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신의 아그네스’로 판을 바꿨다…故 윤석화, 한 시대를 만든 이름

윤석화라는 이름은 하나의 작품으로 설명되기엔 너무 많은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 시작점에는 분명히 ‘신의 아그네스’가 있었다. 1980년대 초, 침체돼 있던 공연계 한복판에서 그는 무대를 넘어 시대의 흐름을 바꿨다.

19일 세상을 떠난 윤석화는 단순한 배우를 넘어, 한 시대의 공연 문법을 새로 쓴 인물이었다. 연기와 스타성, 제작과 기획, 그리고 문화적 영향력까지 동시에 증명한 드문 존재였다.

그의 이름을 대중과 공연계에 각인시킨 작품은 1982년 초연된 연극 ‘신의 아그네스’였다. 당시 미국 뉴욕에서 유학 중이던 윤석화는 이 작품에 배우로 참여했을 뿐 아니라 번역에도 직접 나섰다. 주인공 아그네스 역을 맡은 그는 무대 위에서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연기로 관객을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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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그네스’는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당시 국내 연극계 최장기 공연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단일 작품으로 관객 6만5천 명을 동원했고, 불황에 빠져 있던 공연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작품으로 윤석화는 20대 후반의 나이에 단숨에 연극계 최초의 ‘스타 배우’로 떠올랐다.

이후 그의 행보는 한 장르에 머물지 않았다. 1992년 초연된 1인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 ‘덕혜옹주’, ‘햄릿’ 등에서 그는 여성 배우의 표현 영역을 넓혔다. 특히 60세의 나이에 무대에 오른 ‘햄릿’에서는 오필리아를 연기하며 나이를 뛰어넘는 도전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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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뚜렷했다. ‘명성황후’ 초연에서 1대 명성황후를 맡았고, ‘아가씨와 건달들’, ‘마스터 클래스’, ‘사의 찬미’ 등 굵직한 작품을 통해 연극과 뮤지컬의 경계를 허물었다. 영화 ‘레테의 연가’, ‘봄눈’ 등 스크린에서도 활동하며 매체를 가리지 않았다.

무대 밖에서도 윤석화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딴 돌꽃컴퍼니를 설립해 제작자로 나섰고, 공연예술계 월간지 ‘객석’을 인수해 발행인으로 활동했다. 서울 대학로의 설치극장 정미소는 실험적인 작품들이 태어난 공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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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굴곡도 있었다. 논란과 공백의 시간을 겪었지만, 그는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2022년 악성 뇌종양 수술 이후에도 공연장을 찾았고, 2023년에는 연극 ‘토카타’에 짧은 우정 출연으로 마지막 무대를 남겼다.

윤석화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배우입니다. 무대 위에서 질문을 찾고, 그 질문을 관객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신의 아그네스’로 시작된 그의 이름은 한 작품을 넘어, 한국 공연예술 한 시대의 표식으로 남았다.

[김승혜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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