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하가 찾은 인생의 ‘오아시스’와 음악이라는 타임머신[MK★인터뷰]

2019년 미니앨범 ‘Sketch’ 이후 무려 7년이다. 가수 정동하가 9월 6일 오후 6시 새 미니앨범 ‘오아시스’를 공개했다.

미니앨범 ‘오아시스’는 그가 지난 세월 동안 탐구해 온 삶의 철학과 음악적 정수가 응축된 결과물이라 할 만 하다.

오랜만에 실물 CD 앨범을 팬들에게 선보인 정동하를 만나 그의 음악과 인생 철학에 대해 물었다.

오랜만에 실물 CD 앨범을 팬들에게 선보인 정동하를 만나 그의 음악과 인생 철학에 대해 물었다. 사진=뮤직원
오랜만에 실물 CD 앨범을 팬들에게 선보인 정동하를 만나 그의 음악과 인생 철학에 대해 물었다. 사진=뮤직원

그는 스스로를 ‘연구하는 사람’이라 정의하는 INTP 성향이라고 했다. 이번 타이틀곡 ‘오아시스’ 역시 정통 록발라드라는 익숙한 외피를 입고 있지만, 그 속에는 지친 현대인들에게 건네는 치밀하게 설계된 위로가 담겨 있다. 깊어진 그의 보컬은 기교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청자의 영혼을 다독이는 온기를 채워 넣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이번 앨범 커버를 장식한 건 7~8살 무렵의 빛바랜 사진 속 어린 정동하다.

소위 ‘청청 패션’을 완벽하게 소화한 채 장난감 총을 메고 해맑게 웃는 소년의 모습은 유복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지독한 고독의 서사가 흐른다. 초등학교 시절에만 6번의 전학을 다녔고, 주민등록초본상 주소 이전 기록만 50여 번에 달할 정도로 그의 유년기는 불안정한 이동의 연속이었다.

이번 앨범 커버를 장식한 건 7~8살 무렵의 빛바랜 사진 속 어린 정동하다. 사진=뮤직원
이번 앨범 커버를 장식한 건 7~8살 무렵의 빛바랜 사진 속 어린 정동하다. 사진=뮤직원

낯선 환경에 끊임없이 던져졌던 내성적인 소년은 친구를 사귀는 대신 안으로 파고들었다. 백과사전을 정독하고 과자 봉지의 성분명을 꼼꼼히 읽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읽는 행위 자체가 좋았다”는 그의 고백은, 왜 그가 지금도 ‘실용음악과 대학원 과정’을 밟으며 끊임없이 음악의 구조를 연구하는지 짐작케 한다. 그 시절의 적막을 채웠던 상상력과 탐구심은 오늘날 정동하라는 거대한 음악적 오아시스를 만든 원천이 되었다.

“전학이 너무 잦다 보니 친구들과 정이 들려 하면 헤어져야 했어요. 자연스럽게 마음의 문을 닫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죠. 집에서 온갖 백과사전을 정독하거나, 심지어 주방에 있는 소스통이나 과자 봉지 뒷면의 성분명을 유심히 읽는 게 제 소소한 놀이이자 탈출구였습니다. 글자 하나하나를 보며 저만의 상상을 채워가던 아날로그적인 시간이었죠.”

게임 치트키가 가르쳐 준 인생

정동하는 데뷔 직후 자신의 팬카페에 적은 “행복이란 내 이상과 현실이 서로 닿는 순간”이라는 문장을 떠올렸다. 그리고 갑자기 PC게임을 즐겨하느냐고 기자에게 묻는다. 기자가 “스타크래프트”라고 답하자, 이내 그는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비유하며 흥미로운 통찰을 건넨다.

“우리가 게임을 할 때 치트키를 쓰잖아요. 스타크래프트에서 ‘show me the money’나 ‘black sheep wall’ 같은 치트키를 치면 당장은 아주 시원하고 짜릿하죠. 돈도 많아지고 맵도 다 보이니까요. 하지만 결국 어떻게 되나요? 너무 쉬워져서 금방 재미가 없어지고, 이내 게임을 꺼버리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정동하는 이번 앨범을 통해 ‘오아시스’의 정의를 새롭게 내린다.  사진=뮤직원
정동하는 이번 앨범을 통해 ‘오아시스’의 정의를 새롭게 내린다. 사진=뮤직원

자원을 무한대로 주는 ‘ShowMeTheMoney’나 안개를 걷어내는 ‘BlackSheepWall’ 같은 치트키를 쓰면 게임은 시원하게 풀리지만, 그 순간 성취감은 증발하고 클릭조차 귀찮아지는 허무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앨범을 통해 ‘오아시스’의 정의를 새롭게 내린다. 오아시스는 단순히 목마름을 해결하는 목적지가 아니라,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사막을 가로지르는 고통스러운 ‘과정’ 그 자체에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교한 연구자답게 인생의 열매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결과에 도달하는 순간은 갈망의 종지부일 뿐입니다. 목표가 일상이 되는 순간 감흥은 사라져요. 결국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과정 자체가 진짜 열매인 거죠.”

