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성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남은 이들만이 빅리그에 오를 수 있다.
문화적 이질감이 없는 미국이나 중남미 선수들에게도 좁은 문이다. 바다건너 낯선 나라에서 온 선수들에게는 더욱 더 힘든 길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선수들이 그 험난한 길을 걸아갔다. 성공한 이도 있었고, 그러지 못한 이도 있었다. 이제 미국 생활 2년차인 조원빈은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
(1편에서 계속)
한국 선수들이 미국에 와서 제일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갑자기 늘어난 자유시간에 적응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집에서는 심심하다. 혼자 있다보면 생각도 많아지고 그러니까 얼마전에 플레이스테이션을 구매했다. 게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거라도 하며 시간을 떼워야 할 거 같았다. 피파나 MLB 더 쇼도 하고 있다. 아직 흥미를 느끼지는 못하고 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있다.
‘더 쇼’를 한다면 ‘로드 투 더 쇼(마이너리그 선수를 빅리거까지 키우는 육성 시뮬레이션 모드)’도 해봤을 거 같다.
그렇다. 얼마전에 체격이나 생김새, 스윙까지 나와 똑같은 선수를 만들어서 했다. 그러다가 다시 새로운 선수를 만들었다. 나와는 다른 유격수 스위치 히터로.
어째서?
나와 똑같은 게임 속 선수는 지금 나보다 높은 레벨에 있다. 팀까지 카디널스다. 그런데 게임에서 그 선수가 못하면 나도 그렇게 될 거 같더라. 게임이 즐겁자고 하는 건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되지 않는가.
그게 스트레스면 난이도를 낮춰서 리그를 정복하는 방법도 있다.
나는 항상 무엇을 하든 어려운 걸로 하는 주의다(웃음).
집에는 혼자 사는가?
룸메이트가 세 명 있다. 방과 화장실은 각자 따로 있고 거실과 부엌을 같이 쓰는 구조다.
통역은 없는가?
통역은 없다.
통역이 없다고? 지난해에는 있었는데 설마?
기존 통역분이 마음에 안든 것은 전혀 아니다. 그분은 지금도 이 컴플렉스에서 다른 부서로 일하고 계신다. 지금도 같이 밥도 먹으러가고 잘 지낸다. 전혀 문제없다. 구단에서 필요하면 붙여준다고 했는데 에이전트와 얘기해서 없이 하기로 했다. 자유자재로 소통하며 동료들의 말을 잘 이해하고 경기에 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불편할지 몰라도 통역없이 생활하는 것이 앞으로 생활에 도움을 줄 거라 생각했다. 겨울에도 한국에는 한 달만 있었고 나머지는 미국에서 있었다. 영어가 들리는 것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 일상 대화는 거의 다 된다. 미팅을 하거나 조금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어려워하는 정도다.
그래도 미팅이나 중요한 자리같이 통역이 필요한 상황이 있을텐데?
아직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만약에 부족한 것에 대해 미팅하는 자리라면 내가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부족한지 알고 있기에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불려왔는지는 아니까.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통역해줬던 분도 같은 곳에 일하고 계시니까 중요한 얘기라고 판단하면 (구단에서) 불러올 것이다.
그러고보니 지난해와 비교해 몸이 많이 좋아진 거 같다.
몸집이 나도 모르게 커졌다. 파워도 좋아졌고 스피드와 탄력도 좋아졌다. 딱히 관리하는 것은 없다. 음식은 가리지않고 잘 먹고 있다. 지난 겨울 몸이 커진 것을 느끼고 너무 둔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웨이트보다는 코어 근육 강화와 스피드 강화 위주 훈련을 했다. 지금 많이 효과를 보는 거 같다.
음식은 가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여기 음식은 적응이 됐는가?
미국 음식도 가리본 적이 없다. 한국 음식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계속 안먹으면 까먹을 정도다. 그러다 너무 먹고싶으면 요리를 하고 있다. 여기서 한인 마트가 멀긴하지만 가서 사오고 있다.
