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장기 프로젝트를 세우자고 하더라. 한 2~3년 하면 내 이름 남지 않을까.”
박기원 감독은 2023년부터 태국 남자배구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2019-20시즌을 끝으로 대한항공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 3년 만에 사령탑 복귀.
박기원 감독은 1980~90년대 이탈리아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고, 2002년부터 2006년까지는 이란 남자배구 대표팀 감독직을 맡았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LIG손해보험(現 KB손해보험), 2011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 2016년부터 2020년까지는 대한항공 감독으로 활약했다. 2017-18시즌에는 대한항공에 창단 첫 우승을 안겨주기도 했다.
3년 만에 배구 코트로 돌아온 박기원 감독은 태국 남자배구를 ‘확’ 바꿨다. 약체로 평가받던 태국 남자배구를 끈끈한 팀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특히 지난 7월 열린 2023 아시아배구연맹(AVC) 챌린저컵에서 태국에 우승컵을 안겼다.
태국은 AVC 챌린저컵 우승 팀에게 주어지는 국제배구연맹(FIVB) 챌린저컵 출전권을 따냈다. 1년 전만 해도 일어날 수 없던 일이, 박기원 감독 부임 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20일 중국 항저우 린핑 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E조 카타르와 예선 2차전 종료 후 만난 박기원 감독은 “취미 생활하러 태국에 왔는데, 일을 하다 보니 또 욕심이 생긴다. 뭐라도 만들어주고 싶다. 지금 이렇게 배구를 하고 있어 굉장히 좋다”라고 웃으며 “이왕 시작한 김에 뭐라도 이뤄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물론 내가 이 팀을 끌고, 아시아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주춧돌을 깔아놓고, 또 이 팀이 잘 돌아가게끔 해주려고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FIVB 챌린저컵이 열렸던 카타르 도하에서 태국으로 돌아온 이후 태국 배구 팬들의 반응은 달라졌다. 이전에는 여자배구에만 치중됐던 인기가, 남자배구에도 생기기 시작했다.
박기원 감독도 “돌아오니까 태국에서 영웅이 되어 있더라. 선수들을 대하는 팬들의 자세가 달라졌다. 옛날에는 공항에 도착하면 아무도 없었다. 지금은 바뀌었다. 움직이지 못할 정도다. 그 정도로 남자배구가 바뀌었다. 나 같은 경우는 태국에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게 여권도 만들어줬다. 여러 가지로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태국 선수들의 꾸준한 성장세, 높아지는 인기에 태국배구협회는 박기원 감독과 장기 프로젝트를 세우려 한다.
박기원 감독은 “장기 계획을 한 번 세워보자고 하는데, 내가 될 것 같으니 알겠다고 했다. 일단 아시안게임 끝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려 한다. 2~3년 바짝 하면 내 이름이 남지 않을까”라고 웃었다.
태국은 아시안게임 예선 일정을 모두 마쳤다. 첫 경기 19일 홍콩전에서는 3-0 승리를, 20일 카타르전에서는 1-3으로 패했다. 카타르에 이어 조 2위로 12강 진출이 유력하다.
박기원 감독은 “경기는 이기면 좋고, 지면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웃으며 “카타르전은 우리 선수들의 기복이 심했다.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상대 선수들의 높이가 높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우리 선수들의 컨디션이 나빴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늘 힘을 내주는 선수들에게 격려의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박 감독은 “늘 잘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올해는 대회만 다녔다. 선수들이 짜증 없이 따라와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라고 했다.
끝으로 “벤치에 앉으면 욕심이 생기는데, 무조건 이기고 싶은 건 아무래도 내 욕심인 것 같다”라고 웃었다.
72세 명장의 배구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항저우(중국)=이정원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