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가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보는 듯한 피로감이 몰려온다. 출연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사생활 폭로의 수위가 날이 갈수록 선을 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사석에서나 나올 법한 은밀하고 자극적인 부부간의 에피소드가 이제는 안방극장의 주류 토크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지난 8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 송진우가 밝힌 일화는 그 정점을 찍었다. 그는 아내와의 갈등을 언급하며 “아내가 화가 나 내 팬티를 갈기갈기 찢었다”는 다소 충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예능적 재미를 위한 과장이나 유쾌한 해프닝으로 넘기기에는 화면을 채운 자막과 편집 역시 오직 자극성을 극대화하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 이 에피소드는 방송 직후 예상대로 포털 사이트 연예 뉴스 랭킹 상위권을 도배하며 순식간에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했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부부나 가족을 포맷으로 한 토크 예능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대중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선 넘는 폭로전’에 사활을 걸고 있다. “각방을 쓴다”, “부부관계가 소원하다”는 고백은 이제 침묵을 깨는 축에도 못 낀다. 배우자의 은밀한 습관, 대놓고 주고받는 부부 싸움의 바닥, 심지어 성(性) 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아슬아슬한 멘트들이 매주 여과 없이 전파를 탄다.
물론 스타들의 완벽해 보이는 삶 뒤에 숨겨진 평범하고도 현실적인 부부 갈등은 시청자들에게 친근함과 공감을 안겨주는 좋은 소재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는 위안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공감보다는 ‘누가 더 매운맛인가’를 겨루는 자극성 경쟁에 가깝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이보다 달콤한 치트키가 없다. 은밀한 사생활 폭로는 방송 직후 포털 뉴스 랭킹을 장악하고, 유튜브 클립이나 숏폼 조회수까지 확실하게 보장하기 때문이다. 출연자 역시 순간의 강렬한 폭로로 단숨에 화제의 중심에 서며 이름값을 올린다.
하지만 연예인의 사생활과 부부 갈등이 예능의 ‘땔감’으로 전락할 때, 그 부작용은 고스란히 대중의 몫으로 남는다.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처음엔 호기심에 클릭하지만 이내 지독한 피로감을 느낀다. 자극은 더 큰 자극을 부르기 마련이고, 매주 반복되는 폭로전 속에서 부부와 가족이라는 본질적인 가치는 지나치게 희화화되거나 소모된다.
진짜 문제는 방송이 끝난 후 포털 창에서 벌어진다. 자극적인 타이틀을 단 랭킹 뉴스 밑에는 출연자 부부를 향한 무차별적인 비난과 악플, 혹은 무의미한 설전이 배설물처럼 쌓인다. 부부의 사생활을 팔아 얻은 시청률과 조회수의 대가가 결국은 소모적인 논란과 누군가를 향한 손가락질뿐이라는 점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비밀스러워야 할 영역이 예능의 웃음소재로 전면 개방되는 시대라지만, 모든 대중문화 콘텐츠에는 지켜야 할 선(線)이 있다. 시청자들이 예능을 통해 원하는 것은 가슴 답답해지는 막장 폭로전이 아니라, 유쾌하면서도 건강한 공감대다.
랭킹 뉴스의 클릭수만 쫓는 제작진의 무리수와 출연자들의 무분별한 사생활 노출이 계속된다면 대중은 결국 채널을 돌려버릴 것이다. 화제성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예능의 자극적 폭로전, 이제는 정말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