다른 한국 선수들과 연락도 하고 지내는지 궁금하다.
(엄)형찬이와 연락을 제일 많이 한다. 지금 애리조나에 있어서(엄형찬의 소속팀 캔자스시티 로열즈는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에 캠프가 있다) 여기와 시차도 다르지만, 시간 날 때마다 영상통화도 하고 있다. 다른 선배들중에는 (배)지환이형과 연락을 많이 하고 있다.
배지환 선수와는 어떤 관계인가?
내가 고등학생 시절에 미국에 가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조언을 많이 해주시고 자신감도 불어 넣어 주셨다. 여기 오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고, 미국 와서도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스프링캠프 때도 휴식일에 직접 찾아가 식사도 했다.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 나갔을 때도 먼저 전화해주셨다. 자신이 걸어온 길들을 공유해주시면서 내게도 조언을 해주고 있다.
메이저리그 신인 선수가 조언이라니 뭔가 신선하다. 어떤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가?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말들을 해주시기보다 주로 현실적인 조언들을 해주신다. 내가 주로 어느 부분에서 잘 안되고 어느 부분에서 긴장하는지를 얘기하면 형이 ‘경기를 하다보면 괜찮아진다’고 얘기해주신다. 그냥 좋다. 연락이 될 때마다 좋다.
혹시 닮고 싶은 선수가 있는가?
미국에 올 때부터 브라이스 하퍼(필라델피아)를 생각했다. 타격도 잘하고 주루도 정상급은 아니지만 빠르고, 수비에서도 강한 어깨를 자랑하는 선수다. 하퍼 선수가 롤모델이고 꿈에 그리는 뭐 그런 느낌이라면, 현실적으로는 추신수 선배님이 목표다. 추신수 선배님처럼 엄청난 외야수가 되고 싶다. 선배님이 뛰었을 때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뛰고 있다. 어느 부분이 될지는 모르지만, 하나라도 선배님을 뛰어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좋은 목표다. 그래도 고민이 많을 거 같다. 당장 한국 선수들은 군대 문제라는 거대한 벽에 직면해야한다.
지금 내가 군대를 갈 수 있는 나이고 주위에도 군대를 간 친구들이 있다. 청소년대표팀을 같이 뛴 조세진 한태양(이상 롯데)이 상무에서 뛰고 있고 휘문중학교를 같이 나온 조민성(삼성)은 최근에 상무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밖에도 군대에서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이 많다. 그래도 지금 당장 7년간은 군문제보다는 (빅리그에) 올라가는 것이 더 고민이 될 거 같다. (군문제 때문에) 쫓기는 것은 없다. 만약 내가 7년 뒤에 비전이 없다면, 나는 메이저리거가 아닌 것이다. 그때는 한국에 가서 군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목표를 잡고 싶다.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웃음). 그런 생각들에 대해서는 정리를 해야 할 거 같다. 시즌은 길다. 지금 내가 당장 타율 3할을 치고 상위 단계로 빨리 올라가서 메이저리그를 남들보다 빨리 간다고 돈을 더 벌고 그런 것도 아니다. 지금처럼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이클에 따라 잘되면 잘되는 대로, 안되면 안되는 대로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고 싶다. 빠르게 가서 빨리 내려오기보다는 천천히, 오래 뛰는 선수가 되고 싶다.
그와 인터뷰가 마무리될 때쯤, 선수단 소집 시간이 다가왔다. 선수들이 하나 둘씩 클럽하우스로 들어가고 있었다. 조원빈 선수도 보내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다음에는 더 큰 무대에서 만나자’는 기자의 말에 “올해 목표는 가을리그에 가보는 것”이라는 당찬 대답이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그와 악수를 나눴다. 손바닥 곳곳에 박힌 굳은 살의 감촉이 그대로 전해졌다.
[주피터(미국)=김재호 MK스포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