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나 장기에서 잘못 두는 나쁜 수를 악수(惡手)라고 한다. 우리나라 경기단체 가운데 가끔 악수를 두는 경기단체는 단연 대한축구협회(회장 정몽규·62)를 꼽을 수 있다.
황선홍(56) 남자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 겸 국가대표 A팀 임시감독은 11일 ‘문제아’ 이강인(23)을 손흥민(32) 등과 함께 23명의 국가대표 A팀 선수로 선발했다. 발표는 황 감독이 했지만, 대한축구협회가 황 감독의 입을 빌려 발표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달 황선홍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을 2026년 월드컵 대표팀 임시감독까지 겸하도록 해 황 감독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했다. 이 또한 악수가 아닐 수 없다.
대한축구협회는 작년 2월 지도자로서는 문제가 많은 독일 출신 위르겐 클린스만(60)을 4년 임기 국가대표 A팀 감독으로 영입했다가 지난달 1년 만에 해임했다.
대한축구협회는 1998년 6월 프랑스월드컵에서도 당시 차범근(71) 감독이 E조 2차전에서 히딩크 감독의 네덜란드에 0대5로 참패하자 현장에서 차 감독을 경질했다.
“전장(戰場)에서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오랜 속설을 무시하고 악수를 둔 것이다. 1993년부터 30년 넘게 현대그룹의 정몽준(73) 정몽규 회장이 한국축구를 좌지우지하면서 벌어진 일들이다.
이강인이 누구인가? 앞으로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유망주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지난달 아시안컵 요르단과의 준결승 하루 전 주장 손흥민에게 주먹질한 장본인이 아닌가.
물론 뒤늦게 런던까지 찾아가 손흥민에게 사과했다고 하지만 이것으로 그의 잘못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축구계의 뜻있는 인사들은 “이강인을 위해서도 앞으로 몇 년간 이강인을 대표팀에서 제외, 자숙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었다.
과연 축구대표팀 막내뻘인 이강인이 대표팀에서 손흥민 등 선배들과의 팀워크를 잘 이루어 낼 수 있을까? 11일 오전 11시 이강인의 대표팀 선발 사실이 연합뉴스에 보도되자 이강인을 선발한 황선홍 감독을 성토하는 댓글이 이 기사에만 585개(오후 2시 현재)가 달렸다.
선수 선발은 감독 고유 권한이다. 하지만 ‘이강인 충격’이 생생한 이 시점에서 축구팬, 나아가 국민 정서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축구계는 대한축구협회가 황 감독의 이강인 선발에 유형무형의 외압을 행사한 것으로 추측한다.
대한축구협회가 황선홍 감독에게 ‘두 마리 토끼’를 요구한 것도 문제다. 한국축구는 4월 카타르에서 열릴 23세 이하 아시안컵에서 3위안에 들어야 7월의 파리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
황 감독은 일본, 아랍에미리트(UAE), 중국과 B조에 속한 한국을 올림픽 본선에 진출시켜야 할 책무를 안고 있다. 한국축구는 그동안 1988년부터 2020년까지 9회 연속 올림픽에 나가 아시아 최고의 올림픽 연속 참가 기록이 있으나 이번에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대한축구협회는 지난달 황선홍 감독에게 ‘임시’라는 이름을 붙여 이달 중 열릴 태국과의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의 지휘봉도 맡겼다. 황 감독의 어깨가 짓누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베트남축구를 한 차원 끌어올린 박항서(65) 감독과 최용수(51) 전 강원FC 감독 등이 있는데도 이들은 배제된 상태다. 특히 동남아 축구에 익숙한 박항서 감독은 누구보다 태국축구를 잘 아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의 악수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이종세(대한언론인회 총괄부회장·전 동아일보 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