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와 용혜인의 닮은 공정 [MK초점]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때였다. ‘공정’이 대한민국 사회를 관통하는 화두였다.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후보에 오른 류호정 씨의 과거 ‘대리 게임’ 문제가 알려졌다. 류호정 씨는 대학생 시절 자신의 계정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도록 해 게임 등급을 올린 사실을 인정했다.

논란이 컸다. 그러나 정의당은 류호정 씨를 재신임했다. 류호정 씨는 비례대표 1번 자격을 유지해 국회에 입성했다.

류호정 전 의원. 사진=연합뉴스
류호정 전 의원. 사진=연합뉴스

류호정 논란 하나로 정의당의 몰락을 설명할 순 없다. 다만 당시 선택이 정의당이 말해온 ‘공정’의 기준에 의문을 남긴 사건 중 하나였던 것은 분명하다.

정의당은 4년 뒤 녹색당과 선거연합을 꾸려 녹색정의당이란 이름으로 제22대 총선에 나섰다.

결과는 참혹했다.

지역구는 물론 비례대표에서도 단 1석을 얻지 못했다. 비례대표 정당 득표율은 2.14%. 정의당은 창당 이후 처음으로 원외 정당이 됐다.

지도자 홍명보는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기회를 받았다. 사진 원본=대한축구협회. 편집=이근승 기자
지도자 홍명보는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기회를 받았다. 사진 원본=대한축구협회. 편집=이근승 기자

# 홍명보

대한민국 축구계는 국민의 신뢰를 크게 잃었다. 그 중심에 홍명보가 있었다. ‘영원한 리베로’로 불리며 국민 영웅으로 칭송받았던 인물이다.

홍명보는 선수 시절 쌓아 올린 압도적인 명성과 상징성을 등에 업고 지도자로서 남들과 다른 출발선을 밟았다.

2005년이었다. 홍명보는 국가대표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홍명보는 지도자 경험이 없었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대한축구협회(KFA) 2급 지도자 과정을 갓 이수한 상태로 1급 지도자 자격증도 없었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요청으로 대표팀 코치에 발탁되면서 자격과 형평성을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코치’ 홍명보는 2006 독일 월드컵을 시작으로 2007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2008 베이징 올림픽 등을 경험했다. 이후 U-20 대표팀 사령탑에 올라 올림픽 대표팀, 국가대표팀 지휘봉까지 잡았다.

홍명보. 사진(상암 서울)=김영구 기자
홍명보. 사진(상암 서울)=김영구 기자

끝이 아니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실패 이후 중국 항저우 뤼청 감독을 거친 홍명보는 2017년 KFA 전무이사에 올랐다. 선수 은퇴 후 KFA 이사와 기술 위원을 맡긴 했지만 KFA 실무 행정을 총괄한 경험은 없었다.

‘영원한 리베로’에겐 기회도 영원한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는 평생 한 번도 잡기 힘든 기회가 홍명보에게만큼은 끊이지 않았다.

울산 HD에서 지도자로 재기에 성공한 홍명보는 2024년 또 한 번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올랐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선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을 두 차례 지휘한 감독이 됐다.

홍명보. 사진=AFPBBNews=News1
홍명보. 사진=AFPBBNews=News1

홍명보를 향한 대중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데는 감정도 있었다. ‘배신감’이다.

홍명보는 울산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국가대표팀으론 가지 않을 것처럼 행동했다. 대표팀 감독 내정 불과 일주일 전인 2024년 6월 30일 포항 스틸야드에선 난맥상을 드러내던 KFA를 직접 비판했다. 홍명보는 당시 클린스만 감독 선임부터 이후 과정을 돌아보며 “KFA가 과연 얼마나 학습이 된 상태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대중은 홍명보를 믿었다. 잘못된 일에 소신을 이야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축구인이라고 생각했다.

홍명보. 사진=이근승 기자
홍명보. 사진=이근승 기자

그 믿음이 깨졌다.

홍명보는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한 뒤 이렇게 말했다.

“답을 내리지 못하던 중 내 안의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2014년의 실패를 만회하고 싶었다’고, ‘다시 월드컵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더라면 어땠을까.

홍명보. 사진=연합뉴스
홍명보. 사진=연합뉴스

문화체육관광부는 KFA 특정감사에서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의 규정·절차 위반을 확인했다. 감독 추천 권한이 없었던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최종 후보 추천을 진행했다. 홍명보와 다른 외국인 감독 후보자의 면접 과정에도 형평성 문제가 있었다. 홍명보 감독 내정을 발표한 뒤 이사회 서면결의가 이뤄진 점도 지적됐다.

