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유력 매체 뉴욕타임스(NYT)가 그룹 뉴진스의 전속계약서를 입수해 보도하면서 K팝의 계약 시스템이 전 세계의 도마 위에 올랐다.
빛나는 무대 뒤에 가려진 조항들이 공개되며 논란이 일고 있지만, 이를 단순히 특정 기획사만의 악덕 행위로 치부하기보다는 K팝 산업 전반의 구조적 한계를 되짚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NYT 보도에 따르면, 뉴진스 멤버들이 만 14~17세이던 시절 체결한 전속계약서에는 미성년 연예인의 수면권, 학습권, 신체 및 정신 건강을 보장하는 정부 표준계약서 조항이 빠져 있었다.
대신 ‘불성실한 태도’나 ‘부적절한 연애 관계’ 등을 금지하는 엄격한 통제 조항이 포함되었다. 또한 연습생 시절의 미용 및 성형 수술 비용의 상당 부분을 멤버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계약 종료 후인 2029년 이후에도 회사가 멤버들의 초상과 음성(AI 포함)을 계속 사업화할 수 있다는 조항이 지적되었다. 이를 두고 미국의 저명한 엔터테인먼트 변호사는 “미국 아티스트 기준에서는 끔찍한(horrific) 수준”이라고 비판했고, 국내 변호사 역시 “이례적으로 공격적인 계약”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하이브(HYBE) 측의 항변도 K팝 산업의 현실을 담고 있어 귀 기울일 만하다. 하이브는 해당 계약이 아티스트와 회사의 재정적 투자를 함께 보호하기 위해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적법하게 협상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기획사가 막대한 초기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했기 때문에 뉴진스 멤버들이 이른바 ‘연습생 빚’ 없이 데뷔 직후부터 정산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논란이 된 위약벌 규정이나 재정적 조건 역시 업계 표준에 부합하는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아울러 본인 의사에 반하는 성형수술을 요구하거나 학업 중단을 압박한 적도 없다며 선을 그었다.
실제로 NYT 보도에 인용된 전문가들조차 재정 조건 면에서는 K팝 업계의 일반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수십억 원의 자본을 투입해 아이돌을 육성하는 고위험 산업 구조상, 기획사는 막대한 초기 투자를 보호하기 위해 구속력 강한 계약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K팝 산업의 덩치가 세계 최상위권으로 커졌음에도, 인적 자원을 관리하는 방식은 과거 내수 중심의 관행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새벽 2시까지 리허설을 강행하고 멤버 5명 중 4명이 학업을 중단했다는 사실은 서구권 미디어와 대중의 시선에서 이해하기 힘든 아동 권리 침해로 비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하이브라는 특정 기업에 대한 마녀사냥으로만 소모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마주한 K팝 산업 전체의 뼈아픈 성장통이다. 기획사의 막대한 투자 리스크를 보호하면서도, 어린 아티스트들의 기본권과 건강한 성장을 지켜줄 수 있는 정교한 계약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K팝이 진정한 ‘월드 클래스’로 롱런하기 위해서는 무대 뒤에서 아티스트를 대하는 산업의 태도 역시 세계적인 공감대를 얻어야 할 때다.
[MK스포츠 홍동희 선임기자]
