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곽진언이 낡은 어쿠스틱 기타 한 대를 메고 예능에 등장했다.
지난 3일 유튜브 채널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에 출연한 그는 화려한 무대 뒤에 감춰두었던 솔직하고도 낭만적인 자전적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대중을 깜짝 놀라게 했다.
특히 그가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 다니지 않고 ‘홈스쿨링’을 통해 자랐다는 고백은 그가 가진 독보적인 음악적 감수성의 비밀을 푸는 결정적인 열쇠가 되었다.
이날 방송에서 곽진언은 자신의 특별한 학창 시절에 대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남들과 똑같이 일반적인 중·고등학교 과정을 밟는 대신, 부모님의 깊은 고민 끝에 홈스쿨링을 선택해 이수했다. “세상의 고정된 틀과 주입식 교육 속에 갇히기보다, 아이가 진짜 배우고 싶은 학문과 독서에 온전히 집중하게 해주고 싶었다”는 부모님의 교육 철학이 계기였다.
그의 배움을 위해 온 동네가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서울예대 국악과 출신의 어머니는 직접 독서와 논술을 지도하며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었고, 이웃 주민들은 각자의 전공을 살려 재능 기부 형식으로 돌아가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억압적인 학교 종소리와 입시 경쟁 대신 자유로운 토론과 악기 소리가 가득했던 10대 시절은 곽진언에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따뜻한 정서적 자양이 되었다.
이러한 자유로운 성장 환경은 그의 타고난 ‘음악 유전자’와 결합해 엄청난 시너지를 냈다. 알고 보니 곽진언은 가요계 베일에 싸여 있던 ‘뮤직 패밀리’의 일원이었다. 서울예대 출신으로 음악적 뿌리를 심어준 어머니뿐만 아니라, 이승철 밴드 등에서 오랫동안 세션으로 활약한 전설적인 베이스 연주자 신현권이 바로 그의 외삼촌이다.
여기에 최근 힙합 씬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래퍼 양홍원의 전담 프로듀서로 활동 중인 남동생까지, 대를 이은 음악가 집안의 단단한 내력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그가 학교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음악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축복이자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유롭게 자라난 천재의 음악은 타인을 향한 깊은 배려와 다정함으로 발현된다. 곽진언은 이날 포장마차 안에서 미발매 신곡 ‘새로운 여름’을 깜짝 라이브로 공개해 시청자들의 귓가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새로운 여름이 그대 창가에 또 찾아왔어”라는 첫 소절만으로 밤 공기를 아련하게 적신 이 곡에는 뭉클한 비하인드가 숨어 있었다.
바로 평소 아끼는 동료 뮤지션인 카더가든에게 아낌없이 선물한 곡이라는 것. 곽진언은 “내가 직접 불러 욕심을 내기보다, 이 노래가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카더가든의 목소리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닿길 바랐다”며 아티스트로서의 눈부신 우정과 진정성을 보여주었다. 그의 라이브를 코앞에서 직관한 홍진경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며 “이 노래는 최소 7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명곡”이라고 기절초풍에 가까운 찬사를 보냈다.
사실 곽진언의 음악은 늘 ‘더하는 것’보다 ‘비우는 것’의 아름다움을 말해왔다. 그의 대표곡인 ‘자랑’은 쏟아내듯 토악질하듯 슬픔을 담았던 서른 이전 청춘의 쓸쓸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인생 곡이다. 서른을 넘긴 지금의 그는 “헤어지고 나서 혹시라도 길거리에서 내 노래를 들을 상대방의 마음까지 배려하게 된다”며 한층 성숙해진 창작관을 전했다.
그의 음악 연대기를 살펴보면 진솔함의 깊이가 남다르다. 유일하게 다른 사람의 곡을 받아 부른 ‘열심히 살아보려고 해’ 역시 절친 이기쁨의 노랫말이 너무 아름다워 직접 곡을 사서 수록할 만큼 가사에 대한 애정이 깊다. 나고 자란 정릉 동네의 서늘하면서도 고즈넉한 온기를 담아낸 미니앨범 수록곡 ‘그대의 것’과 친동생의 자유로운 몸짓에서 영감을 얻은 ‘춤’, 그리고 아픈 아버지를 바라보는 슬픔을 읊조린 미공개 자작곡 ‘아빠’까지, 그의 음악은 가공되지 않은 일상의 언어로 상처받은 이들을 고요하게 안아준다.
포차 한편에서 타투이스트 지망생 친구의 연습을 위해 선뜻 제 손목을 내주어 생긴 삐뚤빼뚤한 낙서 타투부터, “한 달 동안 오늘 가장 말을 많이 했다”며 수줍게 웃는 싱거운 일상까지. 학교 종소리 대신 바람 소리와 악기 소리를 들으며 자란 홈스쿨링 소년은 어느새 대체 불가능한 대한민국 최고의 ‘음유시인’으로 우뚝 섰다. 홍진경이 극찬한 700년 만의 명곡 ‘새로운 여름’과 함께 찾아올 곽진언의 깊고 푸른 다음 계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