절차적 하자가 있었다. 다만, 홍명보 개인이 그 절차를 설계하거나 규정 위반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

홍명보 개인의 말 바꾸기와 선택은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홍명보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제공하고, 공정해야 할 선임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제도적 책임은 KFA에 물어야 한다.

위르겐 클린스만. 사진=천정환 기자
위르겐 클린스만. 사진=천정환 기자

위르겐 클린스만도 마찬가지다.

클린스만을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선택한 주체는 KFA였다. 문체부 감사에선 클린스만 선임 과정에서도 전력강화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규정과 절차가 지켜지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그런데도 축구계에선 대중이 왜 분노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오히려 ‘원래 그렇게 해왔다’는 식의 반응을 어렵지 않게 접했다. ‘축구를 아는 사람들이 결정하면 된다’는 식의 기득권적 인식도 여전했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4일 서울 서대문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4일 서울 서대문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용혜인

‘공정’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또 한 번 화두로 떠올랐다.

2026년 9월 정치권은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비례대표 의원직 유지 문제로 시끄럽다. 국회법 제29조 ‘겸직 금지’엔 이렇게 적혀 있다.

‘의원은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직 외의 다른 직을 겸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국회의원이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을 겸직하는 건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의미다.

용혜인 후보자가 장관으로 임명된 뒤 국회의원직을 유지해도 현행법 위반은 아니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원이 장관으로 입각할 때는 의원직을 내려놓는 관행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이유가 있다.

지역구 의원은 사퇴하면 해당 지역을 대표할 국회의원이 사라진다. 보궐선거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

비례대표는 다르다. 의원직을 내려놓으면 다음 순번 후보자가 승계한다.

김한길 문화관광부 장관,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신원식 국방부 장관 등이 입각 과정에서 비례대표 의원직을 내려놓았다.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은 의원직을 유지하려다 논란 끝에 결국 사퇴했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3일 서울 서대문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3일 서울 서대문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물론 관행은 법이 아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관행이라면 깨야 한다. 잘못된 기준이라면 새로운 기준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설명해야 한다. 왜 지금까지와 다른 기준이 필요한지. 왜 새로운 기준이 자신에게 적용돼야 하는지.

용혜인 후보자는 8월 31일 “당 소속 유일 국회의원인 제가 사퇴하면 기본소득당이 원외 정당이 돼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이어 “개인의 결정이 당의 진로와 직결될 수밖에 없는 소수 정당의 어려움에 대해 고개 숙여 양해를 구한다”고 했다.

사실상 의원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용혜인 후보자는 이후 의원직 사퇴 여부를 묻는 질문엔 즉답을 피했다.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국민에게 전달하겠다고 했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2일 서울 서대문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2일 서울 서대문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해와 동의는 다르다.

기본소득당이 원외 정당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정당 내부의 절박한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정당의 존립 문제가 오랫동안 이어진 정치권의 관행과 다른 선택을 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장관과 국회의원직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국익에 더 부합하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법이 허용한다는 것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2일 서울 서대문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2일 서울 서대문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선 KFA의 규정·절차 위반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용혜인 후보자의 의원직과 국무위원 겸직은 현행법이 허용한다.

둘을 같은 사건이라고 해선 안 된다.

그럼에도 두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묘하게 닮았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법만 어기지 않으면 공정한 것인가.

누군가는 오랫동안 지켜온 기준을 힘과 지위를 가진 사람에겐 다르게 적용해도 되는가.

공정은 힘없는 사람들이 반드시 넘어야 하는 높은 담장이 되어선 안 된다. 힘과 이름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만 낮아지는 문턱이어선 더더욱 안 된다.

축구판이든 정치판이든 다르지 않다.

홍명보. 사진=연합뉴스=국회사진기자단
홍명보. 사진=연합뉴스=국회사진기자단

역사는 반복된다.

자리는 과정에 문제가 있어도 지켜져 왔다.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어느 순간 책임으로 포장되기도 했다.

누구에겐 엄격하고 누구에겐 관대한 기준. 우리는 그것을 공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정말 궁금하다. 공정이란 것이 현실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의구심마저 든다.

대한민국에서 ‘공정’이란 무엇일까.

규정을 잃어버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부끄러움을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을 뿐.

[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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