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분위기가 위축되어 있긴 하죠.”
페퍼저축은행은 올 시즌이 창단 세 번째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매 시즌이 최악의 시즌이다. 그 가운데 올 시즌이 지금까지 보낸 가장 최악의 시즌을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3일 한국도로공사전 3-2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는 여자부 역대 최다 23연패를 달리며 100일 넘도록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올 시즌 고작 승점 10점 3승 28패. 이미 여자부 최초 세 시즌 연속 최하위가 확정됐다.
올 시즌 페퍼저축은행을 향한 기대는 그 어느 시즌보다 컸다. 여자배구 대표팀 캡틴 박정아를 3년 총액 23억 2500만원에 영입했다. 또한 KGC인삼공사(現 정관장)에서 아웃사이드 히터 채선아를 연간 1억(연봉 9천, 옵션 1천)에 3년 총액 3억 규모의 계약으로 영입했다. 집토끼 아웃사이드 히터 이한비와 3년 총 10억 6천만원(연봉 8억, 옵션 2억 6천), 리베로 오지영과는 3년 총 10억원(연봉 7억, 옵션 3억)에 재계약을 완료했다. 46억이 넘는 거액을 투자했다.
투자효과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성적은 물론 경기력도 기대 이하였다. 팬들 역시 페퍼저축은행의 떨어지는 경기력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상황에서 시즌 막판 베테랑 리베로 오지영의 퇴단 소식이 전해졌다. 후배 B, C 선수를 향한 괴롭힘 의혹이 불거졌고, 구단은 자체 조사를 통해 한국배구연맹(KOVO) 선수고충처리센터를 통해 신고를 했다. KOVO 상벌위원회는 23일과 27일 두 차례의 회의를 거쳐 오지영에게 1년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KOVO는 “오지영 선수의 팀 동료에 대한 괴롭힘, 폭언 등 인권침해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하였고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상벌위원회는 이 같은 행위들은 중대한 반사회적 행위이며 앞으로 프로스포츠에서 척결되어야 할 악습이므로, 다시는 유사한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재하기로 하여 선수 인권보호 위원회 규정 제10조 제1항 제4호, 상벌규정 제10조 제1항 제1호 및 제5호, 상벌규정 별표1 징계 및 제재금 부과기준(일반) 제11조 제4항 및 제5항에 의거, 오지영 선수에게 ‘1년 자격정지’의 징계를 결정하였다”라고 전했다.
상벌위원회의 결과 발표 이후 페퍼저축은행은 사과문과 함께 오지영의 계약 해지 소식을 전했다. 페퍼저축은행은 “먼저 구단 내 불미스러운 일로 페퍼저축은행을 아껴 주시는 팬 여러분과 한국배구연맹 그리고 배구 관계자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페퍼저축은행은 내부조사를 통해 오지영 선수에 의한 인권침해 행위 사실을 파악 후, 곧바로 선수단에서 배제하고 배구연맹에 이를 신고하였습니다. 상벌위원회 징계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금일부로 오지영 선수와의 계약을 해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향후 구단은 선수들의 권익 보호와 재발 방지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28일 오후 조 트린지 감독과의 결별 소식도 전했다. 이미 지난 25일 저녁 한 매체를 통해 트린지 감독과 결별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졌고, 페퍼저축은행은 남은 서류 절차 마무리 후 트린지 감독과 상호 합의 계약해지 소식을 발표했다.
페퍼저축은행은 “침체된 구단의 분위기 쇄신 및 다음 시즌에 대한 빠른 준비를 위해 고심 끝에 트린지 감독과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했다. 차기 감독 선임 전까지는 이경수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끌 예정이다”라며 “구단은 조속히 차기 감독 선임 절차에 착수해 팀을 정상화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또한 트린지 감독과 함께 한 날들을 잊지 않을 것이며, 그와 그의 가족들의 앞날에 행운을 빈다”라고 이야기했다.
트린지 감독을 대신해 남은 5경기 팀을 이끌게 된 이경수 감독대행은 대행직만 세 번째다. 2020-21시즌 KB손해보험 코치로 있을 때 이상렬 감독을 대신해 감독대행직을 맡은 바 있다. 또 지난 시즌에도 김형실 감독 자진사퇴 후 감독대행직을 맡았다. 세 번이나 감독대행직을 맡는 건 이례적인 일.
지난 시즌 김형실 감독을 대신해 2라운드 후반부터 시즌 끝까지 페퍼저축은행을 이끌었다. 성적은 좋지 않았다. 5승 21패 승점 13점.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자신만의 확고한 전술로 타팀들을 상대하며 저력을 보여줬다. 당시 구단 측도 이경수 감독대행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난 시즌과 상황이 완전 다르다. 경기에만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다.
28일 저녁 기자와 전화 통화를 가진 이경수 감독대행은 “지난 시즌 같은 경우에는 개막 10경기 이후부터 감독대행을 했다. 경기를 치르면서 맞춰 갈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뭘 건드리지도 못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그저 선수들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을 맞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팀 분위기가 말이 아닐 것. 23연패라는 불명예 기록을 썼고 또 23연패를 탈출하자마자 오지영의 후배 괴롭힘 의혹과 함께 계약 해지, 그리고 감독까지 떠났다.
이경수 대행은 “선수들 훈련 분위기는 나쁘지 않지만, 아무래도 위축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선수들도 동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적이 안 좋다가 이긴 후 곧바로 감독님이 나가시게 되었다. 이번이 세 번째 감독대행인데 많이 힘들다”라고 말했다.
이어 “감독님과 작별 인사는 하지 않은 상황이다. 돌아가는 날이 정해지면 그때 마지막 인사를 할 것 같다. 지금은 감독님과 마지막 인사를 기다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라고 덧붙였다. 트린지 감독이 데려온 존 그로스먼 코치는 잔여 시즌도 페퍼저축은행과 함께 한다.
오지영 괴롭힘 의혹에 대해서는 “지금 그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고 있고, 꺼내지도 않는다. 예민한 문제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당장 바로 오늘(29일) 광주 홈에서 IBK기업은행과 경기를 치른다. 선수들과 합심해 최선의 경기력을 보여주는 게, 지금 페퍼저축은행이 해야 될 일.
이경수 대행은 “아무래도 외국인 감독님이 떠나면서 외국인 선수들이 많은 영향을 받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열심히 훈련을 소화해주고 있다. 야스민의 몸 상태도 경기를 못 뛸 정도는 아니다. 남은 선수들과 IBK기업은행전도 열심히 해보겠다”라고 말했다.
이정원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