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로치, 은퇴도 미루고 다시 카메라를 든 이유 [김노을의 디렉토리]

매경닷컴 MK스포츠 김노을 기자

연출자의 작품·연출관은 창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모두 마찬가지죠. 알아두면 이해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연출자의 작품 세계. 자, 지금부터 ‘디렉토리’가 힌트를 드릴게요. 좌파감독, 블루칼라의 시인. 영국 출신 거장 켄 로치 감독을 지칭하는 말들이다. 그는 그런 수식어에 기꺼이 품을 내어준다.

지난 2014년 ‘지미스 홀’을 찍고 은퇴를 선언한 켄 로치 감독은 2년 만에 다시 영화계로 돌아와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만들었다. 여든이 넘은 그로 하여금 다시 카메라를 들게 만든 건 영국의 관료주의와 모순투성이인 복지제도다. 진정으로 복지가 필요한 이가 직접 가난을 입증해야 하는 복지제도의 맹점을 파고들었다.

켄 로치 감독 사진=ⓒAFPBBNews=News1
◇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다 켄 로치 감독은 인간의 존엄이 짓밟히는 순간을 모른 체하지 않는다. 어째서 사회는 개인에 대한 보호 장치 하나 마련해주지 않는가, 어째서 직업과 돈이 없으면 굶어죽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야 하는가. 이게 켄 로치 감독이 겨냥하는 현 영국의 어두운 면이다.



내로라하는 유수 영화제나 시상식에서 수상하거나 노미네이트 되는 일이 꼭 좋은 감독, 좋은 작품으로 직결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켄 로치 감독에 대한 두 번의 황금종려상은 그래도 믿어볼 만하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과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로 각각 제59회, 제69회 칸 영화제에서 두 번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아일랜드 내전을 다룬 영화로 독립투쟁을 그렸고,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관료주의와 복지시스템을 통렬히 비판했다.

켄 로치 감독은 줄곧 서민과 노동자 계층이 처한 현실을 대변하고 빈익빈부익부를 부추기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시선을 견지했다. 1963년 BBC에 입사해 연출한 방송 드라마 ‘캐시 컴 홈’(1966)의 홈리스 가족을 통해 영국 노동자의 주거 문제와 영국의 복지제도 맹점을 꼬집은 바다. 영화계로 넘어와서는 앞서 언급한 두 편의 영화와 더불어 ‘레이닝 스톤’(1993), ‘내 이름은 조’(1998), ‘빵과 장미’(2000),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2012) 등을 통해 노동계급의 삶을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포스터 사진=영화사 진진
켄 로치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매우 일관된 주제의식을 보인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슬픈 일이기도 하다. 감독 본인 역시 그 점이 가장 답답하고 속상하지 않을까. 관료주의를 꼬집은 ‘캐시 컴 홈’을 연출한 지 어언 50여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영국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영화를 만든다. 빈익빈부익부를 부추기는 국가 정책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여전히 신자유주의는 인간성에 타격을 준다고 생각하는 켄 로치 감독이다. 그리고 비단 이 문제를 켄 로치 감독이 사는 영국만의 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고, 더 열심히 일할수록 가족 해체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마치 켄 로치 감독이 연출한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영화 ‘미안해요, 리키’ 포스터 사진=영화사 진진
◇ “쏘리 위 미스드 유(Sorry We Missed You)” 전작들을 통해 신자유주의가 낳는 숱한 문제점을 짚은 켄 로치 감독이 이번에는 신작 ‘미안해요, 리키’로 ‘긱 이코노미(Gig economy)’를 비판한다.

지난 19일 개봉한 ‘미안해요, 리키’는 넉넉하지는 않아도 누구보다 행복한 가장 리키가 안정적인 생활을 꿈꾸며 택배 회사에 취직하지만 화목했던 가정이 도리어 뜻밖의 난관에 부딪히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원제인 ‘Sorry We Missed You’는 영국에서 택배 수신자가 부재중일 때 택배 기사가 남기는 쪽지의 내용이다.

켄 로치 감독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후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개인과 가족을 해체시키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다시금 카메라를 들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리키는 안정적인 삶을 위해 택배기사로 전업하지만 택배회사는 임시계약을 맺는다. 긱 이코노미(기업들이 정규직보다 계약직 혹은 임시직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현상)다. 리키는 용변 볼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게 일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빚은 점점 더 늘어가고 가족은 점점 더 멀어진다.

긱 이코노미 현상은 신자유주의 경제와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이미 많은 국가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국가, 사회로부터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임시직은 복지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 필요에 따른 단기 계약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리키가 배달 회사와 계약을 맺었지만 배송차량이나 필요한 기계, 주차 딱지를 자신의 돈으로 모두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결국 또 다른 형태의 착취이자 가난의 반복이다. 쉴 틈 없이 일을 하는 부모 밑에서 아이들은 방치된다. 비극의 악순환이다.

켄 로치 감독의 ‘미안해요, 리키’는 과거, 현재, 미래를 사는 수많은 리키들에게 위로를, 그리고 리키들을 방치하는 국가와 사회에 묵직한 돌직구를 날린다. sunset@mkculture.com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경규 뇌졸중 부인 “화가 나서 목이 쉬었다”
배우 이다해, 가수 세븐과 결혼 이후 첫 임신
블랙핑크 제니 파격적인 노출과 아찔한 실루엣
장원영, 과감한 드레스 자태…돋보이는 볼륨감
이정후 메이저리그 부상자 명단 이후 첫 훈련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