수트를 입는 배트맨의 성실함, 조기축구 스트라이커의 위트

무대 위에서 폭발적인 성량을 뿜어내는 그를 보며 대중은 태생적 초능력자인 ‘슈퍼맨’을 떠올리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을 ‘배트맨’이라 칭한다. 일상에서는 힘을 뺀 채 ‘한량’처럼 지내다가도, 무대라는 수트를 입기 위해 철저한 사전 준비와 고통스러운 연습을 거쳐야만 관객 앞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결코 일상에서도 늘 영웅인 슈퍼맨이 아닙니다. 평소에는 한량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때로는 허술한 일상을 살아가요. 그러다가 무대 의상이라는 ‘슈트’를 갖춰 입고 가면을 쓰는 순간, 비로소 무대라는 서킷을 달리는 배트맨으로 변신하는 거죠. 평범한 일상과 뜨거운 무대를 철저히 분리해 두었기에, 저에게 무대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단 한 번도 귀찮은 ‘일’이 된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립고 애틋하며, 서고 싶은 소중한 놀이터입니다.”

그의 프로페셔널리즘은 ‘고객 만족 최우선’이라는 위트 있는 철학에서 정점을 찍는다. 행사의 목적과 관객의 연령대를 사전에 면밀히 분석하고 선곡을 고민하는 모습은, 마치 경기 내내 체력을 아끼다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방을 터뜨리는 ‘조기축구 스트라이커’의 영리함을 닮았다. 무대를 단순한 일이 아닌 ‘그리웠던 배트맨으로 변신하는 순간’으로 여기는 그의 진정성은 관객들에게 최고의 만족감을 선사한다.

“저는 지방 행사나 축제 무대에 설 때도 철저히 ‘자본주의적 고객 만족 최우선 서비스’ 마인드로 임합니다. (웃음) ‘이 행사는 왜 열렸고, 주최 측은 날 왜 불렀으며, 오늘 모인 관객들의 연령대와 기대는 무엇인가’를 집요하게 분석해요. 예술가로서 제 만족을 강요하기보다, 오늘 제 노래를 들으러 와주신 소중한 관객들이 100% 만족해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제 보컬리스트로서의 자존심이자 철학입니다.”

7년 만의 미니앨범을 세상에 내어놓으며 정동하가 꿈꾸는 궁극적인 미래는 거창한 음원 1위가 아니다. 사진=뮤직원
7년 만의 미니앨범을 세상에 내어놓으며 정동하가 꿈꾸는 궁극적인 미래는 거창한 음원 1위가 아니다. 사진=뮤직원

음악이라는 유일한 타임머신

5년 만의 ‘뮤직뱅크’ 입성을 앞두고 자신을 ‘화석’이라 칭하며 쑥스러워하는 21년차 가수 정동하. 하지만 음악을 정의하는 그의 목소리는 누구보다 청년처럼 뜨거웠다. 그는 음악을 “과거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타임머신”이라고 정의한다.

“우연히 들은 노래가 평생 그 장소의 공기를 기억하게 만들 듯, 제 음악도 여러분의 삶 속에서 배경음악(BGM)처럼 흐르길 바랍니다. 각자의 삶의 포인트에 각인되어 세상과 같은 주파수로 떨리는 ‘공명’을 이루고 싶습니다.”

7년 만의 미니앨범을 세상에 내어놓으며 그가 꿈꾸는 궁극적인 미래는 거창한 음원 1위가 아니다. 그저 누군가의 아주 평범하고도 소중한 삶의 한 페이지에 자신의 목소리가 조용히 스며드는 것이다.

자신이 꿈꾸던 오아시스가 사막을 묵묵히 걷는 ‘과정’ 자체에 있었음을 깨달았다는 아티스트 정동하. 그의 목소리로 채워진 ‘오아시스’는 매서운 갈증에 허덕이는 우리 일상에 가장 촉촉하고 단단한 쉼표가 되어줄 준비를 마쳤다. 그의 타임머신에 기꺼이 탑승할 시간이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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