로즈,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팀인가.

히어로즈에 있을 때는 운동하기 바빴다. 내가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성장의 시간을 보낸 감사한 팀이다. kt는 함께 성장한 팀이다. 건강하게 잘 성장해 자부심이 있다. 조금 자화자찬하자면 kt에선 완벽한 페이스 메이커가 되지 않았나 싶다(웃음). 지금의 영광은 내가 가지고 가지만 다음 영광은 우리 후배들이 이어서 가져갔으면 한다. 또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Q. 야구 인생을 돌아봤을 때 가장 감사한 사람은 누구인가.

먼저 이강철 감독님이다. 나를 끝까지 믿어준 사람이다.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에 4번 타자로 나갈 기회를 줬다. 전적으로 신뢰해준 사람이다. 덕분에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다. 히어로즈에선 염경엽 감독님이 생각난다. 좋은 루틴에 대해 배웠고 그 부분이 나를 성장시켰다. 타격만 놓고 보면 허문회 코치님이 많은 영감을 줬다. 유신고 시절 은사인 이성열 감독님도 감사한 분이다.

kt 유한준(41)이 14일 수원 kt위즈파크에 도착한 콜라차 앞에서 콜라를 들고 미소 짓고 있다. 사진(수원)=천정환 기자
Q. 경기장 앞에 커피차가 아닌 콜라차가 와 있다. 내 이미지가 워낙 그렇다 보니 콜라차가 온 것 같다(웃음). 현역 때 콜라를 아예 마시지 않은 건 아니다. 즐겨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도 몸 관리를 잘했다는 이미지 덕분에 팬들이 기분 좋게 봐준 것 같다. 은퇴했으니 몸 관리도 조금은 편하게 하라는 뜻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Q. 현역 때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나.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다. 졸리면 자고 먹고 싶을 때 먹는다. 현역 때는 먹고 자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굉장히 편해졌다.

Q. 평소 담담한 성격으로 알고 있다. 막상 은퇴식이 시작하면 울 것 같은가.

모든 사람들이 무조건 울 거라고 하더라(웃음). 사실 일주일 전에 사전 인터뷰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은퇴 발표 후 6개월이 지나서 크게 감흥 없을 줄 알았는데 느낌이 이상하더라. 아쉬움의 눈물이 아니라 기쁨, 그리고 후련함의 눈물이었다.

Q. 더 뛰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

전력분석팀에 있다 보니 제3자의 입장에서 경기를 지켜볼 때가 있다. 박병호 선수가 8회에 역전 홈런을 친 경기가 있는데 더그아웃을 보니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더라. 그때 ‘나도 저기에 있었다면?’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도 은퇴 결정에 후회도 미련도 없다.

Q. 야구 인생에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나.

체격을 키웠던 것? 선수 인생에 있어 전환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또 염경엽 감독님이 알려준 루틴이 큰 도움이 됐다. 그걸 내게 맞춰 꾸준히 이어간 게 가장 잘한 일인 것 같다.

Q. 가장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을 텐데.

팔꿈치 수술을 받았을 때가 정말 힘들었다. 주전으로 올라서고 있었던 상황에서 큰 부상을 당하니 막막하더라. 슬럼프도 왔고 내 자리가 사라지려는 것 같아서 암울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힘듦이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 같다. 그 시간조차 내게는 너무 소중했다.

Q.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기록이 있나.

KBO를 거쳐 간 훌륭한 선배들에 비해 난 좋은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명백한 사실이다. 내세울 기록도 사실 없다. 단 한 가지 자부할 수 있는 건 은퇴 경기가 한국시리즈 우승 날이었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선수로서 큰 자부심이었다. 평생 훈장이 될 것이다.

Q. 특별 엔트리에 대해 고사했다고 들었다.

구단에서 여러 행사를 준비했다고 들었다. 특별 엔트리도 좋은 취지라고 생각하지만 경기할 때는 경기에 집중해서 꼭 승리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그래서 고사했다.

Q. 후배들에게 들어보니 선수 ‘유한준’에게 아쉬워한 부분이 있었다. 고참인데도 후배들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고 한 게 아쉽다고 하더라.

타고난 성향이라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고 최대한 자제했다. 고참일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었다. 고참으로서 제일 중요한 건 야구를 제일 잘해야 하고 좋은 분위기, 그리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 의견이 팀 전체 의견이 될까 봐 조심스러웠다. 정말 많이 노력했다. 그래서 후배들이 그렇게 느끼지 않았나 싶다(웃음).

Q. 선수로서는 마지막 기자회견이다. 가족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운동선수 가족들은 정말 힘들다. 부모님은 내게 모든 걸 헌신했다. 다정한 아들이 아니라서 평소 말을 많이 못했지만 이 자리를 통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부모님의 뒷모습만 보고 따랐더니 지금 이 자리에 섰다. 또 힘이 되어준 아내와 아이에게 정말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수원=민준구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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